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시기는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대림 제1주일2024.12,1강론)
예레 33,14-16; 1테살 3,12―4,2; 루카 21,25-28.34-36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며 늦장을
부리는 데 대한 참을성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두르는 주문,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푸딩,
인스턴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엄청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기만
합니다. 뭐든지 시간을 절약한다면
그런 장치는 매우 중요한 장치가
되며, 근로자는 빠르게 움직이는
조합 라인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통 체증과 그에 따른 지연은
격렬한 분노의 폭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기다림은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활동하고 일을 처리하며, 뭐든지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사회적인
맥락에서, 성탄절을 준비하기 위하여
4주일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대림 시기를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즈음 우리 모두는 성탄절
선물을 마련하기 까지는 그 기간이
겨우 며칠밖에 남지 않았으니 어서
빨리 성탄절 선물을 사두도록 하라는
강력하며, 화려하고도 집요한 메시지를
매일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현대
미디어의 큰 압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구원의 가치를
어떻게 설득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문화의 승리를 인정하고,
크리스마스 쇼핑을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대림 시기의 목적으로
받이들이기는 하지만, 상업적으로
떠들어 대는 성탄절 선물들을 사는
대신에 영적인 책 한두 권을 사거나
약간의 헌금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쇼핑 대상을 바꾸도록 설득시키고
나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대림 시기의 기다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버려져
온 관습에 대하여 말로만 하는
립서비스에 불과할까요?
그렇습니다, 대림 시기는
교회가 “저 밖의” 세계와는 상당히
다른 어떤 곳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시기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많은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그 충성심을
양쪽으로 나누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 즉 한쪽 발은 이 세상에 들여
놓고, 소위 말하자면, 다른 한쪽
발은 영(靈)의 영역에 들여 놓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런 두 가지 대치되는
긴장감이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즉 어떤 때는 세상의 가치가 승리를
하고, 또 가끔 가다가 영적인 가치가
승리를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아니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는 우리의
경험의 의미를 조명하기 위한 것이며,
복음의 가치는 세상을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데 지침을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분열된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믿는
것을 하나로 모은 내면의 통합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은
사무엘 베게트의 Samuel Beckett
잘 알려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를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연극은 하느님이
안계시는 하나의 세계를 묘사하는
내용인데,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존재가
무의미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두 사람의 떠돌이가 매일 같은
장소로 돌아와서 고도를 기다리는데,
그렇게 기다리는 고도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연극 전체를 통해서 그 두 사람의
떠돌이는 어리석을 정도로 쾌활하게
행동하는데, 그 이유는 무의미한
자기네들의 우스꽝스러운 활동으로
기다리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그렇게 바보들처럼 희희낙락 놀이를
하는 것이지요.
그 연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간은 자신의 상황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자기네들 스스로의 의식 속에서
가능하면 멀리 사라져 없어지도록
노력하는 것 외에는 따로 할 일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신(神)이 없는 세계에서의 인간이란
그렇게 무의미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계속 바쁘게 유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냥 죽어야만 하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다림으로
인한 삶의 공허함에 무언가 어떤
양상의 부여를 강요하는 두 방랑자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입니다.
우리의 문화가 쇼핑을 통해서
우리 삶의 공허함에 무언가
양상을 부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수 있을까요?
기다림의 대림 시기 정신에
훼방을 놓는데 있어서 우리의
문화는 말로만 하는 립서비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까요?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의 삶은
무의미의 가장자리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성공과 관계 있는 문제, 이를 테면,
더 나은 생활 방식, 더 나은 자동차,
더 나은 휴가, 어떻게 ‘넘버 원’이
될 수 있는지 등 – 장기적으로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문제로
-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발전,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려, 수태의
순간부터 모든 단계에서 인간
생명 존중, 평화와 인권 달성 등의
영적인 문제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내용이
우리가 대림 시기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핵심을 생각해 보게 해주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대림 시기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의 방향을
재조정해보도록 하라는 복음
말씀의 도전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라는 하나의 초대가 되는
것입니다.
