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선의 서부극
웨스턴 무비로 통칭되던 영화들이 한때는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기도 했었다. 카우보이모자에 권총, 황야의 고독을 안고 길을 떠나는 마초라는 이미지로 각인 되어있을 것이다. <퍼스트 카우>는 기존의 서부극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 시야에 담기지 못했던 이야기를 가져와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카메라의 시선은 거칠게 싸우고 윽박을 지르는 이들 대신 뒤집어져 버둥거리는 도마뱀을 뒤집어 주고, 동물 대신 식물로 끼니를 조달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남자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19세기의 미국, 상업 자본주의가 산업 자본주의로 변모해 가기 직전의 풍경은 그 자체로 야만이었다.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고 폭력은 자본이라는 명분 앞에서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강자 여야 살아남을 수 있던 시대에 폭력 다신 협력을 쟁취 다신 공유를 택했던 유대인과 중국인의 우정을 통해 인간이라는 본질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 대해 깊은 고민을 영화는 묻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우정
영화의 시작은 검은 화면에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 중 “ 새에게는 둥지를, 거미에게는 거미줄을, 인간에게는 우정을”이라는 문장을 보여준다. 러닝 타임이 진행될수록 도입부에 등장했던 문구는 인간이 기댈 마지막 보루는 우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동행자들의 끼니를 책임 지던 쿠키는 숲에서 알몸으로 숨어있는 리를 발견한다. 러시아인들에게 쫓기던 그는 쿠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추후에 거처도 없이 떠돌던 쿠키는 바에서 우연히 리를 만나고 그의 친절을 잊지 않았던 리는 그의 좁은 집에서 함께 지내기를 권한다. 유대인과 중국인인 그들의 우정은 사고파는 상거래 개념보다 공유라는 개념에 가깝다.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때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방식인 그들의 우정은 그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고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들은 빵을 만들기 위해 밤에 몰래 대령의 집에 있는 소에게서 우유를 얻어온다. 대령에게 소는 재산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고 있었지만 쿠키는 우유를 짤 때마다 소통과 스킨십을 통해 소와 교감을 한다. 그것이 훔치는 것보다 나눔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소가 주인이 아닌 쿠키에게 더 친근감을 보이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꼬리가 길면 밟히고 소에게서 우유를 얻어 가는 것이 발각된 그들은 작은 집에서 마저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 폭력이 용인되는 시대에 그들의 우정은 목숨을 담보해야 지속 가능한 것이었다.
자연사적 역사관
4:3비율의 화면에 컬럼비아 강을 유유히 거스르는 화물선 한 척을 보여주고 카메라는 시점을 바꿔 숲을 산책하는 개와 소녀를 비춘다. 개가 연신 파던 흙더미에서 소녀는 유골을 발견하고 고사리 손으로 덮인 흙을 치우니 두 구의 유골이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쇼트는 바뀌어 그 유골의 주인공들이 살던 시점인 1820년대로 전환된다. <퍼스트 카우>는 가로로 길게 늘린 시네마 스코프나 특수 장비를 이용한 장면들이 일절 없다. 세로로 길게, 인공적인 조명을 배제한 화면은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는 쿠키와 리의 우정에만 천착하고 있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하는 지점에는 부엉이나, 고양이 같은 동물이 등장하고 카메라는 그들을 세심하게 잡아낸다. 거기에 이 영화의 백미는 티타임 장면에 있다. 누군가는 앉아있고, 누군가는 서있는 장면을 카메라는 집안을 한 바퀴 훑으며 어떤 면모들이 이 공간에 있는가를 담고 있다. 인디언과 유대인, 권력자와 여성들을 비춘다. 차를 마시다 대령이 소를 보여주러 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들을 곧장 따라가지 않는다. 남자들이 나가고 여성 둘만이 남아 원주민 언어로 정다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마치 이런 순간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듯 보여준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에서 인디언의 말은 번역되지 않는다. 이것은 원래 그곳에 있었던 해석될 필요가 없는 자연상태와 영어로 대변되는 인공적인 것들의 성기는 풍경으로 담아낸다. 이 영화는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겠지만 자연 상태로 존재하다 사라지는 것들을 가장 인간적인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퍼스트 카우
영화 속에 그 소는 오리건주에 처음 온 소, 말 그대로 퍼스트 카우다. 선술집에 모인 노동자들은 애초에 오리건 주에 소 같은 건 없었다 말하고 그건 백인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동료는 받는다. 그렇다 애초라는 건 애초에 없었다. 아메리칸드림은 사유재산이라는 강력한 명분과 그걸 지키기 위해서 총으로 무장하고 폭력을 행사해도 정당하다는 사유로 많은 이들을 희생하게 했고 이를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과 아닌척하는 이들의 충돌이 격했던 시대를 거쳤다. 그러려니 하고 흘러온 시간들은 지금이라는 거대한 벽을 만들었고 수많은 이들이 그 벽 앞에서 통곡한다. 영화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면 묵묵히 그 벽에 정을 내리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외침은 숨 막히게 단단한 것들에 금을 내고 균열을 만든다. 영화를 보는 일과 나를 돌아보는 일과 작은 우정을 생각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퍼스트 카우>는 ‘애초에’라는 벽에 정을 들이대고 있다.
첫댓글 우와 😍
이런 멋진 영화평을 씨네21이 아닌,
씨네타운나인틴 카페에서 읽을 수 있다니!
영화가 보고싶어집니다
소와의 우정을 그리고 있는 듯한 포스터를 보니(아님) 갑자기 워낭소리가 생각이 나네요.
아이디에 맞춰 추천하는 영화인줄..알았네요.ㅎㅎ
좋은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소고기님 글 너무 멋있네요.
희안하게도.. 소고기님 리뷰를 보면
없던 관심이 생기네요 ㅎㅎ
잘 읽고.. 일단 또 찜 들어갑니다
소대가리님 멋진 리뷰 덕분에 몰랐던 영화를 알게됐네요. 급 땡깁니다
좋은 영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퍼스트카우라는 영화가 좋은 감상평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느낌입니다..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멋진 감상평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