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기(萬力機) / 신현식
친구가 공장 안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내가 공장에 들어섰을 때 집채만한 기계가 고장이 나서 작업이 중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이 중단되면 큰 손실이 있기에 그런 것이리라.
가까이 가서 보니 작업자들은 고장 난 기계 옆에서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다. 잠시 후, 주 회전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주위의 모든 부품들을 분해하고 축을 풀어냈다.
드디어 축이 나오자 과연 한쪽의 베어링이 망가져 완전히 엉겨 붙어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축이 회전을 못해 그 큰 기계가 멈취버린 것이었다.
새 베어링을 끼우기 위해서 눌어붙은 것을 빼내야 했다. 망치로 힘껏 치면 그냥 빠져 나오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달려들었지만 베어링은 옴싹달싹하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빠지지 않았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요것 봐라” 하며 웃던 사람들이 차츰 초조해졌다. 참다못한 한 사람이 큰 해머로 내리쳤다. 웬 일인지 그래도 빠지지 않았다.
그때 마침 외근을 나갔던 공장장이 돌아와 그 광경을 보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하다가는 자칫 축에 흠이 나던지 아니면 휘어지면 보수(補修)가 엄청 어려워지게 된다며 공장장은 부리나케 팔뚝만한 공구 하나를 들고 왔다.
그 공구는 꼭 한글의 ‘도’자 모습인데, ‘ㄷ’처럼 생긴 것은 본체요 ‘ㅗ’ 모양은 손잡이였다. 작동은 와인 오프너의 원리와 흡사했는데, 본체를 빼내려는 곳에다 걸고 손잡이를 돌리니, 나사로 된 손잡이 축이 본체의 속으로 올라가며 기계의 주축을 조금씩 밀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니 코르크 마개처럼 끼어있던 것이 쭉 빠지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혔다.
그렇게 애를 먹이던 것이 이렇게 쉽게 빠지다니……. 하도 신기하여 공구의 이름을 물어봤더니 ‘만력기(萬力機)’라 했다. 일만(一萬)사람의 몫을 한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힘을 쏟아도 해내지 못한 것을 조그마한 공구 하나가 쉽게 해치운 것이다. 그 만력기를 보며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광복은 ‘윤봉길의사’의 공이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이 국제법적으로 독립국가가 된 것은 ‘카이로 선언’이다. 2차 대전 후 일본이 부당하게 점령한 영토들의 귀속 문제를 논의한 회담이었다. 이 회담에서 만주국과 대만은 중국에 귀속시키고, 조선은 독립시킨다는 결정을 했다. 그러면 누가 조선을 독립시킨다는 조항을 넣었는가. 그것은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었다.
그는 왜 그런 조항을 넣었을까. ‘장개석’은 중국에 귀속 시킨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홍구공원에서 의거를 한 ‘윤봉길 의사’ 때문이다.
상해 임시정부는 어려움이 많았다. 김구 선생은 도움을 청할 요량으로 장개석과의 면담을 요청하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즈음 15만의 중국군이 불과 5만의 일본군에게 무참히 패배를 당한다. 이것이 상해 사변이다.
장개석 정부의 국제적 체면과 위상은 말이 아니었다. 바로 이 때에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감행하여 일본의 많은 요인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다. 일본의 콧대를 꺾어 놓은 일대의 사건이었다. 장개석은 중국군 10만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인 한 사람이 했구나 하며 태도가 돌변하여 오히려 김구 선생과의 면담을 청했고, 그 후 임시정부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 사건으로 장개석은 조선인의 강하고도 끈질긴 애국심에 호의를 가졌음이 틀림없었다. 그의 뇌리에 각인된 그 호의로 인해 우리나라가 국제법적으로 독립국가로 인정받았다는 그분의 주장에 수긍이 갔다. 지금도 몇몇 강대국이 약소국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빠지지 않고 애를 먹이던 것을 자그마한 만력기가 쉽게 빼내듯이 만인(萬人)이 달려들어도 하지 못할 일을 ‘윤봉길 의사’ 한 분이 한 것이다.
이처럼 만 사람의 몫을 하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지혜가 영민하거나 지략이 뛰어나거나 심신이 강건하거나 덕망이 높은 사람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분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받는다. 이런 분들의 희생으로 이 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 있고 머지않아 일류국가가 될 것이 틀림없다.
대견한 만력기(萬力機)를 내려다보며 나는 과연 몇 사람의 몫이나 했을가를 생각해 보았다. 열 사람 몫은 고사하고 내 한 몫도 옳게 해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만력기에다 경례라도 붙이고 싶었다.
첫댓글 만력기란 공구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공적도 새롭게 부각시키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