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감독을 평가하는 기준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흥행, 둘째는 비평, 그리고 세 번째는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강제규 감독의 ‘쉬리’, 2000년 박찬욱 감독의 ‘JSA 공동경비구역’을 필두로 다수의 흥행작이 쏟아졌다. 역대 최고의 흥행작은 김학민 감독의 ‘명량’으로서 관객 수가 1,700만 명을 넘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과 ‘기생충’, ‘설국열차’로 3천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에 대한 평가가 가장 좋다. 비평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낯섦을 새롭고 흥미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만드는 감독의 능력이다. 소설로 치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인기 작가의 글이 아니라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불편하지만, 책 읽기를 멈추고 생각(stop to think)하게 만드는 예술적 능력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은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불편한 것을 꺼린다. 익숙하지 않은 노래로 채워지는 위대한 가수의 콘서트는 망하게 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보수적인 다수의 대중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면서도 진보적인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박찬욱과 봉준호 중에서 누가 더 낫냐는 논쟁이 벌어지면, 비평가들도 팽팽하게 둘로 갈라진다. 영화적 솜씨(cinema arctic) 측면에서 보자면 박찬욱 감독 편을 드는 쪽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권위 있는 국제 영화제 수상’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봉준호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는 ‘칸’이다.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를 합쳐 세계 3대 영화제라고 부르지만, 그건 단지 3이라는 숫자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지 1등인 칸 영화제와 2등인 베니스 영화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에 가장 콧대가 높고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오스카(아카데미)상, 그 중에서도 작품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의 황금 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영화는 역사상 세 개 정도에 불과하며, 비영어권 영화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유일하다. 앞으로도 비영어권 영화로서 두 상을 동시에 받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국 영화계에도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명장 봉준호 감독이 최근에 만든 영화 ‘미키17’의 흥행이 시원찮다. 글로컬(glocal) 시대에 맞지 않게 한국의 고유한 스토리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선하고 번뜩이는 영화적 장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연휴 동안 ‘미키17’을 찾은 관객 수는 많지 않았다.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도 투자 규모와 작품성에 비해 관객 수가 초라했다. ‘암살’, ‘도둑들’, ‘전우치전’ 등 최고 흥행작을 만들어 왔던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이 흥행에 참패한 이후부터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의식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관객이 줄어 극장 매출이 줄면 투자가 줄고, 영화의 재생산이 어려워진다.
한국 영화가 위기에 빠진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여러 신문에서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들에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상업적인 마케팅에 치중하다 보니 문화적인 측면을 간과했고, 그것이 결국 한국 영화의 수명을 단축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위기가 기회인 측면도 있다. 흥행작이 줄면, 그동안 극장에서 상영되기 어려웠던 저예산 다큐 영화와 같은 다양한 작품들이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남으로써 한국 영화계의 부흥을 이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원을 받아서, 혹은 개인적으로 칸 영화제에 23번이나 다녀왔다. 해외 관객과 비평가의 눈으로 한국 영화와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다.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문화에는 그동안 자신들이 최고의 가치나 진리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뒤흔드는 요소들이 많다. 서양 최고의 가치란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이고,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다윈주의(적자생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문화에는 공동체, 희생 등과 같이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비개인적이고 비합리주의적인 가치들이 많이 등장한다.
오늘날 미국의 힘은 국방성과 백악관, 그리고 할리우드로부터 나온다. 할리우드의 매출액은 삼성전자의 한 분기 수익 정도에 해당할 정도로 그리 큰 규모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없는 미국은 상상할 수 없다. 한국은 과거 아시아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로서 인종적이거나 문화적인 차별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홍익인간의 정신이 배어 있는 한국 영화와 K-팝, K-드라마 같은 K-컬처는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국인에 대한 외국인들의 태도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산업적인 성공, 높은 매출액에 매달리는 바람에 잃어버렸던 우리의 가치들을 문화적인 차원에서 다시 살려 내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해야 할 시점이다. ’정돌이‘ 같은 저예산 독립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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