– 즉 새로운 교회의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시작을
하도록 하라는 초대가 바로
대림 시기의 진정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림 시기가
시작되면서 복음과 문화 간의
대립이 매우 두드러지게 눈에
띄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과 문화 간의 이런 전투에서
문화가 승리한다면 문화는 영성의
가치를 물쓰듯 돈을 쓰면서 서로
축하를 하는 낭비와 허영의
대잔치로 대체하는 데 성공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복음이 승리를
한다면 거금의 지출과 축하의
대잔치가 영성의 대축제로
대체될 것입니다.
영성의 대축제는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갈망을 불러 일으켜 주게 될
것입니다. – 즉 상업적인 면에
있어서는 매우 나쁜 타격을 주게
될 그런 갈망을 불러일으켜 줄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의 자원
사용에 다른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에 상업적인 면으로는 매우
나쁜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싸움은 정말 삶과
죽음의 싸움이 되는 것이며,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할 그런 하나의
싸움입니다. – 우리는 지금 그런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정신과 대림의
그리스도교적인 시기(時期)에 대한
문화적인 매춘 사이에는 결코 평화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모든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직면해야
하는 몇 가지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저렴한 은혜”
– 할인된 종교 -를 찾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도직의 가치에 의하여
도전 받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방금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데에 사용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에 대한 무서운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심판에 비추어
이 모든 것을 검토해야 할 날이
올 것임을 상기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메시아를 위한
우리의 기다림이 우리의 삶에서
최우선시 되기 시작하는 그런
순간이 될 수 있을까요?
–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보다 더 큰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 정말로 꼭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기 시작하는
그런 순간이 될 수가 있을까요?
기도, 성경 읽기,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가 도와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고,
더 간단한 생활 방식을 가꾸어
나가고, 의롭지 못한 일과 대결하는
등 – 이런 것들이 우리가 메시아의
축복을 기다리며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들 중의
몇 가지 방법이 됩니다.
메시지를 받아들이려면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일부 미디어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차단시켜야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복음의
평화와 기쁨에는 대가(代價)가
따르기 마련인 것입니다.
첫댓글 메리놀회 문애현 요한나 수녀님 미국에서 선종하셨다는 소식 좀 전에 접했습니다. 사랑이 많으셨던 수녀님을 하느님께서 품에 받아주시길 이 시간 간절함 마음으로 청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멘!아멘!
삶의 방향~~
감사합니다
신부님의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선물이 넘쳐나는 세상
먹거리가 넘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지금도 배꼽아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
신부님들께서는
돈 돈 돈이야기 하지않았으면 합니다.
어디를 가나 이 놈의 돈
후원 찬조~~^^
👎 👎 👎 👎 👎
스스로 주머니를 열도록
만들어 주셨야지요.
가슴을 울리는 일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피정의 집 풍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주흘산 자락의
하얀 눈. 한폭의 그림입니다.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찬미예수님!
아멘.🙏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안드레아신부님!영명축일축하합니다!신부님을위해오늘미사를봉헌합니다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11월30일]
📖말씀: 로마 10,9-10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하느님과 끊임없는 친교, 인격적인 만남인 기도생활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나아가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실천 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삶이 점점 그리스도화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의 열매는 실천입니다..
🕯나의 기도
주님!! 당신에 대한 제 믿음의 지반을 탄탄하게 하시어 신앙의 토대가 견고하게 해 주소서.
💒실천해보기
•예수님 말씀 실천하기
♧복음화발전소 제공♧
감사드립니다!!!
영명 축일을 맞으신 안드레아 신부님 늘 감사합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마다 잘 되시길
주님께 의탁드립니다 아멘 🙏
메리놀회 문애현 요안나
수녀님을 위해서도 기도 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기쁨니다
아멘!
세상적 상업적 성탄준비에 빠지지 않도록 신부님 말씀 기억하고 실천하며 은총의 대림시기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부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신부님 항상 활기찬 삶이 참 좋아보입니다-^^
아멘~~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축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네~~~
신부님 저는 지금 강남 가톨릭 병원 입원하러 가는길이에요
수술은 월요일이구요
겁이나요 기도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