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과 함허동천으로

[가야]

멀리까지 운전해서 갈 엄두를 못내니
생각끝에 제안한 곳이 함허동천이었다.
계곡 분위기가 궁금하다는 다빈과 아침부터 서둘렀으나
10시도 안된 시각에 텐트족도 많고
아기들은 벌써 물놀이 중이다.
가방속에 각종 먹거리와 읽을 책도 하나 넣어
야심차게 자리잡고 앉았지만,
엉덩이 만한 돌위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을라고..
벌써부터 허리가 피곤하니
나는 어디 평평한 바위위라도
드러눕고 싶어졌다.

'아, 옛날 문인들이
계곡에 가서 시를 읊고 놀았다는 건
분명 평상같은 바위가 있었다는 조건하에서 가능했을 것이야..
한쪽에는 술상 차려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누구는 술기운에 노곤해서
눈 좀 붙이고
누구는 물결같은 리듬으로
거문고 뜯고
시상이 가득찬 누구는
시 한 줄 뽑아내겠고..'

시를 창작할 기능이 부족한 나는 그늘지고 시원한 계곡에 앉아
책 반 권은 읽고 와야지 다짐했건만,
누구는 내 옷에 물탕 튀기며 지나가고
누구는 고기 궈먹으며 기름 흘려보내고
바라지도 않는데 스피커로 뽕짝을 들려주시는 어르신 덕분에
조용히 짐싸들고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