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버튼만 누르면 밥이 되고 세탁이 된다. 빌딩이 숲을 이루고 나도 다이어트에 골몰하니 좋은 세상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살기가 좋아지면 인심도 넉넉해져야 하건만 어쩐 일인지 각박해지기만 한다. 그러나 이 곳에는 훈훈한 인심이 아직 살아 있어 그 이야기들을 여기에 옮겨본다.
‘태백’에서 ‘철암’으로 오는 길이었다. 달리는 버스의 창밖 풍경은 갈 때와 사뭇 달랐다. 기사에게 다가가 물으니 철암을 가지만 한참 돌아서 간다고 했다. 큰일이었다. 기차 시간을 알려주며 그때까지 가겠느냐고 물으니 확답은 못 하겠다고 했다. 친구와 부부 동반으로 태백의 눈꽃 축제에 갔다. 대구에서 출발하여 네 시간 만에 강원도 철암에 내렸다. 태백은 그곳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을 더 가야했다. 태백은 설국이었다. 곳곳에 볼거리들이 널려 있었다. 설경은 물론 유명 맛집과 재래시장을 돌며 식도락까지 즐겼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시 철암으로 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주민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철암행 표지판을 보고 버스에 올랐건만 예의 바깥풍경이 엉뚱했던 것이다. 좌석으로 돌아와 일행에게 사실을 알려주니 울상을 지었다. 버스 안의 승객들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 차를 놓치면 차삯은 차치하고, 세 시간 후에 다음 기차가 온다고 했다. 한적한 시골길에 택시가 있겠는가. 낭패였다. 뒤편의 웅성거림을 듣고 버시기사는 우리가 들으라는 듯 무언가 중얼거렸다. 얼른 앞으로 다가갔더니 속도를 내면 될 것도 같다고 했다. 버스가 속도를 내려면 승객들도 재바르게 내려 주어야 했다. 둘러보니 승객들은 모두 나이가 연만하신 노인들뿐이었다. 버스가 정류소에 도착해야 짐을 주섬주섬 꾸리고 허리를 편 후에 조심조심 내리는 분들이었다. 그분들께 어떻게 서둘러 주십사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고는 다음 정류장부터는 노인들 스스로 먼저 일어서서 입구로 걸어 나오셨다. 그러나 정류장은 왜 그리도 많은가.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었다. 승객들도 내일인 양 초조해했다. 이제 일 이분 밖에 남지 않았다. 기차시간 안에 도착하기 틀린 일이었다. 그렇게 포기를 할 즈음 가물가물 철암역이 보였다. 그러나 정류소가 두 곳이나 더 남아 있엇다. 더구나 두 분 노인은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했다. 그런데 그 노인들은 차를 세우면 기차를 놓치니 그대로 가자고 했다. 자신들은 걸어서 되돌아가도 된다는 것이다. 괜찮다며 내리시라 해도 기사에게 그대로 가자고 소리치셨다. 역에 도착과 동시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뛰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선반에 짐을 얹고 가쁜 숨을 가라앉히자 친구는 두 분 노인처럼 고마운 사람과 만났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몇 년 전, 가족들과 겨울 나들이를 갔다. 위쪽 지방이라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힘겹게 한적한 시골길을 지날 때였다. 큰 화물차가 맞은편에서 위협적으로 달려오는 바람에 갓길로 핸들을 돌려 피했다. 그곳이 마침 움푹 파인 곳이어서 차가 그만 눈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빠져나오려고 기어를 저속으로 번갈아 넣으며 안간힘을 써봤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바퀴는 자꾸만 더 빠져 들었다. 차에서 내린 식구들이 있는 힘을 다해 밀어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바퀴 아래에 흙을 뿌려보기로 했다. 솜이불 같이 두껍게 덮인 눈을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걷어내어 흙을 한줌씩 퍼다 날라 바퀴 앞에 깔았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실로 남감한 상황이었다. 눈이 많지 않은 곳에 사는지라 동절기 차량 장비를 챙기지 않았으니 당연히 차량 체인도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보험사에 견인을 요청해야할 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지나던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한 젊은이가 다가와서 도와주겠다며 손을 걷어붙였다. 젊은이는 상태를 보더니 우선 자기 차에 채워진 체인을 벗겼다. 다음은 빠진 차를 잭으로 들어 올려 체인을 감았다. 그러는 동안 쏟아지는 눈을 그대로 맞아 옷은 흠뻑 젖고 말았다. 시동을 걸고 힘껏 기속기를 밟자 차는 도로 위로 올라왔다. 젊은이는 다시 체인을 벗겨 자신의 차에 채웠다. 체인을 벗기고 끼우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 그것이 금방 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차가운 눈을 맞아가며 남을 도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례를 하려하자 손사래를 치며 휑하니 사라져갔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지난 해에 겪었던 내 체험담을 들려두지 않을 수 없었다.
구정 이틀 전이었다. 친구들과 김천 대덕면의 수도산으로 등산을 갔었다. 산 아래에 도착하니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곳이 눈이 많은 곳인 줄 그때 알았다. 산행을 마치고 먼저 내려간 사람은 승용차를 가지고 온 친구였다. 시동을 걸어 놓으면 뒤에 오는 친구들이 따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시동을 걸어놓고 창문을 걸레로 닦고 있었다. 그때였다. 거센 바람이 불어 문이 ‘쾅’하고 닫히는 바람에 철커덕 문이 잠겨 버리고 말앗다. 오작동이었다. 시동은 걸려 있는데 자동차의 키는 안에 있는 상태였다. 문을 열려고 온갖 짓을 다 했다. 그러나 어림도 없엇다. 수없이 반복했지만 허사였다. 그동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방법이 없었다. 유리창을 깨고 문을 열자고 누가 제의를 했다. 부인들이 모두 반대를 했다. 아깝다는 것이다. 또 대구까지 가는 동안 그곳으로 들어오는 칼바람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 방법은 보험사의 구난 구조 요청뿐이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어느덧 해는 지고 사위는 캄캄했다. 하산길에 흘린 땀이 식어가자 한기가 들어 발을 동동 굴렸다.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짙어져 갔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김천이다. 여기까지 오려면 그 유명한 일명 ‘아흔아홉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렇게 눈이 쌓여 얼어있는 빙판길을 이 밤에 어떻게 오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창문을 깨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세 시간을 기다렸을 즈음 멀리 자동차 불빛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를 구조하러 온 보험사의 서비스 요원이었다. 그들은 단숨에 잠긴 문을 열어 주었다.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가맹점들이 위험하다며 모두 가지 않으려 하자 먼 곳에 있는 자기에게 요청이 왔다고 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위험하기 그지 없는 그 빙판의 아흔아홉 고갯길을 달려와 준 것이었다. 평소 한 시간이면 충분한데 무려 세 시간을 달려 왔으니 그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겠는가. 돌아가는 길에 뜨끈한 국물이라도 드시라며 건네는 봉투도 한사코 마다하며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