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종일 그 애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려보아도
친구들과 수다를 풀어보아도
성*원의 은혜라는 다섯살 계집아이가 눈 앞에 아른댑니다.
지난 해 성탄절 즈음..
뜻이 맞는 몇몇 친구끼리 노량진의 성*원에 다녀왔었습니다.
성*원은 국가의 보조를 받는 몇 안되는 버려진 아이들의 수용소(?)
입니다.잘 나가는 보육원이죠..
내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기쁨과 야릇한 두근거림으로
찾은 그곳엔 성탄을 앞두고 모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왔고 인기 탈랜트
*애리도 왔더군요.
일년에 두 번 그곳에 들러 모든 아이들에게 새 옷을 선물한다는 그녀..
촬영 덕분에 우리들과 5세 이하 어린이방 원생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방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녀와 촬영할 아이들의 옷을 기계적으로 갈아입히던 보모들의
배려라곤 없는 손길덕에 모가지를 끼고 뺄때마다 위 아래로 치켜지던
무표정한 아이들의 눈과 입술..
아이들의 몸에 익은 무저항이 바늘이 되어 가슴에 박혔었죠..
애틋한 맘에 한번이라도 안아줄라치면 날카롭고 짜증스런 말로 우리를
무색케 했던 나이 어린 보모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성*원의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그런 보육시설에서 사육(?)되는 아이들은 나이
에 비해 키도 형편없이 작고 언어가 몹시 미숙하답니다.
그래 다섯살이 된 은혜도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하얗고 작은 얼굴,뾰족한 턱..까만 바가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예쁜 아이였죠..
은혜처럼 들어온지 꽤 된 아이들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랍니다.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신입생의 얼굴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목불인견
입니다.
아이들간에도 텃세가 있는지라 모두 떼로 뭉쳐 때리고 할퀴어서 온 얼굴에 상
처가.. 이렇게 보기에도 짠한 아이들에게 점심 먹고 돌아서면 우유가 젖병에
담아 나옵니다..다 큰 아이들에게..(아이들이 흘릴까봐 그런거죠)또 돌아서
면 주스가 나옵니다.이렇게 잘 먹이는데 아이들은 왜 그리도 형편 없느냐구
요..
점심은 국 그릇에 멸치가루와 다른것들을 섞은 돼지 죽이 나옵니다.
점심이 나오자 보모들은 아이들을 벽으로 밀어붙여 일렬로 앉혔습니다.
움직이거나 달아나지 못하도록요..
우리들은 얼떨떨한 채 아이들이 입을 벌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숟갈씩 떼먹
였습니다. 보모는 화가 나서 우리 숟갈을 빼앗아서는 보란듯이 아이들의 입
속에 돼지죽을 퍼 넣었습니다.
미처 삼키기도 전에 퍼 넣고 또 퍼 넣고..
신기한 것은 봉사자들이 먹여 줄때는 투정부리듯 벌어지기 힘이 들던 아이들
의 입이 말 한마디 않는 보모 앞에서는 제비 새끼들마냥 쩍쩍 벌어지는 겁니
다..물건을 찍어 내는 공장의 기계들처럼 말이죠..
죽 한 그릇을 비우는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가슴 아프고 화가 치밀어 차라리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매일을 많은 아이들과 함께하려면 나름대로의 규율과 방식이 필요하려니..그
렇게 여기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이해하기엔 그들의 손끝과 눈길이 너무도 차가웠던거죠.기계
처럼 움직여대는 어린 아이들의 익숙함이 너무도 가련했던거죠..
아무런 애정과 사랑이 없는 음식을 그저 습관처럼 받아넘기는 아이들에게 정
상적인 발달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버려진것만으로도 두고두고 가슴앓이를 할 아이들이 아니던가요..
마음을 다해서 끌어 안아주어도 모자를 우리들의 자식들이 아니던가요.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아이들이 먼저 압니다.
그 때쯤이면 저희와 같은 사치를 부리러 그곳에 들르는 어른들 많으니까요.
쭈뼛쭈뼛 마무리를 못하고 있는 저희에게,멀퉁히 서 바라보기만 하는 저희에
게 다가와 있는 힘껏 매달리는 아이들..
떼어놓으려해도 모르는 척 딴청 부리며 달라붙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가슴 속
깊이 얼마나 통곡했던지요..
그렇게 애정이 고픈 아이들..보모의 호명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 떨어져
나가 무안한 듯 웃습니다..
은혜도 몸을 배배 꼬며 보일락말락하게 웃었는데..저는 더 보지 못하고 달려
나가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어색하게 서서 우릴 바라보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과 수줍은듯한 웃음속
에 비치는 간절함이..저희를 붙잡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외침이 견딜수가
없었기에..
그날 하루쯤이라도
그애들의 부려보지 못한 투정과 어리광을 받아줄 수 있었더라면..
정말 엄마되어 안아주고 쓸어주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껏 그 아이들과의 인연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더라면 까맣고 맑은 눈을 가진 우리 은혜와의 인연이 기억속에만 갇혀 있
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없어지데요..
그 아이들을 그 곳에 버려두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설 자신이 없어지데요..
그 일을 반복할 자신이..
한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내 자신 가증스럽게도 거짓말처럼 잊고 지냈는데...
.
.
성탄절이 다가온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왜이리 은혜 생각이 간절한지..
혹..좋은 부모라도 만났는지..
오늘도 눈치 굴리며 기계처럼 죽을 먹고 있는지..
나를 엄마라 불렀는데..
날 기억이나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