오늘의 말씀: 이방인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호세아 9:1-3
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
2.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3. 저희가 여호와의 땅에 거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손자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시면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직접 택하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신 "이스라엘"을 부르시면서 "이방 사람들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않는 자들처럼 기뻐하지 말고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이방인들처럼 세상에 취해서 세상 속에서 기쁨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기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9장3절을 보면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라는 말씀이 있듯이, 이스라엘은 추수 때에 하나님 앞에서 크게 즐거워하며 기쁨의 절기인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추수 때에 기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행음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바알을 함께 섬겼습니다. '바알'은 '주(lord)'라는 뜻인데, 피조물에게 있어서 주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바알을 모두 주님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너무나 지키기 힘들었습니다. 하고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것도 많고,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하는 것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알숭배는 하나님께서 주신 절제하라는 법과는 달리 무절제 속에서 행해지는 감각적이며 성적인 모든 것들이 제사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 정당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숭배에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타작 마당에서 하나님께 추수한 것을 바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은혜로 거두어들인 추수한 곡식을 바알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신랑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농경의 신인 바알을 섬긴 것을 "영적 간음" 즉 "음행"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음행함으로 바알이 풍성한 소득을 주었다는 것을 "음행의 값"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주신 추수 때의 소득을 바알과 음행을 했기 때문에 그 값으로 받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창기처럼 음행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음행 내용은 구체적으로 2절에서 타작마당과 술틀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타작마당과 술틀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타작마당과 포도를 주시는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겨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풍성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곧 바닥이 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절에서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라는 말씀은 그들을 길러왔다고 생각하던 타작 마당의 곡식들과 술틀에서 짜서 만들어졌던 포도주 등을 하나님께서 거두어가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을 길러왔던 분은 하나님이시지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먹여 살리며 기쁨을 주는 곡식과 포도주가 더이상 그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께 잘 보여야 하는데, 엉뚱한 우상에게 가서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기 떄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살고있는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땅에 거하지 못하게 그 땅에서 쫓아내셔서 다시 애굽으로 가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호와의 땅'은 북 이스라엘을 말하며 '애굽'은 진짜 애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할 당시에 노예생활을 했던 것처럼 노예로 끌려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말입니다. 즉 그들을 애굽에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구원을 원점으로 돌려놓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처럼 기뻐 뛰노는 장면에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에 이스라엘은 그를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론에게 자기들이 섬길 하나님을 만들어달라고 조릅니다. 결국 아론은 그들에게 귀의 금고리들을 갖고오라고 해서 그것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출애굽 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공포했습니다. 그러자 32장6절을 보면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들은 과거나 현재나 항상 자기를 위한 신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피조물인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호흡만 거두어가면 한줌의 흙으로 변해버릴 피조물이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이 존재해야 한다며 자기가 원하는 신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 중에서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우상을 만드느라 쉴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데(無中生有) 비해 인간들은 유(有)에서 유(有)를 만들어냅니다(有中生有). 자기가 알고있는 상식과 지식과 경험 등을 총동원해서 자기에게 안성맞춤형의 신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며 기도하며 응답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바알을 섬기던 행위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형상만 만들지 않았을 뿐이지 마음 속에는 자기가 만든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마음속으로 만들어놓은 하나님에 대한 형상은 없는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럴 수 있는 확률이 99.9999%가 있는 원죄를 갖고 태어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론이 왜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것이 자기들을 출애굽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바알을 하나님처럼 섬겼을까요? 또 현대의 수많은 신들을 사람들이 정말 참신이라고 생각하며 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 앞에서 제사를 드려도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제사를 드리면 그것이 참된 예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여러 형상으로 조각해서 우상으로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4장6절을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잠언 10장21절에서는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힘써 여호와를 알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적당히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며 오히려 예배를 드린 후에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평생을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세상 즐거움도 버리고 살았지만,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섬겼다가 마지막 심판날에 예수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인처럼 기뻐 뛰놀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의 예배 방식을 조금이라도 흉내내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을 절대로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의 예배와 삶이 어떤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먹고 살 것을 구하는 삶입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나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고 살만해야 하나님께도 무엇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해 선을 행하는 삶입니다. 신은 단지 나를 위해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6절의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라는 것은 이방종교인들의 전형적인 제사드리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서 "뛰놀더라"라는 히브리어 "차하크(צָחַק)"는 흥겹게 뛰어노는 모습을 나타내는데 이는 육체의 쾌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방종교인들은 제사를 드릴 떄에 반드시 성적으로 음란한 헹위를 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뛰놀았다는 것은 그러한 성적인 쾌락을 즐기며 제사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출애굽기 32장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부패하였다"라는 히브리어 ''샤하쓰(שָׁחַת)"는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뜻으로 본문 9절에서도 똑같은 단어가 쓰였습니다. 9절에 보면 "저희는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패괴하다"라고 번역된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기브아의 시대는 사사시대로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였으므로 자기들의 소견에 좋은대로 행했던 말하자면 무법시대를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인간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전적으로 타락해버린 결과입니다. 그 결과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으며 구원에 이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타락하여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택하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죄양이 되셔서 대신 돌아가시며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방인들처럼 먹을 것을 걱정하며 세상 살이와 미래를 걱정하며 살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 무엇을 못해주시겠습니까? 추수때에 수확이 많아졌다고 즉 물질적으로 부유해졌다고 기뻐 뛰놀지 않습니다. 부유해지거나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행의 값"을 치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무엇이 해결되었다고 기뻐 뛰놀지 않습니다. 오직 지옥행에서 천국행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주시고 구원해주심에 감사하여 항상 기뻐하게 되며 쉬지않고 기도하게 되며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기뻐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 말씀을 거울로 비추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쁜 이유가 여러분의 육체를 위한 것이라면 지금 사랑의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인자하시며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는 자의 얼굴을 멸시치 않으시며 오히려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재앙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것이며 미래에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렘 29: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대강 시간 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전심으로 그분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시는 분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렘 29:11-14)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오늘...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으며 그분께 부르짖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이방인들처럼 살아왔던 것들을 회개하며 열심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만큼 기뻐 뛰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방인들처럼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주안에서 기뻐하시므로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보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삶을 계속해서 영위해 나가시기를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다음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모세가 이스라엘 광야 2세들에게 설교한 내용입니다.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시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하면,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 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얻을 것인즉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하수라 하는 하수에서 서해까지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 밟는 모든 땅 사람들로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신 11:11-25)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방인들처럼 세상 물질에 마음을 빼앗겨서 살아왔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제 속에도 제가 만들어놓은 우상 하나님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왔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매우 화나시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 저의 잘못을 고백하도록 이끌어주신 그 은혜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제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받고 잘 살게되는 것들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게 하시며, 오직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저를 불구덩이에서 꺼내서 빛의 나라로 인도하여주신 그 크신 은혜에만 감사하며 감격하며 기뻐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일을 행하시며 성취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더욱 열심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쉬지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을 더욱 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세상의 것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오니 저와 동행하여 주시고 제 주인이 되어 주셔서 저를 온전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Esther Soo-Gyung Kim, Pastor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