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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 조현욱 옮김
제1부 인지혁명(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
약 7만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에덴동산의 돌연변이)
-수렵채집인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거의 없다
-고대공유 공동체 이론의 지지자들은 일부일처제 부부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이 아니었다고 주장, 사유재산이나 일부일처 관계, 심지어 아버지라는 개념도 없이 살았다는 것
-영원한 일부일처제 학파들은 일부일처제와 핵가족의 형상은 인간 형태의 핵심이라고 주장, 이들 공동체는 공동체적이고 평등한 경향을 지니고 그럼에도 수많은 개별 단위로 구성되었다고
우리는 인공물에 의존하면 고대 수렵채집인의 삶을 왜곡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현대의 수렵채집 사회를 살펴보는 것이다. 주의할 몇 가지 사항
첫째, 현대까지 살아남은 모든 수렵채집 사회는 이웃한 농경 및 산업사회의 영향을 받음
둘째, 오늘날 살아남은 수렵채집 사회지역은 기후가 거칠고 땅이 황량하며 농사에 적당치 않음
셋째, 수렵채집 사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들 사회가 서로 크게 다르다는 점, 농업혁명 전에 지구에 살고 있던 5백만~8백만 명의 수렵채집인은 수천 개의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수천 개의 개별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최초의 풍요사회
농경사회 이전에는 인간사회는 인간밖에 없었다. 가축은 개 밖에 없었다.
같은 무리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매우 잘 알앗으며, 평생을 친구와 친척에게 둘러싸인 채 살아갔다. 이웃 무리들은 자원을 놀고 경쟁했을 테고 싸우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호적인 접촉도 있었다. 서로 구성원을 교환하고 함께 사냥하며 희귀한 사치품을 매매하고, 종교적 축제를 벌였으며, 외부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기도 했다. 이런 협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중요한 트레이드마크였으니
대부분의 사피엔스 무리는 먹을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며 길위의 삶을 살았다. 이들의 이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계절의 변화, 동물들의 연례이동, 식물의 성장주기였다.
새로운 땅을 헤매는 무리들이 있었다. 자연재해, 폴력적 분쟁, 인구 증가에 의한 압박 등
가장 중요한 점은 해산물과 물새가 풍부한 바닷가와 강변을 따라 영구적으로 어촌이 형성되었다는 것, 농업혁명보다 훨씬 앞선 역사상 최초의 영구 정착지였다.
사피엔스는 식량과 원재료만 찾아다니지 않았다. 지식도 찾아다녔다. 평범한 수렵채집인은 현대인 후손 대부분에 비해 주변 환경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고 다양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주당 일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으며, 전염병도 드물었으니,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농경 이전 수렵채집 사회를 ‘최초의 풍요사회’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삶은 거칠고 힘든 것이었다. 어린이 사망률이 높았으며, 사소한 사고가 쉽게 사망선고로 이어지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돌이 무리 내에서 두터운 교분을 향유했지만 무리내에서 적개심이나 비웃음을 받는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파라과이 아체족)
정령과의 소통
고대 수렵채집인의 정신적 영적 삶은 대부분 애니미즘 신앙이 일반적이었다고 본다
애니미즘(정신이나 영혼을 뜻하는 라틴어에 기반을 두고 있음)이란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자연현상이 의식과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어디든 정령이 깃들고 사물과 생물만 정령이 있는게 아니고 무형의 실체에도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 악마, 요정, 천사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런 예다. 애니미즘은 특정한 종교가 아니다. 수천 종이 넘는 종교의 사고와 신앙의 포괄적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종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전혀 밝혀지지 않은 또 하나의 영역은 수렵채집인의 사회정치적 세계다.(라스코 동굴벽화15000~2000년전, 아르헨티나의 손 동굴9,000년전) 벽화나 몇 개의 뼛조각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대학자들의 선입견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로르샤흐 심리테스트같다고.
