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김치 / 신현식
나는 양배추김치를 좋아한다. 특히 여름철에 양배추김치를 즐겨 먹는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양배추 김치를 자주 담았다. 장마가 오기 전에 꼭 양배추김치를 담그셨는데 양배추는 그때 가장 값이 헐하고 그에 반해 배추 값은 천정부지로 뛰기 때문이라 하셨다.
하지만 결혼한 후로 양배추김치 구경을 통 하지 못했다. 내가 그 맛을 잊지 못해 자꾸만 노래를 하자 아내가 몇 년 전부터 양배추 김치를 담기 시작했다.
양배추의 잎은 조선배추보다 잎이 단단하고 도톰하다. 그래서 김치가 되겠는가 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잎이 두꺼워 맛이 드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맛이 들면 마찬가지다. 오히려 조선배추보다 더 아삭아삭하고 고소한 맛까지 난다.
양배추김치를 담는 방법은 일반 배추김치와 같다. 단지 포기채 담을 수 없기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담는 것만 다를 뿐이다. 기호에 따라 깻잎이나 부추나 실파를 적당히 버무려 담아야 하는데 부추와 같이 담는 것을 나는 가장 좋아 한다.
양배추김치가 늘 먹는 배추김치와 다른 점은 잎이 두껍기 때문에 맛이 쉬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혹 양배추김치의 맛이 별로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성질이 급해 다 익기도 전에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배추는 먼 바다를 건너 왔지만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다. 제 고향에서는 고작 스프와 샐러드가 되던 양배추가 이곳에 와서는 그런 용도는 물론이요 각종 요리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심지어 날 것으로 술안주가 되기도 하고, 쪄서 먹는 쌈이 되더니 이제 김치가 되기에 이르렀다.
무더위에 지쳐 터널터널 집으로 들어온 저녁, 큰 대접에다 밥을 퍼 양배추 김치와 된장찌개를 듬뿍 넣고 쓱쓱 비벼 보라. 천하일미가 따로 없다.
이렇게 시큼한 양배추김치를 먹을 때엔 “한 뚝배기 하실래예!” 하는 외국인이 자꾸 떠오른다. 양배추가 시큼한 맛을 내는 것과 파란 눈의 서양인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 닮아서일까. 그의 구수한 사투리는 오히려 더 경상도 냄새가 난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요즘 참 많다. 그들은 한국의 강과 산이 좋아, 사람들이 좋아, 음식이 좋아 이 땅에 눌러 살겠다고 한다. 낯설고 물 선 곳에서 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새 동네에 이사 갔을 때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서먹서먹하던가. 갓 시집온 새색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입생, 신입사원, 신병 시절의 서먹함은 어떻던가.그런데 그들이 마치 이 땅에서 태어난 듯 어우러져 잘 살고 있다. 된장 고추장을 우리보다 더 좋아 하고, 장아찌, 젓갈 같은 토속 음식을 우리보다 더 잘 먹는다. 어떤 이는 우리가 불편하여 멀리하는 한옥까지 좋다고도 한다. 그들을 보면 신비롭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양배추 김치를 먹으며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양배추가 김치가 되듯, 외국인들이 우리의 문화에 젖어 들 듯, 무슨 일이나 받아들이고 삭인다면 갈등과 반목은 없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동과 서가 어우러지고, 난장을 치는 국회가 조용해 질 것이고, 남과 북이 서로 얼싸안지 않겠는가. 양배추까지 김치로 담아 먹는 재간을 가진 민족이니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아내가 차려낸 저녁 식탁에 양배추김치가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하고 있다. 큰 대접에 밥을 옮겨 양배추 김치와 된장을 듬뿍 넣고 쓱쓱 비벼 한술 크게 뜬다. 시큰하게 맛이든 양배추 김치가 아삭아삭 씹힌다. 곰삭은 맛이 기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