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고양이들/ 신현식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 퇴근 무렵, 우리가 가는 길의 반대편에서 자동차들이 무더기로 달려왔다. 시 외곽에서 시내 쪽으로 이어지는 자동차들의 물결은 전시를 방불케 했다. 전쟁은 아닐테고, 공단지역도 아닌데 무슨 자동차가 이리도 많은가.
매제(妹弟)가 바람도 쐬고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여 외곽지역의 음식점으로 가다가 만난 놀라운 광경이었다. 매제는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부근 스크린 경마장의 폐장 시간이라 고객들이 한꺼번에 집으로 돌아가는 현상이라 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이 이렇게 많았던 것이다. 기가 막힌 현상이었다.
「21」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MIT대학의 수학과의 수재 학생들과 교수가 한패가 되어 수없이 반복되는 훈련을 한 뒤 라스베가스 도박장에 가서 거금을 따는 영화였다.
카드게임은 확률로 하는 게임이다. 몇 사람이 서로 짜고 사인을 하여 자신이 가진 패를 중심인물에게 알려준다. 그 중심인물을 경쟁자의 패를 짐작하여 판돈을 거는 것이다. 그들은 원체 머리가 좋은 수재들이라 거액을 손에 쥐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몇 번의 성공도 모니터를 주시하는 도박장 관리인들에 의해 들키고 만다. 그들이 보내는 수신호를 보고 눈치를 챈 것이다. 물론 그들은 참담한 결말을 맞게 된다.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 하니 설득력이 높다.
영화를 보며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합심을 해도 도박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요행히 돈을 따더라도 그것이 오래 가지 않을 뿐더러 불법인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도박도 여러 가지가 있다. 화투, 카드, 마작이 있고, 슬롯머신, 일본식 구슬치기가 있다.그 외에 경마, 경륜, 투견, 소싸움, 닭싸움 등 갖가지 도박들이 성행한다. 요즘은 인터넷 도박까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이런 도박들의 특성은 우선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운만 따라준다면 일확천금을 얻는다고 믿는다. 때문에 너도나도 덤빈다.
도박에 빠지는 사람은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상대가 사람이든 기계이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는 자신에겐 늘 행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고도 덤비고 또 덤비는 것이다. 그것이 되풀이 되다 보면 돈을 잃게 마련이고 원상 복구를 하겠다며 매달리다 결국 중독되고 만다.
친구 중에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사람이 있다. 승부 근성을 타고 났는지 그는 내기를 그렇게도 좋아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비참한 지경에 이른 것은 불문가지이다.
돌아가신 숙부님도 도박으로 패가망신했다. 모두가 부러워 할 위치에 있던 숙부님은 어쩌다 도박에 빠졌다. 사기 도박꾼들에게 둘러싸인 것이다. 숙부님은 전 재산을 다 털리고 난 후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 야반도주하여 우리 집으로 왔었다. 숙부님은 피눈물을 흘리며 여생을 보냈다. 아버지를 잘못 만난 자식들도 온갖 풍파를 겪어야만 했다.
나도 약간의 도박경험이 있다. 슬롯머신에 빠진 적이 있었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여서 호주머니에 많은 돈이 있었다. 거래처 접대를 하느라 맛을 보게 되었다.
처음 시작한 그날 큰돈을 손에 쥐었다.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었다. 이렇게 쉬운 것이 있는가 싶었다. 슬슬 빠져 들었다. 슬롯머신은 어떤 그림이 나온 다음에는 꼭 큰 것 한방을 터뜨린다는 속설이 난무했다. 그러나 다 낭설일 뿐이었다. 잃을 게 뻔하다는 것을 알고는 손을 떼었다.
친구들과 고스톱도 조금은 쳤다. 그런데 나는 늘 잃기만 했다. 명석하지 못한 두뇌 탓이었다. 돈 잃고 기분 좋은 사람도 있던가. 도박 때문에 가까운 사람과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할까 하는 생각에 손을 털었다.
도박은 천재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행운도 어쩌다 한번에 그친다는 것도 영화 「21」이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또 도박 업자는 행운을 바라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교묘한 덫을 쳐 놓고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덫에 걸린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면 그 덫마저도 자신은 뚫을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짐승인 고양이도 약 먹은 쥐 곁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는데, 얼빠진 고양이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