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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믿음의 거인들을 본받으며 성장하는 신앙-도마
의심 많은 제자 도마가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목숨을 바쳐 전했는가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
“성경 다음으로 믿음의 삶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마도 그리스도인의 전기일 것이다. 성경 그 자체도 대부분 선지자들과 족장들과 왕들의 삶-그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기도하고 수고하고 고난을 당하고 마침내 승리했는지-을 묘사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조이스 브라운 지음, 『세계를 변화시킨 믿음의 거인들』, 김주성 옮김. p.12
* 매스미디어(대중전달매체)가 발달한 이 시대에 우리 자녀들은 본받고 살아야 할 좋은 위인들은 적고, 이런저런 분야에서 빼어난 유명인사들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바르고 굳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녀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시간을 그러한 유명인사들보다는 성경과 그리스도인의 전기를 읽고 배우고, 그런 삶을 살기를 힘쓸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업가들을 찾아다니며 성공 비결을 비우고, 운동이나 악기 연주를 시작하는 사람이 성공한 운동가나 연주자에게서 배우고 익히듯이,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러한 신앙의 위인들을 찾아 배우고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바쁜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전기를 읽고 배우는 일을 기뻐하며, 우선순위를 두고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주변에서 가끔 보고 듣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부끄러운 불의와 불법에 대해 낙심하며 주저앉지 말고, 숱한 역경과 고난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간 그리스도인들을 주목하고 그들에게 마음과 시간과 노력을 쏟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 도마의 이름과 배경
은성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생각할 때에 상당히 특별한 분이 도마이지? 그의 별명은 ‘의심 많은 도마’인데, 서구에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Doubting Thomas’라고 부른다고 한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요 21:2)라는 말씀을 보면 그는 아람어인 ‘도마’ 외에 다른 이름 즉 ‘디두모’라는 헬라어 이름(둘 다 쌍둥이라는 뜻)을 가졌다. 어떤 분은 쌍둥이는 두 아이에게 똑같이 해주지 않으면 한쪽이 시기하거나 질투하게 되기 쉬우며, 도마는 이러한 배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의심이 많고 질문도 많이 하는 성향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을 한다. 그러나 그의 의심은 ‘정직한 의심’이어서 일단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게 되면 그는 진심으로 그 진리를 따랐다. 그러므로 그를 ‘Doubting Thomas’라기보다는 ‘Questioning Thomas’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하는 말에 공감이 된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일곱 제자들 중에 도마가 있다는 것은 그의 직업에 대해 암시하는 것이 있다(요 21:2). 공관복음서에서는 마태복음 10:3에서 일곱 번째, 마가복음 3:18과 누가복음 6장 15절에서는 여덟 번째 언급되고 있을 뿐 그가 언제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되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2. 은성아, 이제 요한복음에서 전하는 도마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가. 요한복음 11장
나사로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바로 달려가서 도와주지 않으시고,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신 다음, 다시 유대 지방으로 가자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친구 나사로는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11:11)고 하시고, 나중에 “나사로가 죽었느니라”(요 11:14)고 밝히 말씀하신다. 바로 이때 도마가 등장하는데, 그는 뜬금없이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해서 피하여 온 것인데, 다시 그 위험한 유대로 가자고 하는 그를 보면 그는 용기 있는 제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시지 못하고 오히려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전제를 근거하여 판단하면, 용기가 있으면서도 죽음을 내다보는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흥미 있는 것은 이 일 후에 나사로가 실제로 죽었으나 예수님이 다시 살리신 것을 도마가 보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에는 믿지 못하다가 결국 확신하게 된 것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다.
나. 요한복음 14장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3-6)
이 장면에서 늘 앞장서던 베드로가 아니라 도마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도마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자세보다 확인하고 분명하게 하려는, 완벽주의 특유의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답변을 볼 때 도마는 아직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당시 유대인들이 많이 생각하던 인간적인 메시야를 생각하며 따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확인한 후에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절)라고 바르게 고백한다.
다. 요한복음 20장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5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저녁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오셨는데 마침 도마는 그 현장에 없었고, 나중에 다른 제자들을 통해서 소식을 듣자마자 그가 보인 반응이다. 그는 부활의 현장을 정말로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도마를 위해 예수님은 다시 일주일 후 그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다시 오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절)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절)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9절)고 말씀하셨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마침내 진정한 해답을 얻었다. 그는 무조건 믿지 않겠다는 회의론자가 아니라 명백한 확신의 근거를 찾고자 정직하게 질문을 던진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분은 그를 과학적인 마음을 가진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혹은 경험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합리주의자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진실 앞에 곧바로 무릎을 꿇는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확인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보아야 하겠지?
