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지혜는
믿음과 사랑이 진정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연중제32주일2024.11,10강론)
1열왕17,10-16; 히브9,24-28; 마르12,38-44
오들 봉독된 성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미망인들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망인들이 성서에서 아주 좋은
평판을 받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미망인들은 오늘
우리가 들은 성서 말씀에서처럼
항상 매우 긍정적인 시각으로
나타나 보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 드리자면, 룻기에는
나오미가 등장하고 신약 성경에서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 뵌
예언자 안나가 있었습니다.
나인에서는 예수께서 죽은 외아들을
묻으려던 절망적인 미망인에게
연민을 느끼시고 그 아들을 살려내
주셨습니다.
오늘의 제1독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뛰어난 환대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 미망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희생적인 관대함의
정신을 지닌 미망인 한 사람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성경 말씀에 등장하는
미망인들은 왜 그렇게 긍정적인
시각으로 제시가 될까요?
그 이유는 단순히 미망인들이
처해진 그 입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의 미망인들은
보통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 우리 시대처럼
연금이나 사회 보장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의
미망인들은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편 없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도 없었습니다.
성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대면하게
되는 미망인들은 살면서 큰 손실을
입었지만 하느님께 대한 엄청난
신뢰와 믿음으로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미망인들은 끊임없이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미망인이 성전에서
헌금을 봉헌하는 데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자기네들이 쓸 만큼
다 쓰고도 남는 돈으로 큰 금액을
봉헌하는 사람들과 자신에게
남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관대한
헌금을 바치는 사람들 사이를
분명하게 선을 그어 구분 지어
주십니다.
그 날 많은 사람들이 성전
헌금함에 관대한 기부금을 넣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예수께서는
하느님깨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엄청나게 깊은 한 사람을
지적하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한 사람만 주목하셨고,
당연히 그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엄청나게 깊은 어느
한 사람을 주목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잠시 짬을 내어
이 관대한 미망인에 대한 생각을
좀 해 본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 미망인의 용기와 내면의 평온함,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미망인은 실제로 자기가 살아가야
할 생활비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 미망인의 결정에는 아무런
두려움이나 불안도 없었고, 오직
하느님의 십리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 미망인은 엄청난 손실에도 불구하고
– 즉 남편을 여의고, 재정적인 안정을
잃게 되었으며, 사회적인 지위 등 모든
것을 다 상실 당했지만, 마음까지
다 잃어버리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미망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온전히 하느님의 손길에 맡겨 드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자기네들의
행위를 통하여 자신감과 사랑을
표출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미망인들의 상실은 그 미망인들을
비통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미망인들은 더 깊은 현실에
자기네들을 개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초기 교회 당시에 미망인이 된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헌신하라는
하나의 초대로 인식되었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미망인은 아마도 그러한 관습의
기반이 된 사례의 한 종류가 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그 미망인이 분명히 지녔던
그 엄청난 용기와 믿음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 됩니다. - 그 미망인은
자기의 실질적인 생활비를 모두 다
포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미망인은
인간적인 이점(利點)으로는 상실을
많이 당하는 그 만큼 영신적인 풍요로움은
더 많이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들 스스로에게로
눈길을 돌려본다면, 우리는 성서상의
미망인들이 우리에게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입은
손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요?
우리가 입은 손실이 우리를
씁쓸하게만 만들어 주었나요, 아니면
우리 자신의 성장에 긍정적인 요소가
되어 주었습니까?
우리의 손실이 우리 자신의 더 깊은
부분과 접촉하는 데 도움이 되어
주었습니까? - 즉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하여 더 자비로운 태도인
정신의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었습니까?
배우자, 부모, 자녀, 가까운 친구 또는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종종 사람들을
삶의 닻을 내리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떠다니는 상태에 빠뜨려는 정도의 그런
어려운 경험이 되어서, 그러한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깊은 상처를 주는 경험이 됩니다.
그런 경험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분노, 우울, 두문불출, 알코올 중독
또는 심지어 자살과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성서상의 여인들이
그러한 반응을 하게 해 준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런 여인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그
런 여인들로 하여금 뒤로 물러 앉아
있게 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연민과 관대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다가가게 해
주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재정적 박탈과 지위 상실로
인해 엄청난 고통도 틀림없이 겪었을
것이지만, 고통에서 도망치거나
방종으로 빠져서 고통을 잃어버릴
수 있는 방도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여인들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거나
절망에 굴복하고 싶은 유혹에도 틀림없이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투쟁을 통해 그 여인들은 더 깊은 자기
지식, 하느님께 대한 더 깊은 신심,
그리고 삶이 가져다주는 현실에 대한
더 깊은 수용에 도달했습니다. 그
리하여 그 여인들은 새로운 힘을 찾았고,
그래서 더 강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만난 신앙이
강한 이 여인은 우리들 모두에게
하나의 도전을 던집니다. 거의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여전히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여인은 어떤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지닌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께서는 그 여인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었는지를
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신비로 남아 있을 수 있는데,
그러한 신비는 믿음과 사랑이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때 그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그런 하나의 신비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떤 포도주는 훌륭한
뒷맛을 남긴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예시하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은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의 인간 정신을 즐기려는
여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신부님♡
주일복음강론 말씀
감사드립니다.
묵상하면서 주일을
잘 준비하겠습니다.
평화로운 시간 되셔요~♡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아멘!
고맙고 감사합니다.♡
신부님!
매일 보내주신 예수님 말씀 감사합니다~
순천에서 수확한 단감 잘받으셨지요?
건강하시고 조만간 다시한번 뵙겠습니다 ~
아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찬미예수님!
아멘.🙏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11월9일]
📖말씀: 에제 47,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오늘의 묵상
기도의 힘을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우리는 20세기 말 세계의 모든 신자들이 공동의 기도 지향으로 러시아의 회개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항상 기도하시며 하느님의 뜻을 헤아렸습니다.
하느님은 세계의 모든 종교를 초월해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새로운 복음화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심 없이 기도드린다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귀기울여 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나의 기도
위로자이신 주여, 제게 사심없는 올바른 기도를, 그칠 줄 모르는 항구한 마음으로 당신께 드리게 하소서.
💒실천해보기
•기도 운동하기
♧복음화발전소 제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