예)러시아 숭기로 유적에서 3만년전 메머드를 사냥한 문화권의 매장터를 발견했다. 한 무덤에서는 50세 남자의 유골에 매머드 상아로 만든 구슬 3천개를 꿰어만든 목걸이 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고,
학자들은 이것으로 계급사회에 살았으며 이 남자는 지도자이거나 부족 전체의 지도자 였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또 다른 무덤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두 구의 유골 발견, 이 소년 소녀의 뼈에는 소년은 5천개의 상아 구슬로 뒤덮여 있었고, 여우 이빨 장식 모자를 쓰고 이빨250개가 들어간 허리띠를 하고 있었다. 소녀를 장식한 구슬은 5250개였다.
학자들은 이들의 가설을 첫째 이들의 계급은 부모에게서 기인했다는 것, 둘째 가설은 종교 의식에서 희생되었으며 아마도 지도자의 장례식의 한부분으로 부장품을 갖춘 화려한 무덤에 묻혔다는 것.
숭기르의 이 아이들은 3만년 전의 사피엔스가 우리의 DNA뿐만 아니라 여타 인간이나 동물 종의 행동 패턴을 훌쩍 넘어서는 높은 수준의 사회정치적 코드를 밮명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가장 훌륭한 증거다.
전쟁이냐 평화냐
수렵채집인의 종교와 사회구조가 매우 다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폭룍 사용률 역시 매우 다양하게 분포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정 시기, 늑정 지역의 사람들은 평화와 고요를 즐긴 반면 다른 무리들은 격렬화 폭력으로 고통당했을지 모른다. 예)포르투칼의 평화로운 유골, 자블 사하바와 오프넷의 도살장)
침묵의 커튼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지만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주변 세계를 크게 바꿔놓았다.
11장 제국의 비전
켈트족 누만시아 상상속의 영웅 –엘 자바토
로마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스스로 마을을 불태웠으며 로마인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대부분은 자살했다.
세르반테스는 <누만시아>라는 비극을 써서 스페인의 위대함에 관한 비전을 함께 담고 있다.
그러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누만시아 사람들을 찬양하는 언어는 켈트어가 아닌 스페인어라고 하며 이 언어는 라틴어의 후손인 로망스어 중 하나라고, 이 극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 모델이라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도이기도 하다고, 실제로 누만시아인들이 남긴 것은 폐허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21세기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은 어디가 되었든 제국의 후예이다.
제국이란 무엇인가?
제국이란 정치질서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첫째,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 한다.
둘째, 제국의 특징은 탈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욕이다. 자신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다. 현재 영국은 제국이 아니다.(국경이 분명,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설 수 없다)
강조할 점은 제국이 그 기원이라든가 정부 형태, 영토의 범위, 인구의 크기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성으로만 정의된다는 것이다.
제국이 반드시 군사적 정복으로 등장할 필요도 없다. 아테네 제국은 자발적 동맹, 합스부르크 제국은 혼인으로 탄생.
제국은 독재적 황제가 통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대영제국의 통치체제는 민주주의, 근현대의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미국, 근대 이전에는 노브고로드, 로마, 카라타고, 아테네 등
크기 역시 문제되지 않는다. 아테네 제국은 최전성기에도 인구와 크기가 오늘날 그리스보다 작았다. 아즈텍 제국은 오늘날 멕시코보다 작았다.
제국은 인류의 다양성을 급격히 축소시킨 주된 이유의 하나였다.
사악한 제국?
