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 / 신현식
으스름을 짊어지고 마을을 돌고 돌아 겨우 집을 찾았다.
아버지가 거처하시는 곳은 마을의 꽁지가 한강과 닿아 있는 시골집이었다. 사립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집 안은 적막했다. 여러 번 인기척을 내자 한참 만에 한 할머니가 부스스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버지를 찾자 장에 가셨다고 했다. 내가 아들이라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집 뒤의 강둑을 가리키며 아버지 혼자 저 큰 밭을 개간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둑으로 올라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들판은 선사 시대의 황량함 그대로였다. 어지럽게 파헤쳐진 무밭은 하늘로 흙 팔매질을 하고 있었고, 갈대밭 옆에 누워 있는 한강은 홑이불을 뒤집어쓴 듯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시위꾼 같은 갈대들을 갈아엎어 길고도 긴 무밭을 개간해 놓으셨다. 할머니의 말대로 볕을 벗 삼아 밭을 일구신 것이다.
아버지는 대구를 떠나 홀로 먼 이곳에 오셨다. 묵혀 둔 친척의 땅에 농사를 지어 큰돈을 벌어 오시겠다며 얼싸 좋다고 떠나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너무 고지식하여 타협이 잘되지 않는 분이셨다. 하시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하다, 결국 쉰의 나이에 모든 일을 접고 말았다. 천성도 차가우셨지만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지 아버지는 항상 짜증을 내셨다. 우리는 아버지의 먼발치에서 서성거려야만 했고 살림도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그렇게 삭막하기만 한 아버지의 취미는 희한하게도 꽃 가꾸기였다. 그렇게 꽃을 좋아하시더니 결국에 생각해 내신 게 농사였다.
봄꽃이 필 때 떠나가신 아버지는 국화꽃이 흐드러져도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 가더니, 얼마 전부터는 이버지께 제발 한번 다녀오라고 성화를 대셨다. 나는 갖은 핑계를 대었다. 왠지 가기가 싫었다. 아버지와 별난 정이 없어서일까. 하여튼 내키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겨울옷과 이불을 내놓으시며 “너희 아버지 얼어 죽겠다!” 하시며 눈을 곧추세우셨다. 나는 할 수 없이 기차와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이 먼 곳까지 왔다.
두어 시간 기다렸을까. 주인집 아저씨가 소달구지와 함께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버지는 소달구지 위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술에 취해 계셨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어디든 숨고 싶었다. 그런 나보다 아버지를 모스고 온 주인집 부부가 오히려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무 값이 폭락하여 홧술을 드셨다며 자기 일인 양 변명하기에 바빴다. 나는 ‘왜 하필이면 이런 날 올라왔을까’, ‘아버지는 왜 오늘 이토록 취하셨을까’,‘하필’과 ‘왜’라는 단어만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주위를 어지럽게 맴돌았다.
축 늘어진 아버지를 방으로 모셨다. 방은 아버지만으로도 가득했다. 남자 혼자 사는 방답게 냄새도 살림살이도 멋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나도 넋이 나가 있엇다.
젊어서 만주 봉천 거리를 망토 자락 휘날리시던 아버지가 여기 이렇게 넋을 잃고 계시다니 온갖 상념이 교차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밥상을 차려 왔다. 국이라도 드시도록 해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나도 목이 메어 한 술도 넘어가지 않았다.
불을 끄고 아버지 옆에 나란히 누웠다. 아버지는 연방 무 값이 폭락한 것에 대해 어디엔가 항변을 하고 계셨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캄캄한 천장만 바라보다 날이 붐해져 오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뒤척이시더니 언제부터인가 벽 쪽으로 돌아 누워 계셨다. 잠이 깨셨지만 일어니지 않으셨다. 밥과 국을 데워 드려도 쓰린 배를 끌어안고 필요 없다고만 하셨다. 먼 길을 찾아 왔건만 빨리 가라고만 하셨다. 당신의 작아진 모습을 내게 보이기 싫어 그러는 것이리라.
나는 집을 나섰다. 내가 나서면 뜨뜻한 국이라도 드실 게 분명했다.
동트기 시작하는 밖은 으스스 추웠다. 버스가 다니는 길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속에서도 하얗게 입김이 새어 나왔다. 논과 밭에는 눈이 온 듯 무서리가 내려 있었다. 새벽의 하얀 서릿발들이 오그린 내 몸을 마구 찔러 댔다.
무를 다 팔아도 농자금을 건지지 못했다는 아저씨 아주머니의 말도 귀를 찔렀다.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며, 호기롭게 떠나셨는데 쓰린 배를 끌어안고도 돌아눕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속을 더욱 아리게 했다.
빈속의 새벽길은 너무 추웠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이렇게 새벽길을 나서시곤 하셨다. 가장 노릇 때문에 이곳까지 오셔서 새벽길을 나드셨는데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한 가장의 참담함을 헤아렸을 때, 새벽의 찬 서리는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서릿발을 녹여 가며 먼 새벽길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