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평원에 자리잡고 있던 키예프 공국은 13세기 중반까지 우랄산맥 서쪽에 위치한 유럽의 변방 국가였다. 키예프 공국은 대략 1240년부터 1480년까지 몽골 제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그 바람에 르네쌍스와 종교개혁을 통해 성장하던 유럽과 문화적, 종교적으로 단절되고 산업적인 격차도 벌어졌다. 키예프 공국의 분파이자 러시아의 원조인 모스크바 공국은 자신의 땅에서 몽골 제국을 몰아낸 후 동로마 제국의 후예임을 자처했지만, 종교개혁을 겪으며 발전하고 있던 서유럽으로부터는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관심을 동쪽으로 돌려야 했다.
우랄산맥을 넘어선 러시아의 동진(東進)정책은 처음에는 몽골의 잔존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한 안보정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모피 획득과 같은 경제적 이득에다 러시아 민족주의,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한 열망 등이 겹치면서 대규모 영토 팽창으로 이어졌다. 지속적인 동진 정책의 결과 러시아는 네르친스크 조약(1689년)을 통해 만주 북쪽의 아무르강을 경계로 청과 마주하게 되었고, 아편전쟁 이후에는 북경조약(1860년)을 맺고 연해주를 차지함으로써 조선과 국경을 마주하는 초강대국이 되었다. 러시아는 한때 알래스카도 차지했다.
러시아의 동북아 진출은 미국, 중국(청), 일본 등 세계 초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지정학적 단층 지역에 또 하나의 강대국이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구한말 조선의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강대국의 등장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아관파천(1896년)은 동북 변방의 약소국인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 강대국을 활용하려던 몸부림이었다.
청일전쟁(1894~1895년)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은 수백 년간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유지해 오면서 청나라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조선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런데 청일전쟁 직후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일본에 압력을 가해 청으로부터 뺏은 요동 반도를 도로 반환하도록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삼국간섭(1895년)이라 한다. 삼국간섭을 통해 러시아의 힘을 목격한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는 소위 인아거일(引俄拒日)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조선 정국의 주도권을 뺏긴 일본은 흥선대원군과 민비 사이의 갈등을 이용해 민비를 시해하고 오리발을 내미는 소위 을미사변(1895년)을 일으킨다. 이 사건 후 목숨이 두려워진 고종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러시아 공사관(俄館)으로 피신하였다. 이 사건을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고종은 아관파천 직후인 1897년에 자신을 황제로 하는 대한제국을 수립하고 중국의 종주권 체제에서 벗어났음을 선포했다. 자주적인 개혁도 추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개혁은 실패했고,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조약을 거쳐 1910년의 경술국치로 소멸했다. 대한제국이 망한 것은 1902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관파천 직후 조선은 잠시 정권의 수명을 연장했지만, 그 대가로 러시아에 각종 독점적 이권을 제공해야 했다. 힘없는 나라의 세력 균형 정책은 결코 주도권 행사로 이어질 수 없으며, 단지 외세 종속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아관파천과 그 이후의 사건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관파천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될 무렵부터 한국은 국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를 재구축한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아관파천 2.0이라면,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은 각각 새로운 개념의 아관파천 3.0, 4.0이라 볼 수 있다. 구한말 당시의 러시아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제국주의 세력의 일원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종의 황제 등극을 지원하고 대한제국의 탄생에 기여한 세력 균형자였다. 동시에 각종 서양 근대 문물의 핵심 전파자이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략자로서 제국주의적인 속성을 버릴 수 없는 나라이기는 하지만―순전히 러시아 입장에서만 보자면, 러시아는 모스크바에 5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핵무기가 우크라이나에 설치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용인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동시에 한국과 가까워지기 위해 (기술 전수 없이 무기를 팔기만 하는 미국과 달리) 각종 무기와 첨단 우주기술을 기꺼이 전파해 준 나라이기도 하다. 곡물과 에너지 강국이기도 하고, 상업화되지 못한 다양한 원천 기술을 가졌으며, 한국 경제가 중국경제에 종속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대안 시장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강력한 우방국이다. 하지만 한국이 그들의 우방국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국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국익은 가변적이다. 병자호란, 그리고 구한말 당시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이념을 고집하는 바람에 비참하게 멸망했던 조선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외교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무작정 미국과 일본을 믿고 의지할 것이 아니라 국제 정세의 변화와 흐름을 잘 예측하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중국,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끝난 이후 대규모 건설시장이 열릴 수 있는 나라다. 비극으로 끝난 19세기 말의 아관파천을 교훈 삼아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21세기형 북방정책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첫댓글 우리나라가 공산화 된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러지 말고 미국에 53번째 주로 트럼프에게 요청하면 좋겠다 하였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