오늘날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거의 최고의 정치적 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제국은 지난 2,5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조직이었다. 제국은 매우 안정된 형태의 정부다.(?) 대부분의 제국은 반란을 너무나 쉽게 진압했다.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대개 외부의 침공이나 내분에 따른 지배 엘리트의 분열밖에 없었다. 정복당한 민족이 제국의 지배자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기록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 제국에 서서히 소화되어 고유의 문화가 흐지부지되는 게 보통이었다.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누만시아, 아르베르니, 헬베티아, 삼늄, 루시타니아, 움브리아 등등)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수만을 사람을 악랄하게 살해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 노예화, 국외 추방, 대량학살은 제국의 일반적 수단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모든 제국을 지워버리고 제국의 유산을 모두 거부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의 대부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복에 따른 이익을 군대와 성채에만 쓰지 않았다. 철학, 예술, 사법제도, 자선에도 썼다. 예) 키케로, 세네카, 성 아구수스티누스(작가) 타지마할, 모차르트, 등등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칼로써 강요당했던 제국의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꿈꾼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야
기원전 550년경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은 우리가 너희를 정복하는 것은 너희를 위해서다 라고 말했다. 사피엔스는 본능적으로 우리와 그들의 두 부류로 나눈다. 그러나 키루스 이래 제국의 이데올로기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경향이 있었다. 키루스와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새로운 제국관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로, 다시 고대 그리스의 왕, 로마의 황제, 무슬림칼리프, 인도의 세습군주, 소련의 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에게로 이어졌다.
그들이 우리가 될 때
제국은 수많은 작은 문화를 융합해 몇 개의 큰 문화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통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전파한 이유는 첫째 그들 스스로 편하기 위해서였다. 저마다 별개의 법과 서식과 언어와 화폐를 지니고 있으면 지배하기 힘들다. 표준화는 황제에게 대단히 유용했다. 둘째, 정통성을 얻기 위해서였다. 자기네 문화는 정복자보다 피정복자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국의 엘리트 대부분은 자신이 제국 모든 주민의 일반적 복지를 위해 일한다고 진지하게 믿었다.
중국지배층은 이웃 나라의 신민들을 제국이 문화의 혜택을 가져다주어야 하는 비참한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왕에게 천명이 부여된 것은 착취가 아닌 인간성을 가르치라는 의도에서 였다고 주장.
로마인들도 유사한 주장을 폈다. 야만인들에게 평화와 정의와 고양을 전해주고 있다는 내용
마우리아 제국은 몽매한 세계에 부처의 가르침을 퍼뜨리는 것을 사명으로
무슬림 칼리프들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계시를 퍼뜨리라는 신의 명령을
스페인과 포르투갈제국은 부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신앙으로 개종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
영국의 사명은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복음을 전파
소련은 프롤레타리아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군의 혜택을 가져다줄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
정복과 수용사이에 끼인 세대는 소외되고 배제되었다. 스스로 사랑했던 지역문화를 이미 잃었지만, 제국주의 세계에 동등하게 참여할 자격은 받지 못했다. 여전히 야만인으로 보았다.
역사상의 선인과 악당
제국이 정의상 나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인류의 모든 문화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제국과 제국주의 문명의 유산이다.
예) 인도- 영국은 인도를 정복하고 점령하는 과정에서 인도인 수백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켰다. 수억 명 인도인을 지속적으로 모욕하고 착취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구의 개념들을 받아들였다. 인도라는 현대 국가는 대영제국의 자식이다. 인도 사법제도의 초석을 놓았으며, 행정부 구조를 창건했고, 경제적 통합에 극히 중요한 철도망을 건설, 인도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정부 형태로 받아들였다. 영어는 공용어로 쓰이며 크리켓 경기를 좋아하고 차를 열심히 마시는데 모두 영국의 유산이다.
문화적 유산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정말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 첫걸음은 이 딜레마가 복잡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선인과 악당으로 나누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새로운 지구제국
기원전 200년경 이래로 인간은 대부분 제국에 속해 살았다. 미래에도 대부분 하나의 제국 안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후기 로마제국이나 중국 제국처럼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문화에 따라 함께 모인 다민족 엘리트 집단에 의해 통치될 수도 있다.
