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누이들의 발길을 따돌려 나는 성황당 지나 긴 밤길의 긴 방죽을 오랜 세월 걸어가니
새는 내 머리맡을 돌다 깊은 산으로 사라졌다
움막으로 노파가 들어가듯
검은 밤나무 가지에 부엉이가 밤톨처럼 내려앉듯
누군가 나를 부엉이 눈 속으로 데려가리라 믿었으나
귀살쩍은 나에게 추파를 던질 뿐
어린 왜가리만 움짝달싹 못해 밤 이슥하도록 공중에 걸려 있었다
허공에서 쩔쩔매는 저 저울질
별이 다 땅으로 내리기 전 캄캄한 풀들을 묶기도 하며
바람에 무동타고 꼭 산 아니라도 가고 싶었던 곳
- 문태준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중에서
어린이에게는 자신만의 세상이 있지 않은가. 이 시 속에서는 누이들의 발길을 따돌리고 간 어두컴컴한 공간이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세상에서는 머리 위를 빙빙 돌다 저 산 그림자로 사라지는 새도 있고, 신비로운 어둠 속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부엉이도 있었다.
그 부엉이의 눈을 바라보며, 마치 자신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고 텅 빈 공간에 그런 마음만이 남는다.
그리고 오직 어린 왜가리만이 움짝달삭 못해 밤 하늘에 걸려있다는 부분에서는, 이 어린 왜가리가 바로 어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람에 무동타고 꼭 산 아니라도 가고 싶은 곳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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