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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피에르항의 농무 <6>
6.
유감스럽게도 선상생활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차가운 바다 속에서 살려고 선박 쪽으로 죽을힘을 다해 헤엄을 치던 냉동사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바다에 몸을 던진 냉동사를 구조하기 위해 선원들은 모든 장비를 가동했다. 사람을 안전하게 구조하기 위해서는 배의 좌현 쪽에 바람을 받게 하여 파도를 막아주고 우현 쪽에서 사람을 건져 올려야 한다. 배가 접근하자 물에 빠진 냉동사도 배를 향해 필사의 헤엄을 치는 것 같았다. 영하15도 날씨에 해수온은 영하1도 이다. 냉동사에게 20미터 정도 접근하여 구명환을 바다위로 던졌다.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인데도 팔을 움직이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차가운 물에 몸이 굳어지고 만 것이다.
“냉동사 힘내라!”
“라이프 레프트(구명뗏목)를 더 던져라!”
선원들의 동작이 빨라진다. 그러나 냉동사의 몸은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할가(고기를 찍어올리는 기구)로 찍어라! 근쇄를 던져라!”
모든 수단을 다했다. 그러나 파도와 바람에 밀리는 냉동사는 배와 점점 멀어지고 미처 구명보트를 터뜨리기 전에 그의 몸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갑판위의 선원들은 혹시나 하여 그 곳을 주시했으나 냉동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날까지 지금의 모습대로 건강하게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트롤선 1항해사로 출국을 할 때 전 선원을 모아놓고 다짐하던 선장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한사람은 한쪽 팔을 잃었고 또 한사람은 목숨을 잃었다.
“선장님−!”
한차례 양망에 허탕을 치고 채 10분도 지나기 전에 쉬고 있어야할 1항사가 문을 두드렸다.
“왜? 무슨 일이냐?”
첫 항차에 안전사고로 한사람의 중상자를 내고나서부터는 항해사들이 보고하러오면 지레 가슴이 철렁한다.
“선장님, 냉동사가 통 밥을 안 먹고 이상해보입니다.”
“뭐라고, 밥을 안 먹어? 그러고 보니 요즘 안색이 안 좋던데, 무슨 고민이 있는가?”
“당직 끝나면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통 말이 없어예.”
“자세히 관찰해보고 기관장, 1기사, 다른 선원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아라.”
왜 그럴까? 냉동사 자격을 완전히 구비하지도 못했는데 기관장과 1기사가 동향(남해)인데다 전문대학도 나왔으니 마음 맞춰 잘 해보겠노라고 해서 승선시켰는데 이상하게도 냉동사가 당직을 할 때는 냉동이 잘 되지 않는다고 처리사가 투덜댔다. 식사시간에 일부러 냉동사 침실을 둘러보았다.
“냉동사 어디 갔소?”
“세수하러 갔습니더.”
“요즘 냉동사가 식사를 안 한다면서요? 같이 어울려 권하고 여러분이 잘 도와주세요.”
“예,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몸이 좀 안 좋은 갑지요.”
식당으로 가서 기관장에게도 물어보았다.
“기관실에도 별 이상 없고 일은 잘 합니다. 노력도 많이 하구요. 내가 한번 알아보겠심더.”
선원식당으로 들어가보니 냉동사가 밥 한 그릇을 찬물에 말아 훌훌 마셔대고 있었다.
“냉동사, 어디 아프니?”
“언지예.”
“그 덩치에 그리 먹고 되나? 반찬도 많고 한데 밥을 먹어야지. 냉동하려면 기관실에서 처리실까지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힘이 부칠 것인데.”
“괜찮심니더. 걱정 마이소.”
“내가 와 걱정이 안되노. 얼굴이 축이 많이 났는데.”
“속이 좀 안 좋아서요.”
“진작 말해야 약을 줄 거 아이가.”
“예, 고맙심니더.”
약을 취급하는 3항사에게 냉동사의 약을 챙겨주도록 일렀다. 선장실로 돌아와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안개가 짙을 땐 항상 작업복 차림이기 때문에 편히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리고 침실의 불을 끄지 않는다. 돌발적인 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찬송가를 틀어놓고 눈을 감았다. 물에 젖은 솜처럼 온 몸이 나른하다. 새벽4시에 잠이 깨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스트의 수은등 아래는 하얀 안개가 모여 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찬물을 한 컵 마셨다. 선장이 기척을 하는 것을 보았는지 선교의 항해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빨라지는 것 같다. 박선장도 옛날 항해사 시절엔 선장이 사무실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동작을 빨리 하곤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새삼 웃음이 나온다.