라. 도마의 사역과 최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 도마는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과 다시 갈릴리 호수로 고기 잡으러 가기는 했어도(요 21:2-3), 항상 다른 제자들과 함께하며 교제를 떠나지 않았다. 120명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던 자리에 있었던 제자들의 명단 속에도 도마가 들어가 있고(행 1:13),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함께한 사도들이 열한 사도라고 했으니(행 2:14) 당연히 도마도 거기에 들어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이제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던져버리고 굳은 확신과 담대한 신앙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였다.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도마는 페르시아를 거쳐 마침내 인도로 갔다. 그는 인도에 도착해서 복음을 전했고 지금의 첸나이(구 마드라스) 근처에서 전도하다가 그곳 원주민이 던진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찔림을 당하면서도 무릎 꿇고 기도하며 이 한마디를 반복했다고 한다. “주를 예배하나이다!” 지금도 인도 첸나이에는 그의 무덤과 그를 기념하는 도마 기념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 정면에는 “주를 예배하나이다!”라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쓰여 있다. 인도에서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그들을 통해 듣게 되는 두 사람의 이름이 있는데, 한 사람은 도마이고, 또 한 사람은 현대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엄 캐리이다. 선교의 문을 열고 인도를 찾아갔던 윌리엄 캐리와 함께, 사도 도마는 인도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인물이다.
3. 은성아, 이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믿지 못하고 회의론자가 되거나 무신론자가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좋은 선생님의 책에서 일부를 인용해 본다.
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이 소망이 반영된 생각이 아닌 진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라고 하면, 그들은 한결같이 예수의 부활이 그 증거가 된다고 말한다. 제임스 패커는 그 이유는 허다하게 많으며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확증하고 있는 것처럼, 부활 사건은 예수의 신성에 대한 증거가 되었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확인시켜 주었고,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그분의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그분께서 지금 우주를 다스리고 계시며, 미래에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임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고, 그분의 인격적인 용서와 현존하심과 사람들의 삶 속에 능력을 행하신다는 것이 진실임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각 신자들이 부활하여 새로운 몸을 입게 될 것임을 보증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 초자연적인 사건이 역사적 자료 속에 너무나도 철저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변호사인 라이오넬 러쿠(Lionel Luckhoo)는 한때는 신앙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방대한 증거를 분석한 후 이렇게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들은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여기에는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
(There is one tough question at the center of Christianity, “Did Jesus really rise from the dead?” Wouldn’t it be great if we could have the legal opinion of Sir Lionel Luckhoo about the resurrection? Well, we do. Sir Lionel Luckhoo was challenged to take his legal powers of analysis and apply them to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He spent years studying the historical record. Here is his conclusion.
“I say unequivocally that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is so overwhelming that it compels acceptance by proof which leaves absolutely no room for doubt.”)
(1) 초기의 증언: 믿을 만한 역사의 증언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서 바울은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이 암송했던 매우 중요한 신조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다양한 진영의 여러 신학자들은 이 신조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2년에서 8년 이내에 만들어진 것이며, 바울은 이 신조를 다마스쿠스나 예루살렘에서 전해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 사도행전 1-5장과 13장의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 매우 이른 시기에 쓰인 자료가 나타내는 신조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마가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4년밖에 지나지 않은 주후 37년 이전에 기록된 자료를 사용해서 마가복음의 수난 이야기를 썼다는 증거도 있다. 이처럼 역사의 최전선에서 들어오고 있는 보고들은, 예수의 부활이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몇십 년이 지난 후에 전설처럼 발전된 이야기라는 주장을 철저히 논박하는 증거가 된다.
