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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가라, 뻐꾹
강병철(소설가)
집에서 키우던 꿀벌 떼에게 벌침 폭탄을 당하고 얼굴이 찐빵처럼 우툴두툴 부풀었던 사연이 있다. 그것도 즈이 집에서 키우던 꿀벌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가 거꾸로 공격을 당했으니 어이없는 사태이다. 그랬다. 아버지 성 선생은 읍내 서점에서 영농백과사전 중고판 세트를 통째로 구하더니 독서에 빠지기 시작했다. 달포 가량 탐독하며 완전히 독파한 다음 읍내에서 구해온 꿀벌 두 통을 뒤란에 올려놓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꿈으로 풍선처럼 팽팽하던 즈음이다.
양봉 작업 석 달 만에 한 통의 꿀벌들이 통째로 사라지면서 키우던 꿈도 절반이 뚝 잘라져 나간 것이다. 어느 날인가, 여왕벌이 먼저 꽃향기에 바람나듯 날아가더니 나머지 일벌들이 우르르 꽁지를 좇아가면서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이다. 어느 날 그야말로 무심하게 뒤란에 들어갔다가 벌통 하나가 순간적으로 텅 비어버린 게 눈에 띄었다. ‘이게 뭔 사태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라도 살려야 했다. 눈앞이 아찔했지만 성 선생은 금세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여, 나머지 한 통만이라도 반드시 살려야 한다며 애지중지 키울 다짐으로 가슴 다독이던 즈음이다. 둘째 아들 강철이도 부친의 애지중지 심정에 적극 동참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벌통 옆을 기웃거리다가 그 벌 떼들에게 집단 몰빵을 맞고 하마터면 비명횡사할 뻔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강철이가 학교에서 막 돌아온 아홉 살 늦봄 오후 즈음일 것이다. 아, 뒤란에서 말벌들과 꿀벌들의 무시무시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열댓 마리쯤 되는 야생의 말벌 무리가 강철이네 꿀벌 통을 초토화 낼 작심으로 쳐들어왔으니 실제 전쟁처럼 대포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꿀벌들 역시 만만하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말벌들의 날갯짓 고리가 들리자마자 즉각 비상을 선포하면서 멀리 날아갔던 벌들까지 오그르르 모여들었다. 하여, 날개와 날개를 고리처럼 촘촘히 연결시키며 적들이 들어올 틈새 전체를 원천 봉쇄한 것이다. 적들로부터 식량과 진지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세에 혼신으로 집중하며 매운 침을 겨누는 중이었다.
말벌 몇 마리가 정찰하듯 벌통 가까이 날아와 빙빙 돌 때마다 꿀벌이 수십 마리씩 쏜살같이 달려들어 쏘아댈 자세를 취했으니 어지간한 저항이다. 그러나 말벌이 한번 부웅 소리로 후닥탁 날개 칠 때마다 멀쩡하던 꿀벌이 대여섯 마리씩 뻥뻥 나가떨어졌으니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안타깝다. 두근두근 지켜보던 강철이의 손등이 진땀으로 흥건하게 젖기 시작했다. 마침내 싸리비를 들고 뛰쳐나가 말벌들을 후려치기 시작했으니 주인의식의 책임감이다. 그러다가 빗자루 사이에 걸려 바닥에 떨어진 말벌 하나를 ‘밟아 죽여야겠다.’ 하며 신발 밑창으로 짓이기려 발바닥을 번쩍 올리다가.
“악!”
