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7)
루카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교 시작(14-15절 참조)과 함께 나자렛 회당에서의 희년 선포 내용(16-21절 참조)이 소개됩니다.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좋게 얘기하기도 하고 그분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카 4,22) 하고 비꼬듯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장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 곧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을 아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4,24)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들이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는 예언자들이 전하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 그분의 말씀을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 전하게 될 때, 반드시 그들이 좋아하는 말만 전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 다시 돌아오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그들의 입을 통해서 나왔을 것입니다. 이것을 곱게 들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고향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듣기 힘들어했을 것이고 그것을 말하는 예언자를 배척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같은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당신께 믿음이 없던 그들에게 딱히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기적을 행하시진 않으셨습니다. 대신, 구약에서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예로 드시면서 그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그 메시지의 의미는 결코 특권 의식을 가진 유다인들만이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는 것과 구원은 유다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서 주님까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구원을 받기란 더더욱 어려운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내가 이만큼 주님을 위해 봉사했는데, 내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는데……. 등연히!’ 하면서 마치 거래하듯 구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 예수님을 얼마나 나의 주님으로, 나를 구원할 분으로 여기고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혹시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타성에 젖어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주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굳은 믿음이 우리 안에 살아 숨쉬길 원하십니다.
“살아계신 주님, 형식적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제가 바라는 것만 청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제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뜨거운 주님의 마음을 모시려 합니다. 저의 열정을 다시금 불태워 주시고 저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모시고 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