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이 색(色)을 만나면 / 신현식
파랑과 하양
파란 가을 하늘도 아름답지만 흰 뭉게구름이 둥실 떠 있는 여름의 하늘도 더 없이 아름답다. 그것은 아마 색과 색이 만나 어떤 상승효과를 가겨 오는 때문이리라.
청바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웃도리는 하얀색의 티셔츠나 드레스 셔츠이다. 하얀색과 푸른색은 각각의 색만으로도 산뜻하고 깔끔하지만 두 색이 어우러지면 더욱 깔끔한 인상을 준다.
이태리 축구 국가 대표팀의 유니폼이 파랑과 흰색으로 되어 있다. 이태리는 역시 패션과 디자인의 나라다. 파랑색과 하얀색이 매치된 유니폼이 가장 멋있는 유니폼인 것 같아 이태리 축구팀의 유니폼이 늘 부럽기만 하다.
돛을 펄럭이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요트의 돛은 대부분이 흰색이다. 푸른바다에 가장 어울리는 색이 흰색이기 때문이리라.
바닷가에 내 별장을 갖게 된다면 벽면을 온통 흰색으로 칠할 것이다. 푸른 바다와 하얀 집이 어우러져 산뜻함을 줄 것이다. 침실의 시트도 스카이 블루와 화이트로 하여 풀을 빳빳하게 먹여 둘 것이다. 그 속에서의 수면은 분명 개운할 것이다.
검정과 빨강
우리 아파트 정원에는 큰 벚나무가 몇 그루 있다. 지난 가을, 빨갛게 물든 벚나무 잎들이 검정색 승용차 위에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광택이 나는 검정색 승용차 위에 놓인 새빨간 단풍잎들. 빨간색과 검정색이 어우러져 어느 설치 미술가의 작품 같았다.
‘리차드 버튼’이 나왔던 예전의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이 있었다. 그는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뉴욕으로 가야하는데 폭설로 인해 며칠 째 공항에 갇혔다. 그가 가지 않으면 회사는 파산하고 만다. 동분서주해 보지만 어디에도 방법은 없었다. 지칠대로 지친 그의 표정. 풀어헤쳐진 검정색 캐시미어 코트 속에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빨강 머플러가 분노와 좌절이 교차하는 눈빛을 닮아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초록과 하양
얼마 전 숲속에서 야생 목련을 보았다. 희디흰 꽃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산을 오르다 숲 속에서 이렇게 흰 꽃을 만나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잔디가 깔린 경기장에서도 흰색이 도드라져 보인다. 2002년 월드컵 개막색의 식전 행사에서도 흰색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흰 천이 펄럭이는 마스게임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흰 돛단배들이 초록 물결을 헤지며 나아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화가 천경자씨가 로마에 갔을 때였다고 한다. 한 식당에서 음식을 날라다 주는 미소년이 배추색 스웨터에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바지를 받쳐 있었다고 한다. 흰 칼라가 배추색 스웨터 위로 뾰족이 내민 옷에서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검정과 분홍
일본에 갔을 때다. 전시회를 관람하다 식사를 하러 구내식당에 갔었다. 매머드 식당인지라 메뉴는 도시락 밖에 없었다.식탁에 나온 것은 나무로 만든 도시락이었다. 옻칠인지 몰라도 검정색 도시락이었다. 뚜껑을 여니 몽울몽울 몽우리가 맺힌 매화나무 가지 하나가 반찬통 위에 놓여 있었다. 도시락의 검정색과 매화의 분홍색이 어우러져 손을 댈 수 없었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마침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가다보니 주차장 둘레에 서 있는 벚나무들이 봄비에 촉촉이 젖고 있었다. 그 벚나무 아래에 세워둔 검정색 승용차 위에 벚꽃이 우수수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봄비에 촉촉이 젖고 있는 그 모습 앞에 나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그 모습은 방금 보았던 매화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검정색 승용차 위에 비에 젖은 그 벚꽃의 모습은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비를 맞는 것을 아랑곳 않고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초록과 빨강
사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남해의 ‘설흘산’으로 등산을 갔었다. 산을 얼마만큼 올라 능선에 도달하니 사방이 탁 트이고 바다가 발 아래에 있었다. 나는 올라왔던 길을 내려다보았다. 아! 산 아래에는 커다란 그림들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올라온 비탈의 밭에는 보리와 마늘이 한창이었는데 밭 가운데 곳곳을 다른 작물을 심으로 농부가 갈아엎고 있었다. 갈아서 뒤집어 놓은 황토 흙은 간밤에 내린 비를 머금어 진한 빨간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마늘과 보리가 심어져있는 밭은 초록이었고, 뒤집어 놓은 밭은 빨강이었다.
