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한적하고 산과 물이 어울리는 경치는 빼어났다. 녹음이 우거진 초여름 안개가 낀 산길을 걷는다. 걷기에 좋은 매우 매혹적인 구간이다. 길가에 달맞이꽃이 보인다. 달맞이꽃은 제4구간 답사기에서 소개했던 황금낮달맞이꽃보다 키가 훨씬 크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해뜨기 전에 우리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산책을 날마다 한다. 아침 산책길에 달맞이꽃이 많이 있어서 나는 달맞이꽃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꽃이 피는지를 잘 안다. 요즘에 해뜨기 전에 산책하면 달맞이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밤이 아니더라도 이날처럼 흐린 날에는 때로는 달맞이꽃을 볼 수 있다.
▲ 달맞이꽃
달맞이꽃은 밤에 활동하는 곤충이 수분작용을 돕는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월견초(月見草)’ 종자를 ‘월견자(月見子)’라고 하여 약재로 쓴다. 달맞이꽃 씨앗 기름은 피를 맑게 하며 염증 저항 성분이 있어 피부염이나 종기를 치료하는 데에 효능이 있다. 칠레가 원산지인 달맞이꽃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태양의 신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마을에 낮보다는 밤을, 해보다는 달을 더 좋아하는 한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로즈라고 불린 아리따운 아가씨가 사는 마을에는 여름마다 15살이 된 처녀들이 곱게 단장을 하고 줄을 서 있으면 총각들이 한 사람씩 나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혼인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로즈도 15살이 되어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고, 1년 전 만났던 형제 부족 추장의 작은 아들이 다가와 손을 잡아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추장의 아들은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가버렸고 로즈는 당황하는 사이 다른 남자가 로즈의 손을 잡아버렸습니다. 로즈는 절망감에 빠져 신랑을 거절하고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규율에 따라 다시 병사들에게 잡혀 귀신의 골짜기로 추방되었습니다. 거기서 로즈는 밤이 되면 달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울면서 남자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추장의 아들이 로즈가 생각나 그곳에 갔지만 로즈는 없었고 희미한 달빛에 한 송이 꽃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 꽃이 바로 달맞이꽃이라고 합니다.“
로즈가 2년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듯이 달맞이꽃은 두해살이 꽃이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라고 한다. 달맞이꽃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기 위하여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해인 수녀의 달맞이꽃이라는 시를 발견하였다. 시가 좋아 여기에 옮겨 본다.
달맞이꽃
- 이해인
당신은 아시지요
달님
당신의 밝은 빛
남김없이 내 안에
스며들 수 있도록
이렇게 얇은 옷을 입었습니다
해질녘에야
조심스레 문을 여는
나의 길고 긴 침묵은
그대로 나의 노래인 것을
달님
맑고 온유한
당신의 그 빛을 마시고 싶어
당신의 빛깔로 입었습니다.
끝없이 차고 기우는 당신의 모습 따라
졌다가 다시 피는 나의 기다림을
당신은 아시지요
달님
이 시를 읽으며 발칙한 상상을 해보았다. 이처럼 애틋한 사랑의 시를 쓴 이해인 수녀님은 수녀가 되기 전에 속세에서 연애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예전에 만해 한용운 스님이 쓴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을 읽으면서 혼자 사는 스님으로서 어떻게 이처럼 가슴을 울리는 연애시를 쓸 수 있었을까 궁금했었다. 전에 언젠가 석영과 대화하던 중 만해스님이 신흥사에 계실 때 속초에 사는 과부와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그러면 그렇지!’ 하고 오랫동안의 의문이 풀렸던 적이 있다. 궁금한 독자는 아래 홍주일보 기사에서 만해 스님의 연애 이야기를 확인하기 바란다.
<만해 한용운, 불교 승려로 원적을 둔 설악의 신흥사> 기사 보기
http://www.hj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5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