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영욕 / 신현식
국경을 넘자 긴장이 되었다. 가이드가 거듭거듭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다. 가방을 꼭 쥐고 일행의 꽁무니를 따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초소를 지나자 듣던 대로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 붙었다. “원 달라! 원 달라!”하며 아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군인 하나가 우리 쪽으로 급하게 달려왔다. 그러자 놀란 새떼가 날아오르듯 아이들이 일시에 흩어져 달아났다. 캄보디아의 사정은 이렇게 심각했다.
캄보디아는 근대에 갖은 혼란을 겪은 나라다.‘시아누크’,‘논롤’ 같은 정치인들이 정권 탈취에 공몰했고, 이 틈에 이상주의자인 ‘폴 포트’가 나타나 200만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버스는 먼지를 날리며 ‘앙코르와트’를 향해 달렸다. 비포장길 양편으로 펼쳐지는 농촌의 풍경은 비참했다. 집 앞 웅덩이의 황톳물을 생활용수로 쓴다는 것이다. 그런 물을 먹고 아이들이 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돈이 없어서 펌프는커녕 반듯한 우물도 파지 못한다고 했다.
앙코르와트는 폭이 200미터나 되는 해자에 둘러싸여 있었다. 해자 위의 다리를 건너 한참을 들어가니 커다란 연못이 나왔고 연못 뒤쪽으로부터 앙코르와트의 장엄한 모습이 나타났다. 그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이 거대한 구조물을 누가 어떻게 세웠을까.
일부의 학자는 3만 명의 장인들이 30년에 걸쳐 조각했다고 추정했다. 이런 거대한 성과 사원을 세운 ‘크메르제국’의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우리보다 체구도 작은 사람들이 어떻게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으며, 어떻게 거대한 구조물을 축조했단 말인가. 유적들을 둘러보는 내내 의문이 일었다.
다음 날, ‘코끼리 테라스’에 갔을 때 그 의문이 풀렸다. 그 거대한 구조물의 벽에는 실물 크기의 코끼리들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었다. 테라스 앞에 거대한 광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장에 출정하거나 승전을 축하할 때 사열대 구실을 했으리라.
곳곳의 벽화에 나타난 것처럼 그들은 전쟁도 코끼리로 했고 성과 사원을 쌓은 돌도 코끼리로 운반했다고 한다. 크메르 제국,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코끼리 였다. 그들은 코끼리를 다루는 기술로 넓은 영토를 차지했고 부를 축적하여 거대한 사원과 성을 축조하고 영화를 누렸던 것이다.
국경 지역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태국으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국경이다. 안내자는 입국할 때보다 출국할 때가 더 위험하다고 했다. 돈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여권을 잃어 자주 곤욕을 치른다고 했다.
입국할 때처럼 가방을 움켜쥐고 걸었다. 역시 입국 때처럼 “원 달라, 원 달라!”라며 아이들이 새떼처럼 와르르 따라 붙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걸었다.
출입국 심사를 하는 초소 앞에 다다르자 이젠 어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남루한 차림의 캄보디아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은 허드렛일을 하러 태국으로 출근하는 길이라 했다.
옛날 자기들이 지배했던 태국에 막노동을 하러 국경을 넘어 가는 것이었다. 줄지어 기다랗게 늘어선 그 광경 위에 ‘앙코르와트’의 장엄한 광경이 자꾸만 오버랩 되었다.
태국은 말 할 것도 없고 베트남과 주변국 모두를 점령하여 제국을 세웠던 그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힘의 패러다임을 무시하고 코끼리만 믿었던 것일까. 혼란을 틈탄 권력지향주의자들의 농간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생각이 삐뚤어진 지도자들에 의해 한 국가가 이토록 참담한 지경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국경을 넘으며 지도자의 몫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