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존심이 센 사람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지위와 입장을 항상 생각하고, 그 입장에 해가 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일을 벌인 대상이 상대방이든 나이든 구분 짓지 않고 반발적인 감정을 일으켜 이에 올라탑니다.
나는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머리로 알고 이를 앎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드높이고, 이에 대한 신봉을 통해 스스로의 욕망이 발현하는 것을 묵인합니다.
나는 죄책감과 자괴감, 회의감 등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이를 기꺼이 실천하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비루한 허영심이 세우고, 이를 조잡한 자존심으로 지켜 온 나의 불완전한 세계를 무너트리지 않고자 합니다. 말로는 배움을 따르고자 한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에 스스로의 멸망이 포함될 경우에는 주저합니다.
나는 어떻게든 나인 채로 살고자 합니다. 내가 상정한 나. 나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는 이와 상반되는 온갖 욕망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이보다 가까운 곳에 거짓된 허상을 만들어 꿈에서 일어나지 않고자 합니다. 사실은,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사실들과 별개로, 내가 일어나는 욕망에 못 이겨, 이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욕망을 입은 모습으로 숨어 사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남들의 눈에 닿지 않은 자리에 있는 나의 모습을 압니다. 그게 어떤 모습인지, 나의 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 무언가를 알고 모른다는 건, 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란 말입니까. 나의 사실과 진실, 거짓에 관한 가치관은 모두 이러한 것들을 은폐하기 위해 구축된 걸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진실이라는 건, 사실 너무나 단순한 구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내가 아는지, 내가 모르는지. 내가 인식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이를 누가 아는지, 누가 모르는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그저 사실인지, 이러한 분별이 그리 의미 있으리라 생각되어 지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러한 분별의 개념이 나에게 있을 경우, 내 스스로가 거짓말쟁이라는 입장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차이만이 있으리라 압니다.
나는 거짓말쟁이일까요. 이보다 나를 더 잘 표현하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인위적이지요. 지난 날,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 일컬으며 자기객관화 되었다고 생각한 제 자신을 만나 봅니다.
나의 기질을 정확하게 꿰뚫고서는 자경문을 쓰리라는 게 쉽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마주보기 보단 나를 숨기고자 했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요.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들의 말씀이나, 유교, 불교의 가르침이라 들은 것들, 삼무곡에서 배운 것들, 머나먼 곳에서부터 내게로 오는 이야기들. 나는 어떤 언어로 무엇을 표현하는 게 좋을까요. 나는 누구에게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이 글은 과연 누구에게로 닿을까요. 닿는다면 어떤 형상으로, 어떤 매체로, 어떤 느낌으로 닿게 되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는 너무나 무능합니다. 당체 자판을 잡고있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는 자각도, 안다는 자각도, 명확하게 오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질문에 담긴 의지가 강하지많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능한 한 명의 작가로서. 잠시간 이야기를 대하는 마음으로,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것일 겁니다. 그럴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명확한 건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딱히 아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어쩌다 보니, 저는 지금 자판을 잡게 되었고, 저는 제 이야기를 읽을 독자를 떠올립니다. 그 독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앎을 놓지 못하고, 사특한 것에 휘둘리는 걸 싫어한다면서 자꾸만 욕망에게 밥을 주고, 꿈꾸는 사람이라지만 꿈이 뭔지 모르는, 아마도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에게로 전하는 말을 남기고자 합니다. 저에게 어떠한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서 그가 꼭 들으리란 법도, 변하리란 법도 없습니다. 이 글이 의미 없이 이곳에 잠들어버릴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말을 남긴다는 게 참 쉽지 않군요. 이런 걸 간덩이 부은 듯 써내려 가던, 혹은 그러지 못했으나 그러려고 했던 나날도 스칩니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나는 내가 마주한 나에게 글을 남기겠습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았던 자리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더군요.
아픔을 명분 삼지 마라. 그 왜 무엇도 너의 선택에 대한 명분 삼지 마라. 너의 선택에 그 어떤 명분도, 의미도, 구실도 달지 말아라. 그것들은 언뜻 널 가벼이 해주나, 그것들은 널 위한 게 아니다.
자경문
감정이 네게 인사를 건네면, 마주 인사하기 전에 네가 인사하는 걸 알아라. 그걸 알면 넌 너로서 어리석어질 수도, 혹은 웃으며 인사할 수도 있다.
움켜쥐고 싶은 게 있으면 내려놓아라. 그럼 자유로워진다.
망상을 홀가분히 걷어내어라. 무언가 찾고 싶은 게 있다면 여기서 찾아라.
너는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다. 그러니 항상 무엇이 사랑인지 묻고,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실천하고자 해라. 이는 곧 왜 사랑하는지, 사랑해야 하는지, 사랑이 무엇인지,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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