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思慮)/ 신현식
“동인(同人)이 없는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었다. 지난 송년문학제에서 한 내빈의 축사에서 나온 말이다. 문학의 길이 멀고도 멀기에 그런 말이 나왔으리라.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신이 만든 어떤 것」이라는 영화가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로비에 초상화가 걸려 있는 ‘알프레도 브레이락’과 ‘토마스 비비앙’이라는 두 외과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 다 설립자와 나란히 초상화가 걸려 있으니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브레이락’은 사상 최초로 심장수술을 한 공로였고, ‘비비앙’도 의학계에 끼친 지대한 공로였다. 영화는 그런 영광이 있기까지의 과정과 갈등을 그리고 있다.
흑인 청년 ‘비비앙’은 지방의 한 의학 연구소에 잡역부로 취직을 한다. 그곳은 닥터 ‘브레이락’이 동물을 이용한 외과 수술을 실험하는 곳이다. 그의 일은 실험용 동물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는 틈틈이 책을 읽으며 수술에 대한 호기심을 보인다. ‘브레이락’이 대견해 하며 그를 실험실의 보조로 삼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몇 년 후, ‘브레이락’은 존스 홉킨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에 된다. ‘비비앙’도 함께 가지만 박봉인지라 도시 생활은 오히려 어려워진다. 시골로 돌아가자는 아내와 자주 다투게 된 ‘비비앙’은 자신의 직급이 실험실 보조가 아닌 잡역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브레이락’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비비앙’의 급료나 생활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학교의 규정에 맡길 뿐이다. 참다 못한 ‘비비앙’이 사표를 내자 그제야 처우 개선에 나선다.
다시 연구에 매달린 두 사람은 선천성심장병을 과제(課題)로 정한다. 학계(學界)에선 불가능한 수술이라 하지만, ‘비비앙’은 혈관을 우회시키는 아이디어를 내고 수술용 기구도 개발한다. 그들은 마침내 동물 실험에 성공을 한다.
때마침 생명이 경각에 달인 어린 환자가 있어 ‘브레이락’은 곧바로 수술을 해야 하는데 불안에 떤다. 결국 병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비앙’과 함께한다. 오죽하면 의사도 아니고, 흑인이어서 뒷문으로 출입해야만 하는 그와 함께 집도를 했을까.
수술은 성공하여 죽어가던 어린애가 살아나자 세계가 깜짝 놀란다. ‘브레이락’은 학계나 매스컴에 대서특필 되며 마침내 명예의 전당에 초상화가 걸린다. 그러나 ‘비비앙’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이 없고 오히려 엉뚱한 의사들만 거론할 뿐이다.
‘비비앙’은 분함을 참지 못한다. ‘브레이락’ 없이도 출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의약품 외판(外販)을 하며 의과대학을 가려한다. 그러나 그것도 벽에 부딪치고, 외판 또한 자신에 맞지 않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낀다. 지켜보던 아내가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한다.
‘비비앙’은 자존심을 버리고 ‘브레이락’을 찾아간다. 자신에겐 연구소의 일이 가장 잘 맞는 것 같다고 한다. ‘브레이락’은 두 말 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얼마 후, 지병이 있던 ‘브레이락’은 유명(幽明)을 달리하고, 무던히 실험을 주관하던 ‘비비안’은 마침내 존슨 홉킨스 대학의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브레이락’과 나란히 초상화까지 걸리게 된다.
영화의 막바지, ‘비비앙’이 학위를 받는 연설에서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친구에게도 감사드린다.”라고 한다. 유명을 달리한 ‘브레이락’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의사도 아닌, 더구나 흑인인 자신이 오늘에 이른 것은 그래도 ‘브레이락’ 덕분이라 생각한다.
사람이란 대체로 자기중심적이다. 도량이 어지간히 넓지 않고서는 상대를 배려하기가 쉽지 않고, 그 반면 사소한 일에는 쉬 서운함을 느낀다. 선인들 말씀에 태산 같은 은혜를 입었어도 바늘 같은 서운함에 돌아 선다고 하지 않던가.
무시를 당하거나 공(功)을 알아주지 않으면 분하고 억울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삭여야 한다. 심경의 동요로 판단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는 억울한 판정을 받더라도 그것을 빨리 잊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억울하고 섭섭한 일도, 세월이 지나면 ‘허허’ 웃게 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그런데 이런 섭섭하고 억울한 일들은 단체나 직장이나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흔히 일어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이 일더라도 지그시 누르고 가던 길을 계속 가고자 했던 곳까지 모두 갈 수 있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에 뜻을 같이 했던 문우들 얼굴이 아슴아슴 떠올랐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태산 같은 은혜를 입었어도 바늘 같은 서운함에 돌아 선다고 하는 말에 공감합니다.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