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대책 / 신현식
친구들 모임에서 신문기사 이야기가 나왔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사람들의 은퇴 후 생활을 추적한 기사였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대상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한 그룹은 은행 출신들이었고, 다른 그룹은 건설회사 출신들이었다. 두 그룹 다 내로라하는 엘리트 출신들이었다. 조사 내용은 두 그룹 중 어느 그룹이 풍족하게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은행 출신들의 은퇴 후 생활이 풍족할 것 같았다. 아무렴, 그들이 재테크에 능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의외로 건설회사 출신들이 은행 출신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건설회사 출신들은 대부분이 자문역으로 회사에 출근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조그마한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역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은행 출신들은 대부분이 창업을 하여 자영업을 했다. 그들의 사업은 하나같이 프랜차이즈 사업이었다. 말하자면 햄버거, 피자, 치킨, 김밥 같은 패스트푸드점 들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퇴직금을 다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있었다. 의외의 결과였다. 그들은 왜 그런 사업을 했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들도 퇴직 후 얼마간은 편안하게 쉬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 눌러 살다보니 많은 생활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비싼 물가에 아파트 관리비며 생활비가 얼마나 많이 들어갔겠는가. 통장에서 돈이 차츰 빠져나가자 ‘이거 큰일 났구나!’하고 사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잘 알기에 경험 없이도 가능한 프랜차이즈 사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이 어디 그리 쉬운 것인가. 사업이란 피가 튀기는 경쟁의 장이 아니던가. 이러저러다 퇴직금을 그만 다 날리고만 것이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지금보다 나을것을……. 이 결과는 서울 생활을 영위하는 데엔 엄청난 돈이 든다는 것을 입증해준 셈이다.
그런데 두 그룹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이 잇었다. 그는 건설회사 출신이었는데 퇴직금이 거의 줄지 않았다. 그는 서울에 살지 않고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의 월 생활비는 5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식비는 거의 들지 않았고, 생활비의 절반이 경조사비라고 햇다. 그렇게밖에 쓰지 않았으니 퇴직금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퇴직금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그 사람은 독서가 취미라 읍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다고 했다. 자그마한 텃밭도 가꾸고 산책도 하고 뒷산도 오르고 때로는 이웃의 농삿일도 거든다고 했다. 한가한 때를 택해 일 년에 두 번씩 해외여행도 간다고 되어 있었다. 정말 멋진 노후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친구들은 전원생활에 관심을 보였다. 모두가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그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아무나 전원생활을 할 수는 없다. 적성에 맞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전원생활이다. 신문의 그 사람은 독서가 취미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시골에서 지낼 수 있다. 그런 정적인 취미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전원생활을 견딜 수 없다. 하루 이틀은 몰라도 며칠 지내기도 어렵다.
아무튼 사람은 나이에 따라서 옷도 음식도, 사는 곳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이가 들면 수입이 없으니 그에 맞는 곳에 가서 살아야 하는가 보다. 친구들과 전원생활을 토론하며 나는 웃었다. 나처럼 수필 쓰는 사람이 전원생활에는 안성맞춤인 듯해서이다.
늘 글 쓸 시간이 부족하지 않던가. 햇살 가득한 방에서 온 종일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허리가 아프면 들길을 한 바퀴 돌아오면 되고, 그도 지루하면 뒷산에 올라가 저녁 식탁에 올릴 산나물이나 한 움큼 뜯어 오면 될 것이다. 간혹 강에 낚싯대도 드리우고, 신문의 그분처럼 읍내에 가서 비디오나 책을 빌려와 보면 될 것이다. 가끔 문우들을 불러 따뜻한 온돌방에서 엉덩이 지지며 청담을 나누리라.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전원생활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돈도 되지 않는 글이나 긁적이는 사람이라 구박받지만 이렇게 노후 대책에는 엄청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니 흐뭇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