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사냥 / 신현식
공공의 적이라면 불한당이나 모리배를 생각하실 테지요.천만의 말씀입니다. 손톱의 때만 한 존재가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렴요. 단잠을 칼질하는 모기야말로 공공의 적이 아닐까 합니다.
여름철, 해가 기울 때부터 모기들은 사냥을 나섭니다. 이놈들은 사람이나 짐승에 달려들어 흡혈을 합니다. 산 입에 거미줄치랴. 그놈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주사기 같은 주둥이를 찔러서 피를 빨아 가는 건 도대체 뭡니까.
열대야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판에 이곳저곳을 찔러대니 짜증이 날 수밖에요. 어디 그 뿐입니까. 댕기열이니 말라리아를 퍼트리는가 하면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뇌염까지 우리에게 안기지 않습니까. 천인공노할 모기란 놈들, 만인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며칠 전 이었습니다. ‘쿵쾅’하는 소리에 놀라 깼습니다. 아내가 불을 켜고 모기를 쫓고 있었습니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그러지 뭡니까. 신문을 말아 쥐고 ‘우당탕탕, 우당탕탕’ 이곳저곳을 휘젓고 뛰어 다녔습니다. 달밤에 체조가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아내도 오죽했으면 그러겠습니까. 나도 생각 같아서는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요절을 내고 싶지요. 그러나 저는 참습니다. 일어나서 한바탕 휘젓고 나면 잠이 다 달아날 것 아닙니까. 선밤을 잔 다음 날은 컨디션이 엉망진창이 되더라구요.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보다 더 나쁜 놈들인데도 누구 하나 “모기놈들 물러가라!”하고 촛불 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튼 속옷 바람에 난리를 치는 아내를 보며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어두워 질 때까지」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식구들이 출타한 틈을 타 그녀를 죽이려 악당이 집으로 옵니다. 그녀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녀는 가녀린 여자일 뿐만 아니라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이었습니다. 그녀의 목숨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이었지요. 그런데 그녀가 생각한 것은 전기를 차단하여 전등을 끄는 것이었습니다. 어두움 속에서는 침입자보다 자기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났을까요.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침입자를 물리칩니다.
옳다구나. 모기도 그렇게 잡으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 영화에서 힌트를 얻은 셈이지요. 잘 아시겠지만 모기를 잡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놈들은 재바르기도 하지만 작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구석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놈들은 불빛이나 냄새를 따라 날아듭니다. 놈들은 땀 냄새도 좋아하지만 화장품 냄새도 좋아합니다. 귓볼에 로션을 조금 발라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놈들은 냄새를 맡고 슬슬 귀로 접근할 것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0층까지 올라오는 영악한 놈들이라도 무슨 특공대처럼 소리 없이 다가올 수는 없을 겁니다. 그 소리의 강약으로 거리를 가늠하는 겁니다. 놈들이 유효 사거리 안네 들어왔다 싶으면 손으로 냅다 내리치는 거지요. 워낙 재발라 지망지망히 대해서는 안 되는 놈들이니, ‘ 5분 대기조’처럼 귀 근처에다 손을 대기 시켜 놓아야겠지요. 불을 켜지 않은 상태라 보이지 않는 것은 놈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후텁지근한 여름밤, 이제 모기 잡으러 귀찮게 일어나시지 않아도 됩니다. 쿵쾅거려 이웃들의 단잠 깨울 염려도 없습니다. 모기에 물리는 것 보다 더 해롭다는 모기약 뿌리지 않아도 됩니다. 별 것을 가지고 요란을 뜬 다구요? 왱왱거리며 여기저기 찔러댈 때는 정말이지 이 보다 더한 작전도 마다 하지 않을 겁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파리란 놈이 낮잠 자는 ‘우 순경’ 건드렸다가 스물 여남은 사람 희생된 옛날 의령 사건도 있지 않습니까.
어제 밤에는 비장한 각오로 그 작전을 실행에 옮겨 보았습니다. 백발백중이었습니다. 일어나지도 않고, 모로 누워서 하는 작전이라 누워서 떡 먹기였습니다. 선인들 말씀이 “보이지 않으면 들어라” 했습니다. 딱 들어맞는 가르침 아닙니까.
그렇게 모기를 잡다가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고 우위에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가장 귀히 여기는 사랑이니 행복도 보이지 않고요. 명예나 명성도 보이지 않고요. 한시도 없으면 안 되는 공기니 바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부나 출세를 가져다 주는 정보 또한 어디 보이던가요.
인간이 갈구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더 많고, 우리는 그것들을 쫓아다니는 삶을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귀로 보아라.” 라는 소리 정말이지 새겨 두어야 합니다. 여름 밤, 모기 놈들 때문에 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첫댓글 모기 농사는 사람들의 피를 빠는 일이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모기의 속성을 간파하고 물리치는 방법 잘 배웠습니다.
우리 집에도 모기와 가끔 전쟁을 치릅니다.
저도 유인하는 작전으로 귀로 듣고 한번 내쫓았다가 출격대기 할만한 곳을 관찰하여 전기채로 낚아챕니다. ㅎㅎ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