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테 안단테 / 신현식
네온이 춤출 무렵이었다.
번화한 상가에 문이 닫힌 가게가 있었다. 유독 한 가게만 불이 꺼져 있는지라 이빨이 하나 빠진 것처럼 보기가 흉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친구 J가 궁금하여 차창을 내다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이 닫힌 가게는 J의 식당이었다.
J는 하던 사업이 기울자 남은 재산을 다 털어 큰 식당을 개업했었다. 경험도 없는 사람이 크게 시작해도 되는가 하고 걱정을 하자, 그는 걱정 없다고 큰소리쳤다. 그리고 크게 해야 돈을 빨리 벌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행히 개업한 J의 식당엔 손님들이 줄을 이었고, 때로는 빈자리가 없을 만큼 북적였다. 그의 말처럼 금세 돈방석에 앉을 듯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부근에 비슷한 식당이 더 크게 문을 열자 손님들의 발걸음이 그 식당으로 쏠리게 된 것이다. 당황한 J는 전단지를 돌리네, 선물을 주네, 메뉴를 개발하네, 종업원을 줄이네, 온갖 몸부림을 쳤었다. 썰렁한 그의 식당 앞을 지나며 동경의 메밀국수 집이 차창에 비쳐졌다.
오래 전, 동경에 갔을 때였다. 6대째 메밀국수 집을 하는 유명한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었다. 변두리에 위치한 그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가 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자리가 없어서 그런가 했는데 식당 문이 열리지 않아 줄을 서 있는 것이었다. 배짱이 두둑한 주인인가 했더니, 원래 이 식당은 정오가 되어야 문을 연다고 했다.
방해받지 않고 느긋하게 음식을 준비해야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다는 선대 주인의 방침이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그럴듯한 대답에 음식 맛이 기대되었다.
정오기 되어 우리는 식당에 들어갔다. 건물은 일본의 전통 가옥이었는데 실내는 넓지 않았고 호화롭지도 않았고, 그저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을 뿐이었다. 벽에는 6대째 내려오는 집이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써 붙여져 있었다.
메밀국수는 맛이 있었다. 이제껏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특별한 맛이었다. 메밀국수는 메밀로 빚은 면과 다시물이 전부인 간단한 음식인데 미묘한 맛을 내고 있었다. 바이올린 독주가 아닌 현악 사중주 같은 맛이었다. 면발에서는 독특한 질감이 느껴졌고, 가다랑이와 다시마를 우려낸 다시물의 맛은 예술의 경지라 할 만했다. 200년을 훌쩍 건너온 맛이라 그런지 신비스러움까지 느껴졌다. 독특한 맛에 그런 신비스러움까지 보태어지니 메밀국수를 먹는 게 아니라 마치 예술품을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먹기가 아까워 천천히 천천히 먹었다.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을 간신히 누르고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식당 밖에는 손님들이 아직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시사철 이렇게 손님이 많다고 하니 이보다 나은 장사가 있겠는가 싶었다. “옆집을 사 넣어 확장을 하지!”라고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자동차는 J의 식당을 저만치 뒤로하고 있었다. 달리는 차 속에서 나는 무릎을 쳤다. 여태 몰랐던 메밀국수 집 주인의 속을 알아 냈기 때문이다.
문을 미리 열지 않은 것은 천천히 음식을 준비하기 위함이었지만, 식당을 확장하지 않는 이유는 몰랐다. 그런데 오늘 J의 식당에서, 그것 역시 천천히, 천천히 돈을 벌겠다는 계산임을 알게 된 것이다.
식당을 확장하게 되면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많은 음식을 준비하려면 일손이 많아야 할 것이다. 남의 손은 내 손 같지 않아 음식은 전통의 맛에서 멀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손님의 발걸음도 멀어질 것이다. 작은 규모지만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천천히 업을 하면 대를 이을 수 있고, 대를 이으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그 주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메밀국수 집 주인은 J처럼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빠른 것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급하게 먹는 음식에 체하고, 설익은 것은 무엇이든 탈을 내게 마련이다. 우리는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걸고 있다. 팔자걸음 걷던 우리가 왜 이렇게 종종걸음을 치는지 모르겠다. 세상사, 인생사, 천천히, 천천히 갈 때 더 멀리 온전하게 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달리는 차 속에서 천천히, 천천히 사랑의 손길을 보내 달라는 아바의 노래가 취기 오른 나를 비웃듯 흘러나왔다.
‘좋아하는 술을 오래 마시려면 안단테, 안단테!’ 하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