정신을 가다듬어 선교로 올라갔다. 모두들 깍듯이 인사를 했다. 평소보다 다른 인사차림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밤새 망질을 한 것이 신통치 못한 모양이다. 선미를 힐끗 쳐다보니 갑판 위에서 망수리가 한창이다. 작업일지를 보니 이번에도 그물만 파손되고 허탕이었었다. 어탐 기록지를 뽑아서 쭉 훑어본다. 망은 파손되었더라도 그 위치를 알아야 다음 작업시 망이 찢겨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투망장소는 저질이 나쁜 곳으로 나타났다. 오늘은 온종일 작업도 여의치 않고 마음도 불편하다. 다른 선박들의 교신내용을 살펴보아도 별로 신통치 않았다. 일반적으로 당직자의 보고를 받고는 그대로 넘어가지만 심기가 불편할 때는 괜히 짜증이 난다.
“야, 너거들 이거를 그대로 믿나? 다른 배 못 잡으니 우리도 괜찮다는 말인가? 정신 좀 똑바로 차려. 바른 말하는 배 어딨노. 똑 같구만, 똑 같애. 너거도 훗날 선장 해봐라, 선장심정 알게다. 언제 철 들겠노. 엉!”
항해사들도 선장과 같은 마음이지만 괜히 화풀이를 하고 선교를 내려왔다. 어선은 원래 잘하면 본전이고 잘 못하면 욕먹기 마련이다. 아니, 아무리 잘해도 잘했다, 소리 한번 못 듣는다. 보고를 받은 선장이 아무런 말 안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내려가면 잘 한 것이다.
날씨는 조금 햇볕이 나려다 말고 흐리다. 짙은 안개로 인해 시계는 100여 미터 정도 이다.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 마스트의 수은등 받침대 위에 올빼미 같이 생긴 큰새 한 마리가 안개에 젖은 채 앉아있다. 간혹 선교 주변에는 갈매기 새끼들이 짐승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떨어져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배에는 고양이도 없는데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범인은 마스트에 앉은 저놈인 것 같았다. 안개는 더 짙어졌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니 물을 머금은 안개가 온 몸을 덮쳤다. 머리는 순식간에 축축해졌다. 농무다! 선교의 보고를 받고 양망을 지켜보는데 선미의 갤로우스가 보이지 않는다. 전개판을 달 때는 조장들의 수신호가보여야 작업이 진행되는데 50미터 거리의 갤로우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갑판 중간에 중개자를 세워놓고 작업을 진행했지만 무척 힘들었다. 겨우 양망을 끝내고 보니 그런대로 평년작은 되었다. 사무실에서 기관장에게 다음 작업을 지시하고 식당으로 가다 냉동사를 만났다.
“좀 어때?”
내가 묻는 말에 냉동사는 “괜찮습니다.” 하고 경례를 부쳤다. 청송교도소 교도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더니만 그 버릇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아래위를 훑어보니 양말을 신지 않고 있었다.
“이 차가운 날씨에 왜 양말을 안 신었지? 동상 걸리면 우짤라꼬 그라노? 급냉실엔 영하 20도가 넘고 바깥에도 영하10도야! 양말 신어야 한다. 알았제?”
“안 신어도 괜찮심니더.”
“잔소리 말고 신어라!”
“예, 알겠심니더.”
“식사는 잘 하나?”
“예, 먹습니더.”
“3항사에게 얘기해놓았으니 필요한 약을 달라해서 묵어라.”
