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만들기 / 신현식
첫 수필집을 만들었다. 문문(文門)에 발을 들여놓은 지 여러 해 만이었다. 한 편 한 편 써놓은 글들을 쟁여두었더니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오래도록 공을 들인 결과물이어서 뿌듯했지만 좀 모자라는 글이라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쩌랴.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문향(文香)이 약하면 어떤가. 사색이 얕으면 어떤가. 내 삶의 흔적이라 여기며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책을 만들면서 만들기와 인연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니 손재주가 많은가 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겨우 전구나 갈아 끼우고 풀어진 나사나 조이는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러 것들을 만들었다.
내가 처음 만든 것은 어머니로부터 배운 종이비행기였다. 조금 더 자라서는 탱크도 만들었다. 동그란 실꾸리와 양초를 고무줄에 꿴 탱크였다. 차츰 솜씨가 늘어 팽이와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연과 종이 글라이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솜씨는 변변치 못해 남의 눈길 받을만한 것은 하나 없었다.
내가 처음 물건다운 물건을 만든 것은 농기구 부품이었다. 자동탈곡기나 콤바인에 장착되는 볏짚 절단용 칼이었다. 그것은 재료에서부터 가공까지 그 당시로서는 기술적 문제가 많았다.
이리저리 자문을 구하여 어렵사리 시제품을 만들었다. 개발품의 성능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의뢰를 한 업체로부터 집 한 채 값의 선수금을 받아가며 납품하게 되었다. 노다지가 따로 없었다. 그것이 곤궁한 삶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이 되었고, 아내와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모은 재산은 한꺼번에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만들기가 아닌 다른 업으로 바꾼 것이 원인이었다. 역시 나는 만들기를 그만 둘 수 없는 팔자인가 보다.
다음에 만든 것이 가구였다. 빈털터리로 있는 내게 처남이 가구 공장을 권했다. 가구 공장을 했던 처남은 사업 확장하며 지금껏 생산하던 TV받침대를 포기하고 다른 품목으로 바꾸었다. 단종(斷種 )되는 처남의 그 모델을 받아 자그마한 가구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그 TV받침대는 수명이 다한 모델이었다. 처음 만든 제품을 들고 나가자 판매상들은 눈을 돌렸다. 그러나 시작하지 말자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모델은 하단에 수납용 문이 있고 그 위에 TV를 얹도록 되어 있었는데 비껴 세운 곳에 전화기까지 올릴 수 있도록 디자인을 바꾸어 보았다.
호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사업은 확장을 거듭했다. 내 디자인 모방한 유사품들이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그래도 사업은 바람에 돛단 듯 했다. 그 TV받침대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전환점이 되었고 중년의 발판이 되었다.
인간의 삶은 만들기의 삶이라 생각한다. 먹을 곡식을 만들고 입을 옷을 만들고, 편리한 도구를 만들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무기를 만들고, 그것들을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 만들기는 그것만이 아니다. 영혼을 위한 만들기도 있다. 문학이 있고, 그림이 있고,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연극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렇게 만드는 것에 몰두한다. 부강한 나라는 모두 이 만들기를 많이 한 나라들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많이 만드는 사람이 부자가 되고 강한 사람이 된다. 또 많이 만드는 삶이 의미 있고, 보람되고, 잘 살다가는 삶일 것이다.
나의 만들기는 많지도 변변치 못하다. 내 생에 세 번째 만든 것이 「오렌지색 등불」이다. 이 책이 나 아닌 다른 한 영혼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이 모자라 그렇게 되지 않는다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는 않는다. 그 책은 내가 세상을 다할 때까지 나를 위무해 줄 것이고, 노년의 정신적 발판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결국 손재주가 신션생님을 잘살게 맏들었군요. 안정된 사림 위에 문필가로도 서게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