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와의 사랑
내가 다시 호두나무에게 돌아온 날, 애기집을 들어낸 여자처럼 호두나무가 서 있어서 가슴속이 처연해졌다
철 지난 매미떼가 살갗에 붙어서 호두나무를 빨고 있었다
나는 지난 여름 내내 흐느끼는 호두나무의 곡을 들었다
그러나 귀가 얇아 호두나무의 중심으로 한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다시 호두나무에게 돌아온 날, 불에 구운 흙처럼 내 마음이 뒤틀리는 걸 보니 나의 이 고백도 바람처럼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알겠다
- 문태준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중에서
해석
호두나무로 상징 되는 누군가의 못난 모습, 혹은 민낯을 보게 됨
에전에는 그리도 애태웠으나 알지 못하였던 모습을 마주하게 됨
하지만 이토록 애태우던 모습을 마주했음에도, 정작 나의 이 마음은 그 모양이 변하고 뒤틀리는 것을 알게 됨 (혹은 사랑하는 이의 민낯을 보니 마음이 식은 걸로도 해석됨)
결과적으로 내가 그리 애태우던 것의 정체 역시 마주하고 보았을 때는 단지 한 줄기 바람처럼, 용서할 수도,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었음(혹은 한 순간의 마음이 남긴 말, 고백 역시 갈대처럼, 갈대를 뒤흔드는 바람 같은 것이기에 용서 받을 수 없음)
고로, 내가 읽은 호두나무와의 사랑은 담백한 사랑의 민낯을 그려내는 시였다. 다만 그 민낯이 어떤 모습인지는 잘 상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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