점심은 국수를 즐겨 먹는다. 오늘도 큰 냉면 그릇에 닭고기 국물 맛이 그럴싸해보인다. 국수 한 그릇에 싱싱한 가자미 회 한 접시를 반찬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나도 양말을 잘 안 신으면서 냉동사에게 양말 신도록 잔소리를 한 것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선원식당에 들렸다. 오늘은 닭다리 튀김이 한 사람 앞에 하나, 곰국에 김치, 가자미 찌개에다 밑반찬이 푸짐하다. 냉면을 큰 그릇에 꾹꾹 눌러 담아 먹는 선원이 두어 명 눈에 띈다. 식당을 나와 안전모를 쓰고 선수에서 선미까지 갑판의 물구멍이 막히지 않았나, 점검하고 나서 처리실, 기관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벌써 일주일째. 짙은 안개는 걷힐 줄 모른다. 선내가 모두 축축하고 불쾌지수가 극에 달했다. 선내에는 페인트 냄새와 안개 특유의 악취가 겹쳐 사람을 괴롭힌다. 선교에는 더욱 심하다. 각종 항해계기에 습기가 차면 성능이 떨어지고 수명도 단축된다. 아무리 문을 닫아도 틈새로 들어오는 안개를 막을 길이 없다.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전기 히터를 모두 켜놓는다. 몰아치는 파도소리 때문에 주기관이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희뿌연 안개만 배를 온통 휘감고 있다. 불쾌감을 느끼기는 선장과 항해사가 특히 심하다. 선원들은 6시간을 근무하고 나면 옷에 묻은 고기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해야 한다. 그다음 밀린 빨래를 한 뒤 식사를 하고 나면 잠자기 바쁘다. 이때 어떤 선원들은 장기나 바둑을 두기도 한다. 빨래는 세탁기에 돌려 건조기에 넣으면 바로 꺼내 입을 수 있다. 쉬는 선원은 갑판위에 나올 필요도 없고 안개가 끼었는지 비가 오는지 관심 밖이다. 이럴 때는 선원들이 부럽기도 하다. 한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냉동사 생각이 났다. 항해사를 불러 가장 추운 곳에서 맨발로 일하는 냉동사에게 새 양말 두 켤레를 내어주도록 일렀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누구냐?”
“예, 항해사 입니더.”
“선장님, 냉동사가 양말을 벗으면 다시 빨지 않고 바다에 버린답니다.”
“참 희안한 놈도 다 있네.”
“그러면서도 열심히 일을 배우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알았어. 양말을 빨아 신지 않는 놈이 목욕은 자주하겠나. 목욕이나 자주 하라고 일러주어라.”
“예, 알겠습니다.”
계속되는 안개 속에 따사로운 햇볕이 그립다. 갈매기들도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는지 선수 갑판위에 후줄거니 날개를 접고 앉아있었다.
15일 만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상큼한 날씨이다. 파도도 정다워 보이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다. 청소를 한 후 침실에 누워 푸근한 마음으로 잠깐 눈을 붙였다. 하늘엔 별이 총총한데 뛰어가다 보니 산발한 소복의 여인이 툭 튀어 나왔다.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잠을 깨웠다.
“선장님! 양망을 했는데 고기가 없습니다.”
인터폰에서 울리는 소리이다.
“망은 안 째졌나?”
“괜찮심더.”
“그래, 한번 보자.”
망을 끌어온 자리가 하필이면 고기가 없는 곳을 골라서 끌고 왔단 말인가? 투망코스를 지시하고 내려오니 항해사가 와서 보고를 했다.
“선장님! 냉동사가 영 밥도 안 묵고 말도 없고 선원들과 통 어울리지 않습니더.”
“그래, 내가 한번 면담을 해보자.”
“그리고 냉동사가 잠을 자면서 헛소리를 많이 한답니다.”
“몸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구나. 알았으니 나가보아라.”
냉동이 잘못되면 선원들의 작업에 엄청난 무리가 오고 작업계획에도 차질이 생겨 제품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냉동사와 면담을 했다. 냉동수가 전 어기에도 기관부원으로 승선했었고 또 영리하기 때문에 이론만으로 무장된 냉동사보다 실제 운용이 빠르다. 그래서 냉동수에게 지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을 했으나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데 까지 할 바를 다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선장의 속마음을 보여주었다. 냉동사는 마음의 부담을 덜고 명랑한 기분을 되찾는 것 같았다. 그 후에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사관들의 보고를 받고 어느 정도 마음을 놓았다. 며칠간 순조롭게 작업에 적응하는가 싶었는데 다시 냉동사가 귀국하고 싶어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선장이 가장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귀국시켜달라’는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잠결에 헛소리를 하고 사람들을 기피하는 것이 이상한 점으로 파악되었다. 멀쩡한 사람 하나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해사를 불렀다. 항해사들은 당직시간이 끝나면 반드시 냉동사와 같이 생활하면서 선장이 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관찰일지를 쓰도록 지시했다. 1기사에게도 냉동사의 당직시간을 체크하도록 임무를 부여했다. 그날그날의 일지는 ‘이상무’로 보고되었다. 다시 냉동사를 불렀다. 이번에는 허심탄회하게 학창시절의 얘기를 나누었다. 겨울 내의가 낡은 것 같아 새것 한 벌을 내려주고 기관실 사관들에게도 각별히 냉동사에게 신경을 쓰도록 일렀다.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피로감 등을 감안하여 1기사가 대신 당직을 서면서 냉동사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도 했다.