그러한 삼각, 사각형의 밭들이 서로 어우러져 마치 모자이크 그림이 되었다. 그 그림은 유명 화가의 그림보다 훨씬 더 훌륭했었다. 나는 바닷바람에 일렁이는 초록 보리밭과 빨간 황토 흙의 대비에 흠뻑 취하여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노랑과 빨강
‘트로이 도나휴’라는 금발의 미남 배우가 있다. 그는 60년대에 「연애센터」, 「성숙 20세」, 「피서지에서 생긴 일」 등에 출연했었다. 그는 헐리우드의 청춘스타로 인기가 대단했었다.
그는 자기가 출연했던 영화마다 빨간색의 셔츠나 스웨터를 입고 나와 빨간색의 옷을 가장 멋있게 소화해 내는 배우였다. 물론 「이유 없는 반항」 의 ‘제임스 딘’도 블루진에 빨간 셔츠를 입고 출연하여 유명했었고, 「우정 있는 설복」 에서 ‘안소는 퍼킨스’도 빨간 셔츠를 입고 나와 많은 소녀 팬들을 설레게 했고 ‘죠지 페퍼드’도 빨간 셔츠가 어울렸지만 ‘트로이 도나휴’를 결코 따라 갈 수는 없다.
그는 「청춘은 밤이 없다」 에서 소설가를 꿈꾸는 성실한 농촌 청년역으로 출연했다. 스탠드의 불을 밝히고 창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에서 빨간 셔츠를 입은 ‘트로이 도나휴’의 모습에, 같은 남자이면서 매료되고 말았다.
나는 때때로, 더 늙기 전에 ‘트로이 도나휴’처럼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청바지에 빨간 점퍼를 입어보고 싶은 그런 충동을 느낀다.
초록과 검정
고등학교 때 겨울이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외가에 심부름을 갔었다. 외갓집엔 나하고 동갑내기 누나가 있엇는데, 마침 누나의 친구가 놀러와 있었다. 그 여학생은 검정색 코트에 연둣빛 머플러를 하고 있엇다. 그 예쁜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수줍음 많던 나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돌아왔다.
그 여학생은 내 머리 속에서 한 동안 떠나질 않았다. 나는 여학생을 다시 보려나 하고 외가를 뻔질나게 들락거렸지만 더는 볼 수 없었다. 비록 어설픈 짝사랑이었지만 그 여학생의 검정색 코트와 연둣빛 머플러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였다.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비비안 리’는 ‘크라크 케이블’에게 돈을 빌리러 가야 하는데 마땅한 옷이 없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 방의 초록색 벨벳 커튼이었다. 초록색의 드레스와 ‘비비안 리’의 검고 긴 머릿결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 드레스의 덕분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결국 돈을 빌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와 연을 맺는데 성공한다.
하양과 검정
눈이 온 다음날의 산행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계곡으로 올라가다 보면 새하얀 눈과 검은 바위는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눈 덮인 산사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까만 기와지붕 위에, 장독대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흑과 백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흑과 백」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주연 배우는 ‘토니 커티스’와 ‘시드니 포이티어’였었다. 두 사람은 백인과 흑인을 대표하는 배우들이었다. 제목에서 풍기듯 흑과 백, 인종 갈등을 다룬 영화였다. 두 사람이 하나의 수갑에 채워져 같이 행동해야 했음으로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가 너무나 선명했다. 마치 바둑판 위에 놓인 검은 돌과 하얀 돌을 연상케 했다.
“멋을 아는 사람은 검은 색 옷을 즐겨 입는다!” 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에디뜨 삐아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샹송 가수 ‘에디드 삐아프’는 애인이 사고로 죽게 되자 그 후로 검은색 옷만 입었는데 그것이 그녀를 최고의 멋쟁이로 만들어 주었다.
색의 가장 근본인 빨강 파랑 노랑, 삼원색을 혼합하면 검정색이 된다. 모든 색을 다 흡수하니 가장 멋있는 색이 되는가 보다.
첫댓글 색에 대한 조예가 깊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