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0월 가을 여행은 4박 5일간 낭만 여행이라는 주제로 시작하였다. 여러 장소들을 방문하는 여행이었는데, 난 여행을 하며 낭만이라는 키워드를 마음에 품고서 여행하면 무언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과제가 너무 많아졌다. 첫 번째로 현곡께서 화두를 주셨는데, 화두가 ‘제자들을 때리기로 유명한 스승이 어느 날, 제자들을 마당 한가운데로 불러 놓고, 가운데 원을 그렸다. 그러고선 “너흰 원 안에 있어도 몽둥이로 처맞을 것이고, 원 밖에 있어도 이 몽둥이로 처맞을 것이다. 어찌하겠느냐?!”라고 말했다.’ 현곡께선 이 화두를 주시곤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할 때 이 화두를 풀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되니, 이번 여행 주제인 낭만을 빼먹고, 현곡이 주신 화두를 붙잡고 여행을 했다. 그러다가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바로 여러 답사지를 돌아다니며, 그 각각에 장소에서 느낀 것을 575시를 쓰는 것이었는데, 3행시로 시를 적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만휴정에 대한 시를 쓰려면 만휴정을 3행시로 해서 지어야 했다. 현곡께서 이번 여행은 시를 엄청 많이 쓰게 될 것이라고 하셔서 나는 여행 전부터 각각의 여행 장소에 대한 시를 매일 카페에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답사지에 가보니 정작 배움이라 할 것은 없고, 내 마음을 울리는 큰 감동도 없어서 시를 쓰기 곤란해졌다. 그런데 현곡께서 이런 시 과제를 3행시로, 게다가 5개의 시를 써야 한다는 과제를 내려 주시게 되었다. 이 과제가 나에겐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너무 정신이 없었고, 또 4~5일 차 땐 여행 주제가 다시 생각나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많은 과제를 잘 풀 수 있게 머리를 쓰는 것도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현곡께서 이번 여행이 아주 낭만적이었다고 말씀하실 때 옆에서 같은 말을 할 수 없고, 이번 기행문에 여행하며 정리한 낭만을 적으라고 하셨지만, 그러지 못했다. 여행은 끝났지만, 나의 여행 과제는 끝나지 않았다. 이 남은 과제를 줏대 없이 우왕좌왕하다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를 벌하며 끝까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