세계는 21세기 초에도 여전히 200개가량의 독립국가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떤 국가도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적이지 않다. 서로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자본과 노동과 정보의 흐름에 의해 형성된 단 하나의 글로벌 무역과 금융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문화적 트렌드도 마찬가지로 매우 빠르게 퍼진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인도 카레를 먹고,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영국식 축구를 하고, 최신 K팝 히트송을 들을 수 있다.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다민족 글로벌 세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생명공학,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은 더 큰 도전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이러한 기술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생명체를 만들거나 미래 진화의 과정에 개입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러한 신성한 창조 능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글로벌 협력 없이 인류는 이러한 도전 과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어 보인다.
진실로 보편적이었던 제국, 모든 인류에게 유익했던 제국은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의 제국은 잘 해낼 수 있을까?
13 성공의 비결
상업, 제국, 그리고 보편적 종교는 모든 대륙의 사실상 모든 사피엔스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촌 세상으로 끌어들였다. 큰 그림을 보면 다수의 작은 문화에서 몇 개의 큰 문화로, 마지막에는 하나의 전 지구적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을
역사의 핵심적 특징 두 가지를 연구함으로써 단서를 찾아보자
사후 깨달음의 오류
로마 제국은 다양한 종교적 선택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왜 예수를 선택했을까?
내란으로 찢겼던 시대를 보고 단일 종교를 믿으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제국을 통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일까? 그러면 당시 마니교, 미트라교, 이시스교 키벨레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불교 등등 그런데 왜 기독교였을까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 제국을 접수했는지 서술할 수 있지만, 어째서 이 특정한 가능성이 현실화한 것인지 설명할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실제로 기독교의 발흥 같은 사건에 결정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이들은 인간사를 생물학적, 생태학적 혹은 경제적 힘의 작용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들은 로마가 지배했던 지중해 연안의 지리적, 유전적, 경제적인 뭔가가 필연적으로 일신론의 발흥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결정론자들)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결정론적 이론에 회의적이다. 특정시대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만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실현된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역사가 결정론적이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인권이 우연에 불과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 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하므로, 힘의 크기나 상호작용 방식이 극히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긴다.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이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걱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세계는 달리 배열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역사의 여신은 장님
우리는 역사가 하는 선택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선택에 대해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다.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독교가 마니교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든가 아랍 제국이 페르시아의 사산왕조보다 더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도 마찬가지로 없다. 우리에게는 그런 이익을 측정할 객관적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문화를 일종의 정신적 감염이나 기생충처럼 보고 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새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이러스 같은 기생체는 숙주의 몸속에서 산다. 숙주가 기생체를 퍼뜨릴 만큼 오래 살기만 하면 기생체는 숙주의 상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문화적 아이디어는 인간의 마음속에 산다. 증식해서 숙주에서 숙주로 퍼져나가며, 가끔 숙주를 약하게 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기독교의 천상의 천국이나 공산주의자의 지상낙원에 대한 믿음 같은 문화적 아이디어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의 전파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고서 헌신하게 만든다. 해당 인간은 죽지만, 아이디어는 퍼져나간다.
이런 접근법에 따르면 문화는 우연히 출현해서 자신이 감염시킨 모든 사람을 이용하는 정신의 기생충에 더 가깝다. 이런 접근법은 때로 문화 구성요소학, 혹은 밈 연구라고 불린다. 유기체의 진화가 유전자라 불리는 유기체 정보 단위의 복제에 기반을 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진화는 밈 이라 불리는 문화적 정보 단위의 복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공적인 문화란 그 숙주가 되는 인간의 희생이나 혜택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밈을 증식시키는 데 뛰어난 문화다.(예, K-pop)
무엇이라 이름 붙이든- 게임이론, 포스트모더니즘, 밈연구 - 역사의 역학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역사는 교차로에서 교차로로, 뭔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이 경로를 택했다가 다음에는 저 경로로 진입했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인류의 운명뿐 아니라 아마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서유럽, 아프로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커다란 반도에서 그때까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던 지역에서 말이다. 왜 하필 그곳에서 일어났을까? 왜 하필 그때, 인도도 중국도 아닌 곳, 학자들은 열 몇 가지 이론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그럴싸한 이론은 없다.