새벽3시. 지나가는 선박들의 불빛이 처량하게 보인다. 멀리 생피에르의 불빛이 아련하다. 밤새 파도가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해수온은 영하1도, 기온은 영하5도. 진눈깨비가 쏟아진다. 오늘은 냉동사가 식사도 많이 하고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보고를 받았다. 작업이 어렵고 날씨가 나빠도 냉동사가 원기를 회복한다니 그 무엇보다 반가웠다.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당직도 당분간 쉬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기관장의 말을 들었다. 항해사에게는 풍속 30m/sec 이상되면 양망하고 피항 준비를 하도록 지시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작업하기 힘들다는 항해사의 보고이다. 선교에 올라가보니 작업을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양망을 지시하고 항구로 대피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양망 중에 엄청난 파도가 갑판을 휩쓸고 지나간다. 선미에서 백파가 일면서 좌현 쪽에 강한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풍향이 바뀌던지 특별상황이 있으면 보고하고, 파도는 우현 15도 방향으로 받도록 키를 유지하라. 기압변동은 30분마다 체크하고 항해일지를 정확히 기재하라.”
마이크로는 갑판장에게 황천항해 준비를 완료했는지 확인하고 어장도에서 대피항 코스를 살펴보았다.
“선장님, 냉동사가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살롱보이의 화급한 보고이다.
“뭐라꼬?”
“냉동사가 바다에 뛰어 들었습니더.”
“어디에?”
목이 뻣뻣해지고 온몸이 굳어진다. ‘침착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진다. 급히 비상벨을 울렸다. 냉동사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주시하며 배를 돌렸다. 평소 2분30초 이면 족한데 강한 파도와 바람의 영향으로 5분이 넘게 걸렸다. 배를 돌리는 5분이 마치 5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사람을 안전하게 구조하기 위해서는 배의 좌현 쪽이 파도를 받도록 벽을 만들어주고 우현 쪽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려야 한다. 그러나 파도와 바람의 영향으로 배와 냉동사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가다 그는 끝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순간, 배위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선원들의 신음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잠시 후에는 선박과는 엄청난 먼 거리에서 솟구치는 냉동사의 모습을 확인했으나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냉동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전 선원 견시 위치로! 선교에 3명, 톱 브릿지에 2명, 그 외에는 좌우현에서 냉동사를 찾아보라!”
긴급지시를 내리고 주위에 있는 작업선에 연락하여 협조를 요청했다. 머릿속에는 차거운 바다 속에서 살려고 선박 쪽으로 헤엄을 치던 냉동사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찾아야지−.’ 하는 일념뿐이었다. 시커먼 구름이 밀려오고 파도가 후려치는 갑판위에서 동료를 찾겠다고 버티고 있는 선원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옅은 안개를 동반하고 있는 진눈깨비는 어느새 눈보라로 변하여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선원들은 끼니를 거르며 수색작업을 벌렸으나 어두워지는 날씨에 더 이상 견시를 할 수 없었다. 선박에 설치된 모든 작업등을 켜고 야간 수색작업을 계속했으나 허사였다. 냉동사 투신을 처음 목격한 살롱보이를 불러 자초지종 상황을 듣고 본사에 사고보고 전문을 띄웠다.
