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110324강론
신명 6,2-6; 히브 7,23-28; 마르 12,28-34
희생이란 단순히 어쩌다가 한 번씩 바치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의 깊은 필요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다
사랑과 희생은 흔히 함께 가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에서 두 가지 모두가 언급된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제1독서 말씀은 독실한 유대인들이 매일 암송하는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잘 알려진 계명인 셰마 Shema입니다.
예수께서는 복음 말씀을 통하여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라는 추가 내용과 함께 셰마의 내용을 반복하십니다. 예수님께 질문을 한 사람은 이러한 종류의 사랑이 어떤 희생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대답합니다.
즉, 달리 말씀을 드리자면, 그러한 사랑은 성전에서 올리는 어떤 희생보다 더 가치가 있는데, 이제는 그런 성전의 의식 희생제물이 진정한 종교적 삶을 살 수 있는 대체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제2독서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의 사제직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성부께 자기 자신을 단 한 번이며 마지막인 희생 제물로 바쳐 올리셨다는 말씀이지요.
이렇게 예수께서 바치신 희생제물은 성전의 의식 행위를 대체한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 올리신 행위는 하나의 순수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 즉 성부께 대한 사랑과 우리에 대한 사랑이라는 순수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희생을 사랑하는 것은 오늘 날의 문화적 가치로는 소중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 날의 문화적 가치 판단에 있어서는, 사실, 희생이라는 것은 사라져 없어져 버리고 그 대신 다만 탐욕만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많은 부모들은 여전히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으며, 친구와 연인들은 여전히 서로를 위해 희생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희생의 개념은 아브라함에게 외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부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에 이르기까지 성경에서 주목할 만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미사 중에 그리스도께서 바치시는 희생 제물에 합하여 우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도록 하라고 초대하지만, 그렇게 우리 자신을 예수께서 올리시는 희생 제물과 합하여 봉헌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니게 될까요?
우리 자신의 삶에서 우리는 어떻게 희생의 개념을 우리와 연관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희생에 대한 개념은 저 멀리 의식의 가장 자리에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러 인기텔레비전 프로 그램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사람들의 의지를 자주 기록하고 있으며, 이러한 프로그램은 계속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자신을 희생하려는 충동이 얼마나 깊이 들어가 있는 지를 증언하는 기록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친구와 죽음 사이에 서서 친구 대신 스스로의 목숨을 바치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하여 자기네들 스스로가 처형을 당한 독일군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예 중 하나는 1852년 남아프리카 해안에서 바위에 부딪힌 영국 선박 “버켄헤드 Birkenhead”호의 예입니다.
수백 명의 군인들이 우선적으로 모든 여성과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네들의 구명보트를 내어주고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건초, 의자, 문짝, 테이블, 그리고 기타 부유 목재 묶음에 매달려서 일시적으로 자신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급기야 상어 떼가 모여들어 그렇게 목숨을 유지하던 군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연이어 잡아채기 시작하면서 특별한 공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가장 슬프고 영감을 불러 일으켜 주며, 가장 눈에 띄는 행위는 한 사람의 개인의 영웅적인 행위였습니다. 그 사람은 영국군 제74 하이랜드 부대 소속 알렉산더 러셀 소위였습니다.
러셀 소위는 자기가 타고 있던 보트 뒤에서 익사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인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러셀 소위는 보트 뒤에서 헤엄치기 시작했지만 5분 만에 상어에게 잡혔고 끔찍한 비명과 함께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삶은 전체성을 향한 하나의 여정입니다. 그 과정을 밟아 나아가면서 우리는 통합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하는 하나의 여정,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우리 자신의 모든 부분을,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까지 모두 – 통합하기 위하여 – 고군분투하는 하나의 여정인 것입니다.
희생을 해야 할 필요는 바로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부분의 하나입니다. 희생을 해야 할 필요는 흔히 은폐당하고 억압이 되지만 누군가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을 때 의식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희생이 단순히 쓸모없는 자신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하는 구식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또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내가 자발적으로 포기하여 희생으로 바치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구식 종교적 교훈도 아닙니다.
희생은 단순히 어쩌다가 한 번씩 바치는 의무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깊고 내면적인 필요에 대한 응답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를 바치고 소비하는 것은 인간의 일부입니다.
기혼자들은 서로를 위하여 그렇게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희생이라는 것은 이 미사 중에 기억하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희생이라는 것은 우리를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세상에서 하시는 일에 대한 신비와 연결시켜주는 우리 자신들의 일부를 나타내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어농성지 에서 미사드리고 나왔어요
성지에도
멋진가을이
내려 앉았네요^^
성당서 진선성지 대둔산 다녀 왔러요
아름다운 가을산을 .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 주시니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보기만 해도 힐링 이되니 고맙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시는 그림은
신비 그자체 잎니다
어떻게 이처럼 아름답게 배색을
넣 수 있는지 그저
감탄하고 있을뿐
하느님만이 하시겠지요 ~~
하느님 아버지의
예술 작품은 들넠은 온통 황금빛으로 온화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
찬미예수님!
아멘. 🙏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아멘!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멘.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을 되새겨보겠습니다
신부님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