18장 끝없는 혁명
산업혁명은 에너지를 전환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세상이 호모 사피엔스의 필요에 맞게 변형되면서 서식지는 파괴되고 종들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 그로 인해 생태적 혼란으로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광범위한 오염은 지구를 우리 종이 살기에 부적합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자신의 힘으로 자연의 힘에 대항하고 생태계를 자신의 필요와 변덕에 충족시킨다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위험한 부작용을 점점 더 많이 초래할지 모른다. 이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태계를 더더욱 극적으로 조작하는 것인데, 이것은 더더욱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연 파괴라 부르지만 사실은 파괴가 아니라 변형이다. 자연은 파괴되지 않는다.(소행성이 공룡을 쓸어버렸지만 그로인해 포유류가 번성할 길이 열림)
오늘날 우리 종이 멸종할 것이라는 소문은 성급한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세계 인구는 유례없이 급증했다.
현대의 시간
전통농업의 리듬이 산업의 획일적이고 정밀한 스케줄로 대체
중세 농부나 구두공과 달리 현대 산업은 태양이나 계절을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 대신 정밀성과 획일성을 신성시 한다.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 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다. 공장, 학교 병원 정부기관, 식품점, 대중교통, 방송매체(삐,삐,삐--) 등 모든 것이 시간으로 시작하고 그것에 맞춰졌다. 어디를 둘러봐도 시계를 피할 방법은 없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류사회의 격변중 하나는 사회혁명이다. 그것은 바로 가족과 지역 공동체가 붕괴하고 국가의 시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 사건이다.
우리가 아는 한 인류는 가장 초기부터(1백만년전) 대부분 친척들로 구성된 작고 친밀한 공동체에서 살았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이 일어난 뒤에도 상황은 같았다. 산업혁명은 불과 2세기 남짓 만에 이 단위들을 깨부쉈다. 가족과 공동체가 수행하던 전통적 기능은 대부분 국가와 시장에게 넘어갔다.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
산업혁명은 시장에 막대한 새 힘을 주었고, 국가에는 새로운 통신 및 수송 수단을 제공했으며, 정부로 하여금 사무원과 교사, 경찰과 사회복지사의 군단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국가와 시장은 점점 커지는 권력을 이용해 가족과 공동체의 전통적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개인이 되어라” 네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라, 부모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네게 맞는 직업을 택해라. 네가 원하는 곳에서 살아라. 당신은 더 이상 가족이나 공동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국가와 시장이 당신을 돌볼 것이다. 이렇게 제안했다.
불과 2세기 만에 우리는 소외된 개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핵가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와 시장은 경제적, 정치적 역할의 대부분을 가족에게서 빼앗으면서도 일부 중요한 감정적 기능은 남겨두었다. 그러나 가족은 이 영역에서도 점점 더 많은 개입을 겪고 있다. (연애 및 성생활 방식 및 자녀 교육방식 등, 부모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상상의 공동체
핵가족처럼 공동체 역시 아무런 정서적 대체물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모든 상상의 공동체는 실제로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 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왕국, 제국, 교회 등은 상상의 공동체로 수천 년씩 기능해왔다.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로 부상한 사례 중 가장 중용한 두 가지가 국민과 소비 공동체이다.
국민은 국가가 만든 상상의 공동체이고, 소비 공동체는 시장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이다.
돈이나 유한회사, 인권과 마찬가지로 국민과 소비 공동체는 상호 주관적 실체다. 이것들은 오로지 우리의 집단 상상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 힘은 막강하다.
사람들은 서로 직접 잘 알지는 못하지만 소비 습관과 관심이 동일하면, 종종 스스로 동일한 공동체의 일부라고 느끼며 자신을 그렇게 규정한다.(마돈나의 팬들, 채식주의자들, 환경주의자들 등)
끝없는 운동
지난 2세기 동안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고, 그런 나머지 사회질서는 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오늘날은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의 속성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카멜레온의 색을 규정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속성은 끊임없는 변화다.
