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과 머저리(이청준) 독후감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는 제목에서 나에게 많은 궁금증을 자아해냈다. 병신과 머저리라... 친구이야기인가? 재밌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좀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서 변신과 머저리는 각각 형과 동생이다.
단 한번의 실수도 없던 외과 의사인 형이 수술을 하던 중 어린 소녀가 죽는다. 형은 이 일로 6.25 전쟁 당시의 불행한 일을 떠올리고는 집에 틀어 박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화가인 '나'는 한때 화실에 나왔던 혜인과 사랑하는 사이지만 '나'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한 불만 때문에 다른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 말하는 혜인을 잡지 못한다. 이에 비해 형은 삼각관계에서 승리하고 지금의 형수와 결혼한 인물이다. 형의 소설에는 이등중사 오관모, 김일병, 그리고 형인 <나>가 등장한다. 부상당한 김 일병을 성욕의 대상으로 삼았던 오관모는 김 일병이 쓸모없다고 판단되자 죽이려한다.
형의 소설은 여기에서 중단되어 있다. '나'는 형 대신 <나>가 불쌍한 김 일병을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화실에 찾아온 형은 '나'에게 비아냥거리며 그린 그림에 구멍을 내 버린다. 그 날 '나'는 소극적인 '나'에 대한 비판의 내용이 담긴 혜인의 편지를 받는다. '나'는 형이 결말을 다시 써 놓았음을 확인한다. 그 결말은 관모가 김 일병을 죽이고 <나>가 관모를 사살 한다는 내용이었다. 혜인의 결혼식에 갔다 온 형은 '나'에게 '김 일병이나 죽이는 머저리 병신'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자신이 쓴 소설을 불태운다.
전쟁의 상처 때문에 일상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형을 '병신'으로 , 전쟁 경험은 없으나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현실을 의미없이 사는 나를 '머저리'에 비유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면서 현실에서 생겨난 상처가 '소설'이라는 창작의 과정을 통해 치유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작가에게 있어 소설은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물론 소설만이 상처를 없애주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소설 속 형에게 만큼은 이보다 더 좋은 약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형은 소녀의 죽음과 김 일병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마음의 상처'를 내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않았고 계속하여 숙고하며 지냈다. 만약 그것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면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동생처럼 '명료한 얼굴이 없는 어떤 환부'에서 김 일병의 오른팔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그를 끊임없이 침식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은 동생과 달랐다. 상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동생과 달리 그는 상처를 내 것이라고 인정하고 두문불출한 채 소설 쓰기에 집념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 결국 그 상처가 꽃이 되어 좋은 향기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형은 자신이 문제를 온전히 끌어안고 창작의 고통을 통하여 그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형은 소설이라는 창작의 과정을 통해 아픔을 극복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형 같은 병신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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