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계단
구석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계단을 오르고 있다.
동굴벽화 몇곳에 계단이 그려져 있고
점토판 설형문자는 ‘계단을 올랐다’로 해석되었다.*
계단 끝에서 신들을 만났다는 소문이 들자
엎드리고, 경배하고, 움츠리는 버릇이 생겼다.
길과 이어진 계단에서 버려진 육체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막다른 계단은 따뜻했다.
“벽돌 창으로 새어나온 불빛이 계단을 비추었다.
그 빛은 언제나 나에게 사랑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스무개의 절망과 한 개의 사랑을 품은 채
늙은 봉우리로 가는 계단에서 네루다는 실종되었다.
지상의 계단이 왜 하늘을 향하는지 아직 모른다.
신에게 가까이 갈수록 찰나만큼 수명이 길어질까.
시간은 계단 위를 아주 느리게 파고들었다.
* 조지 이글턴 『계단의 상징, 신에게 가는 길』. 1965.
** 피블로 네루다 『계단 끝 집』, 1971.
뼈들
홍수가 지나간 뒤로 이름이 생각 안 나요
고향 생각을 해보려 했는데 다른 마을이었어요
청개구리 한 마리랑 더덕 뿌리가 자라 스쳐갔고
어쩐 일인지 말이 달라, 다르게, 다르드레요
내가 기억하는 건 여자의 노랫소리
하양 발목이 떠올랐는데
도무지 돌아보질 않았어요. 분명 엄마를 불렀어요
골반뼈가 사라진 사타구니에서
사슴벌레 유충 두마리가 몸을 뒤섞여 뒤척이고
갈비뼈 두어개가 모자라 쉭쉭
바람이 뒤도 안 돌아보고 지나간 지 오래고요
다람쥐가 감춰놓고 잊은 도토리처럼 망각은 딱딱해요
처음엔 어색했을 거예요. 서걱이는 소리
삐걱이고 웅웅거리다가 또 울다가 깨진 복숭아
아직 어색한 건 단지, 아이의 것이었던 정강이뼈
다리는 자주 엄마를 찾아 덜컥거렸으니까요
함께 구름을 보았을 것이지만 기억이 다른 뼈들이
때론 자운영 피웠을 언덕에서
떡갈나무 묵은 나뭇잎 덮고 누웠을 언덕에서
남은 뼈들이 구덩이를 빠져나와 흘러 계곡에서
어른도 아닌, 남자도 아닌, 빨갱이도 아닌
죽어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렇게요
다행히 그동안 몇 번 큰비가 내렸던 거죠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지쳤거나 심심하거나, 새로운 기분이 필요하거나, 그저 발길 닿는 대로였거나, 강북 어디를 돌고 돌아 집이었는지 길이었는지, 오늘이었는지 먼 훗날이었는지, 공간이었는지 시간이었는지 간에.
창문여고를 지나 장위동 방향으로 오른쪽 길을 올라가는 172번 버스는 종로경찰서 앞에서 탄다. 사십년 전 어디메. 기름 자국이 밴 봉지를 들고 아버지가 오셨는데, 춘천에 생긴 원주통닭집 길모퉁이 어디에서 돈을 세어보고 계실 것 같은 장위동. 하계동 장미아파트에서 내려 지하철 7호선으로 갈아타는 그 자리가 큰딸이 태어나던 시절 살던 하계시영아파트 6동 앞이다. 성북역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 기사께 차비 오십원이 부족해 절절매던 날들이 마치 지금 같아서 등골에 진땀이 밴다. 거기서 만성 원형탈모증에 시달리며 살았다, 동전만 한 가난도 버릇일지 모른다.
사연 없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까.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텐데. 창밖 국숫집들, 짬뽕집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았다면, 진흙으로 귀를 막고, 111번 버스에 손을 묶고 눈을 가린 채 종로6가, 고대 앞, 종암동을 지난다. 곧 망각주는 스무살 폭풍을 감금하던 키클롭스의 술통에서 건져 왔던 것. 무교동을 출발한 항해는 의정부라는 돌풍을 만나 번번이 수락산역 3번 출구에서 난파되었다. 되찾아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였는데, 민주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이 홀로 아름다웠음을 애석해한다.
은밀한 익명. 사명감, 책임감, 무게의 은폐.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황석영을 통해 몰랐던 세계를 알았고 분노했으며, 김지하에게서 시대의 슬픔을 보았고 시대와 나를 동일시하는 법을 익혔다. 이문열은 아련했다. 이상하게도 아련함 때문에 견딜 수 없었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거기다. 아련함 때문에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분노와 슬픔은 거리에 던져버릴 수 있으나 아련함은 자꾸 줍게 된다. 시청 앞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세 번의 건널목을 뛰어, 장비의 눈물 어린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명동을 홀로 뚫고 지난다. 산등의 말소리와 호객꾼의 외침, 네온사인과 맞붙어 4호선 명동역까지, 자룡 조운의 세련된 창 솜씨에 주눅 들어, 늘 술에 젖어.
밤의 시간은 언제부터 도착이었는가. 단 한번의 사냥을 위한 완벽한 휴식, 낮의 시간은 언제부터 방랑이었는가. 문을 통해 들어가는 중이었던가. 나가는 중이었던가.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저무는 거리, 바람에 흔들려야 하는데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길어진 만큼 갈 길은 멀고 마음은 쓸쓸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그림자가 없다. 황혼이 몸을 지나 빠져나간다. 황혼을 붙잡아야 심장이 뜨거워질 터였다. 틈도 순간도 없다. 창백한 얼굴들만 제자리걸음이다.
그해 가을이 분명하다. 그림자를 두고 왔다. 보통강 가 버드나무길 어디다. 그림자가 버드나무 그늘에 묻혔을 때 사랑에 빠진 걸 눈치챘어야 했다. 버드나무 가지들이 이리저리 그림자를 보듬었다. 눈물이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느낀 것 같은데 이념의 관성이 가로막았다. 평양의 쓸쓸함은 그림자 탓이다. 북방의 남자들이 눈물을 흘렸다면 그건 순전히 두고 온 그림자 탓이다.
변명이 소용없고 이성으로 살아가질 않는다. 가을이 오기 전에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그림자에는 고요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게 하는 건 그림자 때문이다. 앞으로만 가는 발길을 붙잡기 위해, 쓸쓸한 날의 머뭇거림을 위해 그림자를,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