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는 여자/ 김귀선 소문이 자자하다는 경락마사지사를 만난 곳은 시골 좁은 방안이었다. 마사지사는 오십 대 중반의 키가 나지막한 여자였다. 이런저런 자투리 말을 걸며 혈맥을 찾아 압을 주던 그녀가 눅진한 음성으로 의미 있는 말 줄기 하나를 건넸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보신 적 있나요?” (무슨 애기를 하려는 거지?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저런 수더분한 모습으로 손님을 대할 수 있을까. 머리를 뒤로 묶든지 아니면 머리띠로 거둬 올리든지 하지 회오리가 한바탕 지나간 듯 다 풀어진 파마머리로 너저분하니. 대놓고 말을 할 수는 없고 아까부터 참고 있었는데. 매끄럽지 않은 단어 사용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유학했다는 소문은 아닌 것 같아.) “저는 오십 중반이 넘은 올해에 처음으로 가봤어요. 예전엔 갈 생각을 아예 못했는데 친구들이 하도 조르기에 갔었지요. 근데 좀 야릇한 감정을 느꼈어요. 한 남자친구에게서 고백을 받았거든요. 이 나이에도 이성을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정말 있을까요?” (아니! 이 아줌마가 뭔 내숭은.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될 걸. 오십 고개 넘은 나이에 척 하면 삼척인 줄 모르는 모양이지. 안 그래도 경락 통증에 기가 넘어갈 판인데 눈치도 없이 이성 자랑질이라니. 그것도 느끼하게 빙빙 둘러대면서 오직 자신만이 진중한 고백을 받은 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게를 주려 하는데 그런 고귀한 사랑얘기 한두 번 들어본 것 아니거든. 그나저나 최근에 동창회를 갔다는 걸 보니 그동안 분명 남편이 못 가게 했나 보다. 참말로 동창회도 못 나왔을 정도로 바깥출입이 어려웠다면 유학 이야기는 더 믿기 어렵구만.) “우리 옆 동네 살았다는 것밖에 모르는 남자친구인데 개는 다들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 친구 집이 아주 못살았거든요. 초등학교도 겨우 나왔는데 사람 팔자 알 수 없더라구요. 지금은 빌딩을 몇 개 가지고 있다면서 겉모습만 봐도 부티가 납디다. 그날 찬조도 제일 많이 했더라구요. 내가 동창회 참석하다는 소문을 듣고는 일찌감치 식당에 와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대요.” “아! 예.” (여자들이 자랑하는 남자친구란 하나같이 성공하고 멋있고 여자에게 잘해 주지. 지기만의 행운인 양 황홀해하지만, 그건 연애 공식에 대입되는 절차일 뿐이라 했는데……. 통증에 찡그리는 모습 보면 모를까. 남의 남자 자랑 듣고 싶은 기분 아닌데 상대방 입장도 좀 생각해 주시지.) “금방 내 옆에 올 수가 없었다네요. 내가 도착하자마자 몇 남자 친구들이 내게 딱 붙어 있어 가까이 오려 해도 못 왔다고 합니다. 노래방에 가서야 슬그머니 옆에 앉더니 그 말을 하더군요. 고백하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이 자기 가슴에 깊게 남아 있다고 하면서 지금도 내 모습이 그대로라고 하더군요. 희한했어요.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와중에도 그 말소리만은 선명하게 들렸어요. 별일도 다 있습디다.” “정말 멋있는 친구네요. 첫사랑을 못 잊는 남자가 있다더니 친구 분이 그런 분인가 봐요.” (여기 착각녀 또 하나 있네. 듣는 내가 부끄러워질라 한다. 이마를 치뜰 때마다 밭고랑 같은 주름은 어떻고, 눈 닦고 봐도 호감 가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남자들은 다 늑대라더니 달콤한 말로 꼬셨구먼. 늦바람나기 딱 맞아. 얼른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건데. 에휴 이 얘기 언제 끝나지.) “그런데 참 그런 여자들 있잖아요. 모든 남자들이 자기를 좋아할 거라고 착가하는 여자요. 우리 친구 중에도 괜찮은 남자친구라면 죄다 자기가 독차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애가 있는데 몸매도 참하고 얼굴도 이뻐요. 개가 우리 옆에서 자꾸 얼쩡거리는 거라요. 그 남자친구와도 만나고 지낸 지 오래된 모양입디다. 내가 불편해하니까 남자친구 하는 말이 자기는 미음을 주고받는 진정한 이성을 두고 싶다고 하데요. 그 소리를 들으니 우리 오빠 말이 생각납디다. 오빠가 혼자 살거든요. 오빠와 아주 가까이 지내는 언니가 있어서 그 언니와 결혼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개는 노는 여자 아이가’ 하대요. 남자들 세계는 그런가 봐요. 깜짝 놀랐어요.” “아~~~예~~~” (그럼 자신은 아주 괜찮은 여자라 그 말이네. 이제껏 자랑하고 싶어 어떻게 참았을꼬. 참말로 걱정된다.) 경락을 마치고 문지방을 넘으려는데 낭창한 그녀의 몇 마디가 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들어줘서 넘 고마워요. 이런 얘기 아무한테나 못 하겠습니다. 다들 남의 얘기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척해놓고선 뒤에서는 온갖 흉 다 보더라구요.” 순간, 나는 발을 헛디뎌 마당으로 나동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