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가 초등학교 3, 4학년이었을 시절, 정하에게는 스스로 최고의 친구라 자부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나온. 온이는 정하가 보기에 정말 특별한 친구였다.
언제 어디서나 그런 친구는 한 명 쯤 있다. 뭐든 잘하고, 무리 안에서 항상 대장 역할을 맡는 그런 어른스러운 친구 말이다. 또래 아이들은 그 친구를 바라볼 때 항상 경외심을 섞어 바라보는 아이. 정하에게 있어 온이는 그런 친구였다.
또한 정하에게 있어 온이는 항상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친구였다.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까지 나름 정하 인생 중에 반 이상을 함께했고, 거기에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고 나서부터는 거의 매일 같이 함께 노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비록 온이는 가끔 다투거나 할 때면 항상 져주지 않고 또박또박 논리정연한 말들로 정하를 마치 애로 만들어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하는 자기 친구 온이가 정말로 좋았다.
그렇게 같이 웃고, 때로는 투닥 거리면서 지내던 어느날,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여느 때와 같이 정하의 집에서 정하와 온이가 같이 놀고 있었다. 같이 안방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 게임을 하던 와중, 대뜸 정하가 온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평소에 항상 자기보다 한 단계 위에서 내려보며 무시하는 듯한 온이의 태도에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 한순간에 터진 것이었다.
“내놔, 그거 내 꺼잖아. 왜 네가 맘대로 정하는데.”
온이는 대뜸 가시 돋은 말을 꺼내는 정하를 쳐다보고는, 이내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래. 근데 이거 네가 쓰라고 줬잖아. 잠깐만 더 쓰고 주려 그랬어.”
“뭐래, 항상 그러고는 한참 했으면서.”
“언제?”
온이는 어떤 동요도 떠올리지 않는 표정을 짓고선 또박또박 정하의 말에 반박했다.
정하는 그런 온이의 표정에 문득 주춤하였다. 그러나 이내 속에 쌓인 울분을 터트리며 지껄이기 시작했다.
“맨날 그러잖아, 맨날. 맨날 내 꺼 쓰는데도 네가 더 오래 쓰잖아!”
“뭐래, 네가 먼저 점수 올려달라며. 그래 놓고 이제 와서 그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뭐 맨날 너만 하다가 가잖아!”
“내가 언제?”
정하가 분에 넘쳐 지껄여대자, 온이도 조금씩 흥분하였다. 여전히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따박따박 지껄이고 있었지만, 그 속의 감정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아까 내가 말했잖아! 맨날 그런다고 맨날! 맨날 네가 내 갤럭시탭 가지고 너만 한다고!”
“그래, 그럼 해, 너 해. 너 다 해. 그럼 된 거 아냐.”
“아니, 씨, 그런 얘기 하는 게 아니잖아!”
어느새 정하는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치면 소리칠수록 눈물이 새어 나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럼 나보고 뭐 어쩌라고. 그냥 가줘?”
“흑, 가, 그냥 나가!”
“그래, 그럼 우리 절교야.”
“그냥 가라고, 꺼지라고!.”
“……그래.”
그렇게 온이는 문을 쾅하고 닫아버리고 나갔다.
어느새 남겨진 정하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정하는 혼자가 되어서야 한없이 울어 재꼈다.
“흐윽, 꺼이. 흑, 꺽.”
정하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모조리 쏟아내었다.
‘다시는 온이를 못 본다니. 더 이상 친구도 뭣도 아니라니. 절교라니.’
단지 정하는 슬픈 마음 뿐이었다.
정하는 혼자 남은 안방이 외롭게 느껴져서 밖으로 나왔다. 안방을 나오니 들어난 거실 마루는 지저분히 널브러져 있었다. 정하는 마루에 널브러진 온갖 잡동사니들을 훑어보았다. 닌텐도 스위치, 옷가지, 책가방 같은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데 정하는 마루에 널브러진 것들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마루에 있는 것들 중에 닌텐도 스위치, 책가방이 온이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현관벨이 울렸다.
띵동- 띵동-
정하가 인턴폰을 살펴보니 온이의 모습이 비쳤다. 정하는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이내 하염없이 울던 모습 그대로 현관문을 열러 갔다. 그러곤 현관문을 열어 보니 정말 그 앞에 온이가 서 있었다. 무척 어정쩡하게, 정하가 알던 온이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양으로 온이가 거기 서 있었다.
온이가 정하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예, 안녕하세요.”
“혹시 들어가도 되나요?”
“예, 들어오세요.”
온이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현관문을 닫고 그 뒤를 따랐다.
온이가 널브러져 있는 마루를 보곤 말했다.
“어……, 집 안이 많이 너저분하네요. 무슨 일 있었나요?”
“예 뭐, 별일 아니에요.”
“……네.”
그 뒤로 정하와 온이는 한참 존댓말을 사용해 가며 게임을 하고, 웃고, 놀았다. 마치 그 날 처음 본 사람들인 것처럼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있다 보니 어느새 늦은 시간이 되어 정하의 어머니,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다. 정하의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저녁 밥을 준비해 주셨고, 밥을 먹기 전에 먼저 자리에 앉으라고 정하와 온이를 불렀다.
그렇게 식기만 올려져 있는 식탁에 나란히 앉아서 온이가 어수룩하게 웃으며 정하에게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하자.”
“그래.”
말을 주고 받으며 둘은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그날의 일은 마무리 되었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