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나무와 배나무
예순한살의 아버지가 진흙을 발라 돌배나무에 접을 붙이고 있었다
얼굴은 잊혀지고 그 옛사람의 그림자만 남았다
사마귀 대가리처럼 치켜 오르던 꽃들의 잔치도 무덤덤해졌다
내 마음도 먹줄을 퉁긴 듯 고요해졌다
그러나,
사소한 후일담도 없이 돌배나무는 배나무로!
- 문태준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중에서
얼굴은 잊혀지고 그 옛사람의 그림자만 남았다.
이 문장이 가슴에 계속 맴돌았다. 실체를 찾아 허우적대는 듯한, 연기 속을 하여없이 헤치는 듯한, 근래 내 심정이 대입되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사소한 후일담 없이 돌배나무는 배나무로!
이 시를 해석하기 위해 거듭해서 몇 번 읽어보았는데, 그러다 문득 와닿은 게 있다. 예순한살의 아버지와 돌배나무가 같은 말이라는 느낌이었다.
그걸 느끼고 보니, 이 시가 노래하는 게 이별의 여운인 것만 같았다. 좀 더 나아가서는, 어쩌면 죽음을 노래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달콤한 행복과, 씁쓸한 뒷맛.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겹겹이 쌓여만 가는 이별의 씁쓸함을, 나는 이 시에서 읽어내었다.
이렇게 떠올리고서 다시 읽어보면, 예순한살의 아버지가 돌배나무에 접을 붙이는 모습 또한 씁쓸한 추억처럼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