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난로 앞에서 / 신현식
벽난로 앞에 산타가 서 있는 크리스마스카드를 한 장 샀다. 생뚱맞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부치치도 못할 카드였지만 그래도 집어 들었다. 나는 이런 그림을 볼 때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왔던 ‘작은 아씨들’이라는 영화 속의 벽난로가 떠오른다. 그것은 벽난로 앞에서 정을 나누던 자매들이 기억되기 때문이다.
애들이 대여섯 살 때였다. 벽난로가 있는 레스토랑이 아파트 앞에 있었다. 우리 가족은 가끔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맛있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벽난로 속의 불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었다. ‘탁탁’하고 나무가 타는 소리도 좋았고 코끝에 다가오눈 향기도 좋았다. 벽난로의 너울거리는 불길과 따스한 온기가 우리 가족을 아늑한 낙원으로 인도해 주는 것만 같았다. 때로는 또래의 아이들이 서로 장작을 넣겠다고 다투었지만 이내 사이가 좋아졌다. 불의 온기 때문에 마음도 따사로워지는 것이리라.
오래전에 농장을 하나 장만했었다. 나지막한 동산에 사슴 우리가 있었고, 돌로 지은 별장 같은 집이었다. 커다란 거실 한쪽 벽면에 쇠로 된 벽난로가 있어서 나와 아내는 그것에 반하여 농장을 계약했다. 남의 나라 일인 듯하던 벽난로의 꿈이 이루어지려나 했다. 그런데 이사하는 날 주인이 벽난로를 떼어내는 것이었다. 내가 계약 위반이라며 항의했더니 주인이 애원했다.
젊은 주인은 결혼하기 위해 예쁜 집을 짓고 벽난로를 놓고, 장미와 꽃사슴을 키워 결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벽난로는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 제발 양보하라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의 사연이 애틋하여 우리는 그만 양보하였다.
그 벽난로가 짠해서 나는 여러 곳을 기웃거렸지만 그런 벽난로는 구할 수 없었고,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사정이 나빠져 그 농장을 처분하고 말았다. 이제 그런 벽난로를 구하더라도 들여놓을 곳조차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꿈을 꾼다. 언젠가 대구 근교에 빨간 지붕에 창이 커다란 집을 지어 벽난로가 있는 거실을 갖고 싶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벽난로 앞에 트리를 세우고, 흔들의자에 앉아 손자 손녀에게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그때,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흐를 것이고 벽난로 속에는 감자가 ‘피이 피이’ 소리 내며 익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