현대사는 전에 없던 수준의 폭력과 공포의 시기(19세기와 20세기 끔찍한 전쟁과 대량학살, 혁명 등)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수준의 평화와 평온의 시기였다.
새로 출현한 탄력적 질서는 질서가 붕괴되어 격렬한 분쟁이 일어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억제하거나 반대로 촉발할 능역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시대의 평화
한 개인을 죽이는 것은 테러리스트나 군인, 마약상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자살)일 가능성이 컸다.
폭력이 감소한 것은 대체로 국가의 등장 덕분이다.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폭력은 가족과 공동체가 서로 일으키는 국지적 반목이 원인이었다.
제국의 은퇴
1945년 영국은 지구의 4분의 1을 지배했다. 그로부터 30년 뒤, 그 지배권은 몇 안되는 작은 섬들에 한정되었다. 그사이 영국은 대부분의 식민지에서 평화롭고 질서 있게 철수했다. 제국의 종말을 한숨과 함께 받아들였을지언정 성질을 부리지는 않았다.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매끄럽게 넘겨주는 데 힘을 쏟았다.
프랑스제국은 이보다 완고했다. 붕괴 중 베트남과 알제리에서 승산 없는 싸움을 피비린내 나게 벌인 탓에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그랑스 역시 나머지 지역에서는 신속하고 평화롭게 철수했다. 현지에 남긴 것도 무질서한 혼란이 아니라 안정적인 국가들이었다.
1989년 소련제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를 제외하면 군사적 패배를 당하지 않았으며,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반란도 없었다.
팍스 아토미카(핵 평화)
제국의 소멸이후 등장한 독립 국가들은 전쟁에 아무른 관심이 없었다. 매우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1945년 이래 국가는 정복과 병탄을 위해 다른 국가를 침략하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1945년 이래 UN의 승인을 받은 독립국가 중 정복당해 지도상에서 사라진 곳은 없다. 때때로 제한된 지역에서 국제전이 일어나고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전쟁은 더 이상 일번적인 현상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있었던 적은 예전에는 없었다.
오늘날 인류는 이런 정글의 법칙을 무너뜨렸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진정한 평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행복한 진전을 설명하기 위한 학자들의 이 현상에 기여하려는 요인 몇 가지 요인
첫째,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핵무기는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집단 자살로 바꾸어 놓았으며, 군대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에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졌어야 할 것이다.
둘째, 전쟁의 비용이 치솟은 반명 그 이익은 작아졌다. 이전의 영토를 약탈하거나 병합함으로써 부를 획득할 수 있었던 시대에 비해, 오늘날 부는 주로 인적 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것을 가져가거나 무력으로 정복하기가 어려워졌다.
전쟁의 이익이 전만 못해진 데 비해, 평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익성이 좋아졌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대외 교역과 투자는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므로 평화는 훌륭한 배당이익을 낳는다. 중국과 미국이 평화를 유지하는 한, 중국인들은 미국에 제품을 팔고 월스트리트에서 거래하며 미국의 투자를 받아서 번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마지막 요인은 세계 정치 문화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역사상 많은 엘리트들은 –예컨대 훈 족장, 바이킹 귀족, 아즈텍 사제-전쟁을 긍정적인 신으로 보았다. 반면 우리 시대는 평화를 사랑하는 엘리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상 최초의 시대다. 정치인, 사업가, 지식인, 예술가 등은 진심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악이라고 본다.
세 요인 사이에는 양의 되먹인 고리가 존재한다. 핵무기에 의한 대량학살 위협은 평화주의를 육성 했고, 평화주의가 퍼지면 전쟁이 물러가고 무역이 번창하고 무역은 평화의 수익과 전쟁의 비용을 모두 늘린다.
점점 치밀해지는 국제적 연결망은 국가들의 독립성을 서서히 약화시켜,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ㄹ 가능성을 줄인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더 이상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이제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