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정밭은 선사시대의 모습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밭은 황량함 그대로다. 짐승이라도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이 을씨년스럽기조차 하다. 몇 개월 묵혀두었다고 잡초들이 제멋대로 돋아나 아우성이다. 고추가 주렁주렁 열려있을 고추밭에는 아이들 키만큼 쑥이 돋아났고, 깨밭에도 콩밭에도 잡초들로 우거졌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엔 이렇지 않았다. 삼천 평이나 되는 넓은 밭엔 풀 한포기 보이지 않았다.
밭을 내려오며 창고를 들여다본다. 작은 손수레며 괭이와 삽이 널브러져 있다. 모두 아버지가 쓰시던 농기구들이다. 그 중 작은 호미에 눈이 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한시도 놓지 않으셨던 것이다. 늘 반질반질 하던 호미가 그 사이 녹이 부슬부슬 슬어 있다.
아버지는 늘 새벽 네 시에 일어나셨다. 잠이 없으신 탓만은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일만 한다고 흉을 보았기에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 일찍 일어나셨던 것이다. 그 정도로 아버지는 부지런 하셨다.
아버지는 일곱 살 때 할아버지를 여의셨다. 가장이 없는 생활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기술을 배워야한다는 주위의 권유에 아버지는 자동차 운전을 배우셨다. 일제 강점기에 운전 기술은 최고였다.
운전사가 되신 아버지는 만주로 가셨다. 만주의 유적지 앞에 번쩍이는 세단(승용차)을 세워 놓고 찍은 사진들이 참 많았다. 정장차림에 검은 망토를 두른 모습으로 보아 그 때가 아버지의 호시절(好時節)이었던 것 같다.
해방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어머니와 혼인하고 운수사업을 시작하셨다. 그 당시의 운수사업은 말 그대로 운이 좌우하는 사업이었다. 넉넉하게 살다가도 사고가 한 번 나면 전 재산을 다 털어 넣어야만 했다. 아버지의 사업은 그야말로 부침이 심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였다.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시내버스가 지방정부의 관리를 받게 되며 업주끼리 불화가 잦았다. 내성적인 아버지는 사교성도 사업 수완도 없었다. 아버지는 매일 울분을 토하셨다. 무언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기야 그 전부터 아버지는 그 일을 그렇게 하시기 싫어하셨다. 집에 돌아오시면 늘 짜증을 내셨다.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은 그만둔다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일을 그만 두신 것은 큰 사고를 당한 다음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는 그 때 마음을 굳히신 것 같았다. 퇴원하시고는 바로 사업을 접고 농사일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친지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셨다. 농사만 지으시면 노력한 만큼 대가가 나온다고 큰소리 치셨다. 땅을 마련해 달라고 나를 졸랐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몇 년 후 어렵사리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 드렸다.
아버지는 열과 성을 다해 농사일을 하셨다. 씨를 뿌리고 새싹이 돋아나고 커 가는 모습이 그렇게도 보기 좋으셨던가보다. 하루 종일 밭을 오가시면 작물 가꾸기와 풀 뽑는 일에 매달리셨다. 제초제를 치면 편하다고 해도 땅을 버린다며 한 귀로 흘리셨다. 어떻게나 김을 매셨던지 아버지의 호미는 늘 두 해를 넘기지 못했다. 못 쓰게 되는 호미가 늘어나는 만큼 아버지의 허리는 휘어지셨다. 아버지는 잡초와 철천지원수처럼 싸우셨다. 그러나 노력에 비해 수확은 늘 미미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농사일을 좋아 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두 분은 정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잠을 설치셨다. 저녁만 드시면 이내 잠드시던 분이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많았다. 병원도 한의원의 처방도 다 소용 없었다. 결국 입원을 하시게 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 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영면에 드셨다.
아버지는 한이 많고 늘 외로웠던 분이다. 조실부모하고 어렵게 세파를 헤쳐 나갔던 분이셨다. 아버지의 황금 시절은 만주봉천에서 망토자락 휘날리시던 그 몇 년이 아마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농사일을 마음껏 하시다 가셨으니 잘 살다 가셨다고도 할 수 있다. 부디 저 세상에 가셔서는 호미는 잡지 마시고 허리 펴고 유유자적하셨으면 좋겠다.
창고 바닥에 널브러진 호미를 집어 든다. 호미는 아버지의 허리처럼 굽고 닳았다. 아버지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호미를 고이 벽에다 걸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