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직후 프랑스 좌파는 몰락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라는 이름 때문에 독일 나치당을 사회주의 세력이라 착각한 프랑스 좌파들이 히틀러를 적극 지지했고, 비시 정부를 통해 독일 나치당에 협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 세력이 프랑스에서 축출된 직후 좌파의 힘은 약화되고, 상당수의 좌파 잡지들이 폐간되었다.
하지만 독일 세력을 프랑스에서 몰아낸 우익 세력의 대표 드골 장군은 새는 두 날개가 모두 있어야 제대로 날 수 있다면서 좌파 언론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르몽드’다. 오늘날 ‘르몽드’는 세계 3대 좌파 언론사이면서, 동시에 대표적인 우파 잡지인 ‘휘가로’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언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르몽드는 1969년 드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앞장섰다. 1789년 절대 권력자인 국왕과 그를 신봉하는 귀족 세력들을 몰아낸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경찰을 악마화하거나 조롱하는 등 권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문화가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권력 비판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좌파 세력이고, 르몽드는 이런 프랑스의 좌파 정신을 대표한다. 르몽드가 선택한 의리는 권력자인 인간 드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드골이 보호했던 프랑스의 비판 정신을 지키는 것이었다.
좌파적 생각의 뿌리에는 “먹고 사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반해 우파는 “모든 것은 자기책임”이라는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 (수강자 주 : 우파의 또다른 사고 체계에는 “생산성 낮은 약자를 배려하다 보면 국가의 부가가치와 국력도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포함되어 있고, 이에 대해 좌파는 “그런 생각은 결국 가진자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교묘한 편들기로 귀결”된다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좌우의 대립은 끝이 있을 수 없고, 공존해야 합니다.)
오늘날 르몽드에 자주 등장하는 권력은 ‘세계화’와 ‘극단적 중도파’다. 세계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노동과 자본과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지역의 특수성과 고유성이 사라지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자본의 이동과 영업과 상품 판매에 관한 규제가 완화됨으로써 기업 활동이 자유로워져야 하며, 문화 개방도 촉진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부작용을 유발한다.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지는 소위 부익부 빈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것이다. 우파는 세계화의 장점에 주목하지만, 좌파는 세계화의 단점에 주목한다.
유럽 좌파들은 과거에는 미국식 세계화에 반발했다. 세계화의 결과 미국은 더 강해지고, 유럽은 점점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확산된 결과 유럽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소위 유럽식 세계화를 추진했다. 화폐 통합과 공공 부채의 감축을 통해 유럽 공동의 통화인 유로화의 교환 가치를 증대시켰고, 유럽 내 기업 활동의 자유를 높이기 위해 노동과 자본의 이동에 관한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하지만 유럽식 세계화 역시 부작용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유럽 내부에서도 승자독식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었다. 예컨대, 그리스에 별장을 가진 독일 부자의 수가 늘어나는 대신, 이민자의 증가와 함께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 농민들이 자살하는 현상이 빈번해졌다.
세계화의 부작용은 단지 유럽이나 개발도상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세계화의 부작용을 피해가지 못한다. 세계화로 미국 제조업이 붕괴되고 실업자가 증가함에 따라 우파인 공화당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매번 압도적인 표차로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세계화로 인해 공장들이 모두 중국으로 이동한다고 비판하면서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공언하고 있다. 반면, 좌파 중의 좌파인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이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위협한다고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세계화의 확산은 정치권의 이념과 지형을 변화시키면서 좌우의 대립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유럽에서는 극우와 극좌가 연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한국으로 치면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이 이석기 세력의 통합진보당과 연합하는 방식처럼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당이 연계하는 것이다. 이것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정치권의 생리를 보여주는 것이고, 겉으로는 중도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극우이거나 극좌적인 정책을 낳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 유럽의 극단적 중도, 즉 극중도(極中道)는 주로 극우가 좌파적인 이념을 수용하고 집권한 뒤 속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바이든이나 트럼프의 미국,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물론, 최근 쿠데타가 발생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극단적 중도 세력의 위험한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과 언론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지금 세계화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의 이념은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 : World Economic Forum)이 주도하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좌익의 이념은 세계사회포럼(WSF : World Social Forum)이 주도한다.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들은 세계경제포럼(WEF)에만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세계사회포럼(WSF)에 대한 관심은 실종된 지 오래다. 프랑스 르몽드는 후자를 적극 지지하고 그들의 주장을 자주 다룬다. 르몽드의 주요 기사들을 한국어로 소개하는 르몽드코리아를 구독하면 세계화를 맹신하거나 극단적 중도파의 함정에 빠질 위험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