(2) 모두가 인정하는 빈 무덤: 사라진 시체
마가복음과 고린도전서 15장이 말하고 있는 빈 무덤에 대해서는 모든 이들이 인정하였다. 로마 당국자들이나 유대교 지도자들조차도 무덤에 예수의 시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제자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체를 훔쳤다는 부조리한 이야기를 꾸며 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가설은 오늘날 가장 회의적인 비평가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크레이그는 또 하나의 설득력 있는 사실을 인용하고 있다. “예수의 무덤이 있던 장소는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무덤이 비어 있지 않았다면,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처형되고 매장되었던 바로 그 도시에서 그분의 부활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신앙 운동이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3) 목격자들의 증언: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는 그 이후 40일 동안 515명에게 12차례나 살아 있는 자신을 보이셨다. 그중에는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으며, 신자도 있었고 불신자도 있었다. 때로는 실내에, 때로는 환한 실외에 나타나기도 하셨다. … 일부 비평가들은 이미 돌아가신 예수를 목격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환각이나 ‘집단적 사고’의 결과라고 공격해 왔다. 즉 그런 집단적 사고로 인해서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환각이란 개별적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일 뿐 집단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당시의 정황은 집단적인 사고가 일어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환각이나 집단적 사고에 의해 예수의 나타나심을 경험했다는 가설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만약 제자들이 살아계신 예수를 만난 것이 상상에 불과하다면, 예수의 시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
(4) 교회의 출현: 역사의 틈 메우기
제임스 모어랜드는 예수의 부활과 같은 극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1세기의 유대인들이 토요일 예배를 일요일 예배로 전환하고,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동물을 희생시키는 제사 제도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주장하기 위해 모세의 율법을 고수하는 것을 포기하고, 삼위일체의 관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이런 변화를 선택한 사람들은 유대교 신학에 따라 사회적으로 추방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모어랜드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답한다. “부활만이 그에 대한 유일한 합리적 설명이 될 수 있다.” 케이브리지 대학교의 신약학자인 찰스 모울(C.F.D. Moule)은 “만약 신약성경이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는 교회의 출현이라는 현상에 관해서 부활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삭제해 버린다면, 세속 역사가들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그 거대한 틈을 메우려고 하는가?”라고 말했다. 드루대학교의 토마스 오든(Thomas C. Oden)은 “부활 후 제자들의 태도가 극적으로 변화된 것은 부활에 대한 최고의 증거이다. 부활에 대한 어떤 가설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자신들이 따르던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던 이들이 어떻게 자신 있게 그 메시야의 부활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교회는 만약 주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이러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는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그분께서 정말로 부활하셨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서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신은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그것이 거짓인지 알면서도 그 거짓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비 재카라이어스‧노먼 가이슬러 엮음, 『하나님을 누가 만들었을까』, 박세혁 옮김, 123-131.
은성아, 오늘 우리는 도마가 처음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으나 정말로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완전한 항복을 하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을 보았지만, 지난 2천여 년의 역사에서 처음에는 거부하고 부정하던 회의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부활의 증거들을 정직하게 살펴본 다음에는 결국 믿을 뿐만 아니라 열렬히 믿고 그것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바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나. 회의론자나 무신론자들에 대하여
볼테르는 자신의 시대로부터 백 년 안에 성경이 잊혀지리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기이하고 역설적인 반전으로 그가 죽은 지 한 세기가 지나기 전, 프랑스에 있는 그의 집 중 하나는 제네바 성서공회의 소유가 되어 성경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볼테르와 사르트르, 니체는 적어도 정직하고 일관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무신론적인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며, 삶은 어리석은 것이 된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도킨스와 해리스 등 오늘날의 무신론자는 자만심에 눈이 멀어, 그 인생관을 일종의 승리에 찬 해방으로 제시하려 한다. 사르트르는 죽을 때 무신론을 철학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인생관이라고 비판했다. 무신론자인 지적 엘리트들이 알면서도 언급하기를 꺼리는 내용이다.
라비 재카라이어스, 『이성의 끝에서 믿음을 찾다』, 송동민 옮김, 55-56.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신앙을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것을 이 세상에 부어주셨다. 그리고 순전히 이성이나 관찰만으로 사는 걸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충분히 많은 것을 빼놓으셨다.
라비 재카라이어스, 『무신론의 진짜 얼굴』, 권기대 옮김, 164.
은성아, 나중에 이 주제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무신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길이다. 그런데 부활이 믿을 만한 역사적 사실이라면, 무신론은 틀린 것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도마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듯이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삶의 변화’를 체험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신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질문은 다른 어떤 질문보다 삶과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라비 재카라이어스, 『무신론의 진짜 얼굴』, 권기대 옮김,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