하필 빗자루 사이로 꿈틀꿈틀 빠져나온 왕초 말벌 하나에게 종아리를 찔린 것이다. 그랬다. 충격이 너무 커서 숨이 막혀 죽는 줄만 알았다. 처음에는 고무신 밑바닥이 쑤시는가 싶더니 복숭아뼈가 송곳에 찔린 듯 후끈 달아올랐다. 강철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발버둥 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엉뚱하게 꿀벌 수십 마리가 주인의 얼굴에 달려들어 매운 침으로 마구 찍어대는 것이다. 화들짝 놀란 강철이가 ‘나는 느이 편이야’ 하고 소리칠 틈도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호미를 빌리러 온 눈사람 아줌마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6.25때 포탄을 맞아 얼굴이 날았다는 눈사람 아줌마는 얼핏 흉하게 보이긴 하지만 가슴이 천사처럼 착한 사람이라는 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안다. 언젠가 딱 한 번이지만 노래를 듣기도 했는데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윤석중 선생님이 작사한「달 따러 가자」는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로 시작되어 ‘순이 엄마 방에다가 달아드리자’로 끝이 나는 정겨운 가사이다. 대롱처럼 작은 입에서 피리 소리 같은 음이 애절하게 흐르는 것이다. 강철이는 그때 동요를 들으면서 눈물이 줄줄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 아줌마에 대한 사연은 나중에 따로 해야 할 이야기이지만,
열두 살 때인가, 세 살 사애 동생을 업고 진둠벙 오솔길로 도망치는 중이었단다. 6.25 전쟁의 공포는 비행기 소음에서부터 시작되었던가, 전투기 소리만 터지면 마을 사람 모두 방공호나 생강굴로 몸을 피하라고 전달도 받았던 상태이다. 검바위 위로 기관총 소리와 동시에 언덕이 무너지면서 가문비나무 둥치가 쓰러졌다. 까무륵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니 한나절이 지났더란다. 아, 업힌 아기의 등에 구멍이 뚫렸다고 했다. 너무 놀라 얼굴을 감싸는 찰나 자신의 볼에 붙은 살점이 너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줌마 사연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지금은 강철이가 벌들만 나타나면 벌벌 떠는 버릇이 새롭게 생겼다는 이야기인데.
그 후부터 벌떼들의 날갯짓 소리가 소름 끼치게 무서워진 것이다. 일단 집단 공격이 시작되면 절대로 몸을 사리는 법이 없는 곤충의 습(習)이 너무 두렵다. 그러니까 집단이나 종(種)이 다른 벌들끼리 싸울 때도 그렇고 아니면 동물들과 전투를 벌여도 침을 꽂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집념의 속성인 것이다. 무심하게 지나가던 사람들도 여차하면 봉변을 당하게 되니 숲속을 거닐 때는 옷바시 벌집을 더욱 조심조심 살펴야 한다.
마찬가지이다. 늑대나 하이에나, 심지어 밀림의 왕자 사자가 나타나더라도 벌들은 전혀 겁을 먹지 않는다.벌집 가까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찰나부터 날개를 부르르 곧추세우며 틈입자를 향한 경계의 기(氣)싸움을 한판을 벌인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집중 달려들면서 한꺼번에 매운 침 세례를 파드득파드득 퍼부으니 그게 목숨을 건 ‘벌들의 결투’이다.
꿀벌은 침을 쏘는 순간 자기도 죽는단다. 벌침 한 방에 혼신의 기력을 다 쏟으므로 쏘는 동시에 침끝과 연결된 내장도 함께 빠져나오면서 장 파열로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맞는 말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말벌은 꿀벌들과 몸의 구조가 다르다는 얘기만큼은 맞는 것 같다. 적군을 향해 침을 쏘더라도 침과 창자가 분리되어 내장이 딸려 나오지 않으니 자기 손상이 약하다는 것이다. 말벌 떼가 자기 몸의 그 구조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용감하게 싸운다는 동네 어른들의 얘기를 분명히 믿는다.
그랬다. 말벌은 황소건 비단뱀이건 얼룩말이건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무조건 맞붙어 전투 모드에 돌입하는 특성이 있다. 특히 인간처럼 털이 없는 맨살 동물들을 가장 만만하게 본다. 털 없는 동물들은 쏘는 순간 퉁퉁 부으면서 데굴데굴 뒹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말벌 집 앞에서는 아무리 간덩이 부은 상남자 사내들도 함부로 다가서지 못한다.
