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5
-―호텔, 그린그래스
유하
산다는 일이 뭐 뾰족한 일이 있으랴 넥타이 매고
소주잔 돌리며 지글지글 삼겹살이나 뒤집는 일 외에
뾰족한 일 찾으려다, 노충량이는 뽕 먹다 빵에 갔고 기어이
난 누에 같은 시인이 되었다 참 누에는 뽕 먹고 살지
언어의 뽕잎 갉아먹으며 내가 황홀해지는 시 한편 쓰고 싶었다
악마에게 몸을 팔아서라도 정말 내가 뿅 가는 시 한편 쓰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노충량과 내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
말로가 다를 뿐? 그럴까? 카메라의 뽕을 먹고 사는 배우들
화려한 옷의 뽕을 먹고 사는 모델들 예술이냐 외설이냐?
히로뽕 같은 극단의 삶을 사는 히로인들 아으 언제나 극단은 위험하다
극단적인 것치고 퇴폐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이곳은 극단주의자들의 거리다
삶 속에서 뭔가 뾰족한 것을 갈구하는 자들의 거리다
뾰족한 건 파괴적이다 칼을 보면 찌르거나 찔리고 싶다는 한 생각,
하여 그들은 뽕 같은 은유나 상징을 사랑한다 신문 사회면과
문화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나도 언어의 뽕이 없었더라면
깡패가 됐으리라, 뽕의 은유로 빵빵한 길이여 이곳을, 지나는
그 누가 사계절 뾰족하게 좆만 꼴리는 거리라 노래하겠는가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봄봄
웃음꽃이 피니까 ―카수 문희옥이 은유의 새처럼 지저귄다
외롭거나 쓸쓸한 사람은 누구라도 한번쯤은 찾아드는, 저곳을
그 누가 낮씹하는 곳이라 부르겠는가 오예스 오예스 호텔 그린그래스
골프장의 잔디 위에서 단련된 허리, 푸른 잔디처럼 출렁이는 물침대
완곡하여라 호텔 그린그래스 어느새 저 불야성이
누에 같은 나마저 유혹한다 강력한 언어의 뽕을 먹인다
고향의 푸른 잔디와 체리빛 입술의 메리가 여기 준비돼 있어요*
뾰족하여라 호텔 그린그래스
*탐 존스의 Green Green Grass of Home.
(최근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1990년대 노래가 조명받고 있다. 10대와 20대를 살아온 90년대는 대중문화의 르네상스 시기였다. 또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혼란스런 시기였다. 강북에서 터를 잡고 살던 나에게 강남의 중심지 압구정동은 쉽게 가기 힘든 곳이기도 했다. 같은 서울인데도 부의 상징은 압구정동에 다 모인 듯 사람들의 옷차림은 화려했고 고급 상점들이 즐비했다. 서민의 음식인 라면 한 그릇도 만 원이 넘는 가게가 생길 정도로 돈이 있어야 라면도 사먹는 이상한 곳이기도 했다.
유하 시인은 요즘 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결혼은 미친 짓이다> <쌍화점>을 연출하였다. 시 제목을 그대로 영화로 옮긴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도 그 당시 굉장한 이슈를 몰고 다녔다. 화려한 유혹의 문명 속에 푸른 잔디와 메리를 잃어가던 90년대, 2015년 현재의 자본주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극대화 시겼다.)
첫댓글 많은 시인의 시를 읽어 가다 보면 사계절을 느끼게 되는데 이 시는 오늘 날씨처럼 찬바람이 쌩생 부네요^^
그렇죠. 자본주의 사회에는 부와 빈이 공존하는데 그 차이를 줄여야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죠. 만만치 않은 시를 만나니 사회가 들여가 보이네요.
문희옥의 노래를 들으면 남서울 영동을 꼭 가봐야 할 것 같은데...무슨 뽕을 넣어야만 하는 세상. 오랜만에 통화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포장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뽕을 넣는 세상 . 나는 무슨 뽕을 넣고 있고 넣으려 하는가! 아니면 그런 뽕 따위 시원하게 걷어차며 살고 있는가!
남과의 비교와 과시욕 등 이기적 욕심으로 인간성이 매몰되어 가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우리에게 푸른 잔디와 메리는 무엇일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