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 신현식
올 여름은 가뭄이 극심했다. 예년에 비해 강수량이 엄청나게 적었던 탓이다. 논이 쩍쩍 갈라지고 벼는 말라 비틀어 졌다. 식수도 고갈되어 빨래는 고사하고 밥도 짓지 못하는 곳이 있었다.
올해처럼 가뭄이 심했던 때가 있었다. 소방차가 물을 퍼다 날랐고, 물 한 방울이라도 모으려고 굴삭기들이 하천 바닥을 긁어댔다. 농민들은 양수기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바로 그해에 양수기 만드는 공장을 했었다. 농기구 부품 제조를 하다가 욕심을 내어본 것이 양수기였다. 양수기는 가뭄을 만나면 요즘 말로 대박을 터트리는 품목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한다.
가뭄도 주기가 있다. 양수기 업자는 그것을 계산하고 뛰어들지만 예상이 빗나가면 엄청난 뒷감당을 해야 한다. 어렵사리 그리니치 천문대의 통계 자료까지 얻었다. 내년에 심한 가뭄이 예상된다는 확실한 정보를 손에 쥔 셈이다.
양수기 제조에 뛰어들었다. 우선 시판되고 있는 양수기 중에 가장 좋은 것을 구했다. 분석을 하여 보완을 했다. 금형(틀)을 만들어, 주물공장에 시제품 생산 의뢰를 했다. 각 부품들이 생산되어 조립을 했고, 작동을 시켰더니 성공이었다. 시제품이 나왔으니 이제 대량으로 찍어만 내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졌다. 제품이 두꺼워 무게가 많이 나갔다. 소비자는 튼튼하여 좋겠지만 원가가 높아진다. 무게를 줄이면 이익도 늘어나고 경쟁력도 높아진다. 무조건 얇게 만들어야 했다.
그때는 동업(同業)을 했었다. 나는 판매를 맡고, 그 방면의 기술을 가진 동업자는 생산을 책임졌다.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양수기 몸체의 두께라 해봐야 3mm 미만이다. 그는 2mm로 줄여 보자는 심산이었다. 두께를 줄이자면 금형(틀)을 수정해야 한다. 금형은 외형과 내형이 있는데 양수기의 내부는 압력에 영향을 줌으로 손을 댈 수 없다. 그러므로 외형을 깎아야만 했다.
몇날며칠에 걸쳐 외형을 깎아내었다. 그 작업은 손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1미리 미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 만약 너무 깎았다 싶으면 파라핀을 입혀 복원하고 두껍다고 생각되면 다시 긁어내며 두께를 조절해야 하니 정확할 리도 없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얼추 수정을 하여 물건을 만드니 불량품이 많이 나왔다. 외형을 줄였으니 내형과의 틈이 좁아진 것이다. 그러니 쇳물의 흐름이 더뎌져 온전한 양수기 형체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생산량의 절반이 불량이었다.
다시 파라핀을 입혀 두께를 조절해 보았다. 그래도 불량이 줄어들지 않았다. 틈틈이 금형을 수정했다. 눈대중으로 하는 것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안 되겠다싶어 두껍게라도 생산하자 해도 동업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가운데 모내기철이 되었고, 양수기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어찌 알았던지 우리 공장에도 문의가 쇄도 했다. 그러나 생산량은 얼마 되지 않아 한 점포에 공급하기도 바빴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통계자료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주문이 쇄도하여 출근을 주물공장으로 하여야 했다. 주물을 빨리 부어 달라고 애걸복걸 했다. 내가 관리자로 근무 했던 공장이라 얼추 말이 잘 먹혔다. 두 명의 작업자는 아예 양수기만 찍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나오는 생산량은 역시 반타작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불량이 많이 나오니 주물공장의 직원들도 슬슬 상사의 눈치를 보는 형편이었다. 종일토록 그 공장에 진을 쳤지만 건지는 물건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금형을 만들자니 시간이 촉박했다. 동업자에게 원가를 따질 게제가 아니라고 설득해도 조금 더 고쳐 보자고만 했다. 내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동업자는 매사에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에나 실수가 없어서 믿을 만 했다. 그러나 남의 실수도 용납 하지 않았다. 공구가 제 자리에 놓여 있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바닥에 볼트 하나 떨어진 것에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토록 빈틈없는 성격이어서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온갖 곳에서 양수기를 달라고 난리가 났다. 늘 물건을 가져가는 판매점에서는 직원 한 사람이 아예 파견을 나와서는 페인트가 마르지 않은 제품을 싣고 가는 판국이었다. 얼마지 않아서는 페인트칠은 고사하고 조립하자말자 서로 싣고 가겠다고 주먹다짐까지 일어났다.
동업자를 설득해봐야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내 임의로 파라핀을 듬뿍 입혀 두께를 늘렸다. 그러나 버스 떠나자 손 흔드는 격이었다. 양수기의 그림자만 비춰도 혹하던 그해에 우리는 1mm의 틈을 줄여보겠다고 그토록 안간힘을 썼으니……. 바보짓도 그런 바보짓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