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식탁에 앉아 조용한 식사를 한다. 정적을 깨는 건 남편인 잉그바르다. 타임머신이 이론상 가능하다는 기사를 봤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내인 마리아는 그렇다면 과거로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메마른 톤으로 말한다. 잉그바르는 현재가 중요하기에 미래를 생각지 않는다고 하고, 마리아는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는 부부의 이 짧은 대화로 시간의 정서적 간극을 메꾸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을 암시하며 시작된다. 부부의 일상은 단출하다. 양을 기르고 농사를 짓는다. 영화의 초반은 마치 다큐를 보여주는 듯한 화면으로 그들의 일상을 덤덤하게 담아낸다.
그러는 와중에 그들이 사육하는 양들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그들과 미묘하게 비슷하다. 카메라는 생활 반경이라는 프레임에 속박된 인간과 농장 축사라는 한장된 공간에 속한 양 떼, 그리고 그들 모두를 한 화면에 가두는 자연이라는 시공간 프레임을 통해 그들이 서로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관객에게 인식시킨다. 같은 라디오 방송을 듣고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고 자식을 잃은 인간들은 양의 출산을 돕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는 시점에 믿을 수 없는 존재 아다(ada)가 태어난다. 양이 낳았으나 인간의 몸과 양의 얼굴이 함께 하는 아이, 잉그바르 부부는 그것을 신의 선물이라 여기지만 어미 양에겐 내가 낳은 내 자식을 인간이 빼앗아간 것이다.
저주와 축복을 동시에 안고 태어난 듯한 아다는 두 개의 모성을 충돌시키게 된다. 자식을 잃은 자신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라 여기는 마리아와 자신이 낳은 자식을 돌려받기를 바라는 어미 양 3113번은 서로의 소유를 주장하다 결국 마리아는 어미 양을 살해하는 것을 택한다. 이때부터 영화의 주제의식은 3113번의 죽음과 함께 선택과 희생이라는 딜레마를 제시한다. 아다를 양육하며 잉그바르 부부의 관계는 회복되어 간다. 새 생명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생긴다. 어쩌면 아다는 신이 그들에게 준 또 다른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의 죽여서 무언가를 빼앗는다면 빼앗긴다는 고통으로 돌려받는다. 그것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으나 애써 무시하며 외면했던 현실인 것이다.
중반부에 이르러 갑자기 세 식구 사이에 잉그바르의 형제 피에튀르가 이들에게 등장한다. 아다의 존재를 부정하려 하고 형제의 아내를 탐내는 그는 추방이라는 형태로 사라지게 된다. 설정상 피에튀르의 등장과 퇴장은 부부에게 경고처럼 느껴진다. 돌봄과 빼앗음을 선택해야 했고 그 결과로 받게 될 처벌과 같은 희생을 의미한다. ‘램’은 결과적으로 인간과 양 그 모두를 내려다보는 안개가 가득한 산 봉우리의 방관에 대한 영화로 보인다. 있으나 없고, 없으나 있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에서 무엇을 택하고 잃는지 양도 인간도 알 수 없다. 기회라 여기던 것들이 복수하듯 악몽이 된다. 크리스마스에 탄생한 아이는 양의 얼굴을 한 예수 일지 긴 겨울밤의 악몽일지 누구도 모른다. 간절함은 욕망이 되어 희생을 부르고 그 희생이 절망을 낳는 굴레 안에서 목 놓아 절규하는 마리아를 두고 영화는 엔딩에 헨델의 사라반드를 장중하게 울린다.
그 음악은 동시에 램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되기도 한다.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는 모호함을 추구하고 있다. 해석의 여지는 어떤 형태로도 받아들일 수 있게 구성하고 내러티브보다 미장센에 힘을 실은 이유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반드가 울리는 순간 결말을 일 편향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영화로 만들어지고 관객의 상상을 제약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램은 구원과 굴레라는 비현실적이고도 현실적인 질문을 깊이 있게 던지고 있다. 축복은 양의 형태인가, 인간의 형태인가? 우리는 안개로 싸인 산 그 속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엔 현재 사이엔 양과 내가 있다. 우리는 눈 속에 서로를 담는다.
첫댓글 와~~~~ 좋다 영화보다 리뷰가 더 좋은 느낌이네요 글 넘 좋다요 우리는 눈속에 서로를 담는다 !!!!소름
보통의 리뷰는 경치를 감상하듯 담아내셨듯 한데, 이번 램은 그림이 안그려지네요 ㅎㅎ
영화가 왠지 어려울 것 같을 느낌이 드네여 . 그치만 중간중간 던져주신 질문들로 분위기가 어렴풋 느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 댓글 영화 보면 다시 자세히 볼게영~*^
우와 ….. 진짜 몰입하면서 읽었습니다. 수많은 동물중 양을 선택한 것과 주인공 이름들, 개봉 시기등에서 소대가리님이 지칭한 ‘모두를 내려다보는 안개가 가득한 산 봉우리의 방관’ 이 신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되네요 ~ 마지막까지 모호함으로 일관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느껴지긴 하지만 너무나 좋은 영화평 감사합니다 🥰
항상 소대가리님의 영화평은 제 얕은 지식수준의 영화감상을 반성하게 하네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
문단 띄어쓰기 감사합니다 ^^
영화보다 좋은 리뷰
크아 글 제목부터가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