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이 초청한 시인_ 박우담 신작시>
시간
박우담
수업 종이 울린다.
누구도 암흑의 시월이 올 줄 몰랐지.
미술 시간은
그 시절 제일 난처한 시간이었지.
스케치북 없어 교실 뒤편에 통금시간처럼
앉아 있던 미술 시간
선생님은 수업 시작과 동시에 준비물
검사를 했지. 눈 지그시 감고 생각하면
예닐곱 명은 대 뿌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지.
선생님은 한쪽 손으로 늘 때렸지.
우리는 원 밖에 있었고 선생님의 한 손은 늘
바지 속에 있었지.
후끈거리는 손으로 짝지와 장난을 쳤지.
주로 육성회비 못 낸 얘들
사정없이 없는 돈 가지러 집에 보냈지.
아무도 없는 집
가져올 돈 없는 집에 있다가
미안하고 미안해서 며칠 수업과
헛돌고 있었지. 시월의 호각 소리에
골목으로 뛰어드는 아이들도 교사들도
무기력했지. 준비물과 육성회비 때문에
늘 원밖에 머물렀지. 그래도 아이들은
알고 있었지. 암흑 속 도드라지는 건
군화와 표어라고 당신의 무기력한 손도
늘 원 밖에 있다고
그러기에 아이들은 아무런 반항 없이
미술 시간에 암흑과 원이라는 걸
배웠지. 지금 내 손바닥을
붉게 때리네. 갈까마귀 울음 같은
검은 종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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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이 초청한 시인_박우담 대표시>
네안데르탈 11
― 시간의 목덜미
박우담
나는 시간의 목덜미를 알고 있다
그것은 북극성과 북두칠성 사이에 있다
시간은
상반신이 염소이고
하반신이 물고기인
판의
아버지의 아버지
나는 아직도 필봉산 언저리 학교에서
공을
차는
마지막 네안데르탈인
축구화 끈을 묶고
운석을
차 올리듯
시간의 축구공을 우주로 차올린다
뻥
뻥
뻥
뻥
차올린다
수염이 흰 염소들이
담벼락
밑에서
풀을 뜯고 있다
오늘 밤
시간의 목덜미 같은 백무동 계곡 아래로
별사탕 같은 운석들이
쉬익
쉬익
쉬익
쉬익
떨어질 것이다
박우담 시인
2004년 《시사사》 등단
시집 『계절의 문양』 외 다수
카페 게시글
신작시
2023년도 『시와 편견』 여름호(vol.26) 시편이 초청한 박우담 시인- 신작시,대표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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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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