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동지
햇살 가득한 봄날, 시댁 마당에서 막 뽑아온 청방배추를 어머니와 다듬고 있었다. 흙 묻은 뿌리 쪽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본 새댁은 괴성과 함께 손에 든 걸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몸은 순식간에 대문 밖까지 튕겨 나갔다.
지금도 꼬물꼬물하는 것들을 보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축축한 몸으로 스멀스멀 움직이는 지렁이 앞에선 더욱더 그렇다. 비가 내리면 잔치를 벌인 듯 마음이 풍요로웠지만, 비 그친 후에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지렁이 때문에 몸서리를 친다.
아파트에 살다 주택으로 이사 왔다.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옥상에 두어 평 남짓한 텃밭을 꾸몄다. 삼월이 다가오자, 그는 퇴비를 넣고 흙을 일구었다. 열무와 겨자씨를 뿌리고, 상추와 케일 모종을 그리고 넓은 화분에는 몇 포기의 방울토마토랑 고추를 심었다. 관심과 정성으로 싹을 틔우는가 싶더니 그이도 봄을 닮아가고 있었다.
직접 키운 쌈 채소를 먹을 때 그의 입이 귀에 걸린다. 하지만 나는 간편하게 사 먹으면 될 걸 싶고, 뜯어온 나물을 겨우 먹어주는 게 다였다. 무심한 사람이라 투덜거려도 어쩔 수 없었다. 나물에 붙은 벌레를 보는 순간, 한달음에 옥상에서 안방까지 달아나곤 한다.
올해는 옥상에 함께 올라가자고 자꾸 조르는 것이었다. 억지로 끌려다니던 내게 깨알 같은 씨앗에서 돋아난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잎이 어느새 밥상에 올려도 될 만큼 자랐다. 고추와 토마토는 꽃이 떨어지기 바쁘게 열매를 맺었다. 옥상 텃밭에는 이름 모를 생명체들도 보였다.
차츰차츰 벌레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좁다란 공간에는 요즘 십여 종의 푸성귀들이 하루가 다르게 키를 더한다. 구김 없는 햇빛과 바람과 물 그리고 약간의 거름이 그네들에게 제공되는 전부다. 해서 채소들의 잎에는 구멍이 무진장하다. 동그라미 사이사이에 여덟 팔 자가 드러누웠고, 우리나라 지도도 새겨져 있다.
칼칼하고 싸한 맛을 내는 겨자와 케일 잎이 뾰족한 선인장마냥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 곤충에게 먹이를 주려고 씨를 뿌렸나 착각할 정도였다. 독식은 반칙이라고 반반씩 사이좋게 먹자고 팻말이라도 써 놓아야 될 것 같았다. 별의별 모양의 흔적들은 어떤 녀석 솜씨일까.
무늬 주변에 벌레들이 많이 붙어 있을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연초록 애벌레가 간혹 눈에 띌 뿐이다. 날아다니는 곤충들이 뜯어 먹는 걸까. 해질 무렵에 옥상에 올라가 보니 흙 속으로 뭔가가 들락거린다. 배 쪽에 까만 주름이 진 녀석들의 저녁 식사 시간인 모양이다.
벌레가 구멍 낸 나물은 음식쓰레기 취급을 했었다. 이제 벌레가 붙어있는 나물이 그나마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임을 안다. 그러나 맛있게 먹다가 발각되면 불상사가 아닐 수 없다. 쌈으로 먹든 데쳐서 먹든 내 눈이 검정을 마친 후에 우리 집 부엌에 들인다. 구멍이 송송 난 잎의 앞뒤를 눈여겨 살피려면 시간이 꽤 소요된다.
그런 내가 답답한지 남편은 뭘 그렇게 알뜰히 살피냐고 핀잔을 준다. 벌레나 우리나 같은 나물을 먹고 사는 생명체라 한다. 맞다, 한 건물에서 살아가니 동거동식 하는 셈이다. 다만 쟤네들은 제 몸에 알맞게 갉아먹고 우리는 밥과 비벼 먹거나 쌈을 싸서 한입에 쏙 넣는다.
이제는 벌레를 보아도 예전처럼 별스레 굴지 않는다. 주어진 본능에 충실한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려 애쓴다. 살피다가 벌레가 보이면 잎에서 떨어지라고 툭툭 털어낸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씻어서 맛나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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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