선원들의 침울한 표정은 선장의 가슴을 더욱 아리게 한다. 밤새도록 몰아치던 강풍은 더욱 기승을 부려 오장육부를 뒤틀리게 한다. 밤을 지새운 선원들의 눈동자는 벌겋게 충혈되어 있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다시 수색작업을 계속 하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루 종일 수색을 했으나 바라는 결과는 얻을 수 없었다. 맥없이 선실로 내려가는 당직 선원들을 보니 선장으로서의 면목이 없다. 본사로부터 냉동사의 승선경위부터 사고 때까지의 상세한 상황을 보고하라는 전문이 접수되었다. 사고 발생시에는 회사대표나 직원들이 유가족을 찾아 사고경위를 설명하고 의문점을 풀어주어야 한다. 본사의 전문에 답신을 보내고 나서 인근의 선박이 야간작업을 할 때 사고지점 부근에서 예망을 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3일간의 수색작업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유가족에게는 사과와 위로의 전문을 보내고 본사에는 오늘로서 수색작업을 종료한다는 보고를 했다. 그리고 냉동사의 침실 사물함에서 유가족에게 넘겨줄 유품을 챙기며 살펴보았다. 친구들로부터 온 몇 통의 편지가 모서리는 닳고 글씨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날큰날큰하다. 편지 여기저기 글씨가 흐려진 흔적은 눈물 자국인지도 모른다. 눈길을 끈 것은 빨간 천으로 장정된 책 하나. 빛이 바래고 책 제목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표지가 닳았다. 표지를 넘겨보니 카알 힐티 著 『잠 못 이루는 이 밤을 위하여』 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한때 베스트셀러의 순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책 속에는 변색된 흑백 사진과 하얀 편지봉투가 들어 있었다. 사진은 아들의 첫돌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박 선장은 냉동사가 결혼했다는 것은 사진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냉동사와 동향인 기관장과 1기사도 그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여태껏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봉투에서 편지를 꺼냈다. 박 선장은 첫눈에 그것이 유서라는 것을 직감했다.
「존경하는 선장님에게
선장님, 참으로 죄송합니다.
이 못난 선원을 용서해주십시오.
인생의 실패와 아픔을 딛고 승선하여
사람답게 살려고 애를 썼으나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배려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동료들에게는 언제나 부담스런 존재로 심려를
끼쳤습니다. 지난 날 나의 굽어진 삶을 바로 펴기에는
역부족인 것을 깨닫고 일찍 세상을 떠나렵니다.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못난 아들을 위해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신령님께 빌고 계시는
어머님을 편히 모시지 못하고 떠나는 불효가 가슴 아플 뿐입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아내는 일찍이 이 못난 사람을 떠났고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할머니와 함께 남해에
살고 있습니다. 늙으신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이 어린 아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귀국하시면 선장님께서 저의 아들을
좀 챙겨보아 주시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신세를 졌던 동료들에게도 용서를 빕니다.
냉동사 신재영 올림」
고인의 유품을 챙기면서 아리는 가슴을 가눌 길 없었다. 박 선장은 하늘을 우러러 ‘하느님의 뜻’을 생각했다. 전 선원은 목욕재계하고 갑판위에 제사상을 차렸다. 냉동사의 후배가 조사를 낭독하는 동안 또다시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선원들이 흐느끼는 소리, 사랑하는 동향의 동료를 수장한 슬픔을 참지 못해 오열하는 기관장과 1기사의 모습은 처참하기 까지 했다. 분향을 마치고 애도를 표하는 기적을 세 번 울렸다. 인근의 다른 선박들도 동시에 기적을 울려 슬픔에 동참 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냉동사가 사용하던 침구 일체를 불태웠다. 못다 이룬 한 젊은이의 눈물인지 진눈깨비가 그치고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기 시작했다.
침실로 들어가자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와 침실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선장의 나약함을 선원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참고 참았던 슬픔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 마지막 선장생활이 이토록 비참하게 오점을 남겨야 한다는 말인가? 항상 머무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나의 선원을 아낀다고 자부하였던 내가 아니었던가? 나의 자만심에 하느님이 노하셨는가?’ 온갖 생각에 괴로워하며 흐느꼈다. 침실의 문을 걸어 잠그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슬픔은 잦아들고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었다. 이제는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망자의 유언의 한 자락이라도 챙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박 선장은 선상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남해 상주를 찾아가 냉동사의 노모를 위로하고 손주를 돌보아주기로 할머니에게 약속했다. 그의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부산으로 전학시켜 친아들처럼 뒷바라지를 했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대어주었다. 그 은혜를 생각함인지 울산에 사는 그는 명절이 되면 아내와 함께 문안을 오는 모습이 고맙고 사랑스럽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