딱 하나, 한머리 관모네 형제가 벌집 앞에서 겁이 없어지는 게 도대체 특이한 현상이다. 청금산 말벌 소탕에 나섰다가 오른손이 퉁퉁 부은 날도 그들 형제만큼은 그리도 용감했었다. 처음에 아카시아 나무 아래로 날개 치는 말벌 한 마리를 건드리다가 손바닥이 퉁퉁 붓게 쏘였을 때도 그랬다. ‘허쭈, 아픈디.’ 하며 찡그리기는 했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혀 그 순간 또 다시 날아오는 한 마리를 향해 고무신 든 왼손으로 냅다 훽 후려치는 것이다. 말벌들도 전혀 포기하지 않았으니 막상막하의 대결이다. 고무신 안창에 생포된 말벌을 잡으려는 순간 나타난 또 한 마리의 구원병 말벌이 나타나 다시 관모의 왼손을 찔렀기 때문에 나머지 손마저 불룩하게 부어올랐다. 그래도 관모는 지치지 않았다. 퉁퉁 부은 손목으로도 나머지 신발짝을 휘두르며 쫓아다니는 걸 보면 철판 뱃심이다. 특히 관수 형님은.
“왕텡이 말부리를 잡으야 지구가 산다.”
벌을 잡은 이유가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라니 어리둥절한 노릇이다. 관수 형님은 가끔 그렇게 생뚱한 소리를 진리처럼 던지곤 했으나 어린 강철이로서는 말싸움을 이길 능력이 도저히 없으므로 무조건 듣기만 할 수밖에 없는데.
“인도 같은 나라이선 메뚜기 떼가 구름처럼 습격헤서 부락 전체를 초토화 시킹 거 알징? 그냥 마을이 아니라 면사무소 있는 동네 몇 개가 전부 개박살 났다잖남.”
강철이도『소년중앙』의 ‘와- 세상에 이런 일이’ 코너에서 보았던 내용이므로 그 정도 상식과 정보는 알고 있었으나 일단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여주긴 했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네팔 같은 나라에서 일어난 사태인데 관수 형님은 네팔이나 아프카니스탄 같은 중앙아시아까지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나라 이름은 몰르징?’ 하고 꼬치꼬치 따졌다간 대번에 꿀밤이나 한두 대 더 맞게 되므로 일단 꼬리를 감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꺼번에 수백만 마리의 메뚜기 떼가 논두렁 밭두렁으로 스칠 때마다 그 동네의 농작물들이 초토화된다니 그건 진짜 상상조차 무시무시한 일이다. 전혀 무섭지 않던 메뚜기 떼의 습격 한 방으로 몇 개 마을이 날아가면서 주민들 모두 알거지가 된단다. 강철이가 고개를 흔들며 벌벌 떠는 표정을 짓자 관수 형님이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그보다 무서운 게 메뚜기가 아니라 말벌이랑께. 말벌 떼 수백만 마리가 습격헌다구 생각을 헤보라구. 무샵징? 쬐그맣고 어린 얼라야.”
소름이 오싹 끼치며 사시나무처럼 와들와들 떠는 게 너무 당연하다. 숫자를 너무 크게 부른 탓도 있다.수십 마리나 수백 마리, 아니, 열 배 백 배를 튀겨서 수천 마리나 수만 마리도 아니고 곱하기 백 배인 수백만 마리 플러스 열 배인 수천만 마리라니 상상할 엄두도 나지 않는 어이상실이다. 하긴 대한민국 국민이 삼천만이 넘으니 곤충이라고 민족 전체의 숫자만큼 모이지 말란 법은 없다. 문제는 그놈들의 엄청난 대규모 습격 장면을 떠올릴 상상조차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메뚜기처럼 날개만 파닥이는 게 아니라 닥치는 대로 침을 쏘아대니 사람이고 가축이고 울퉁불퉁 불어 터져 죽을 게 틀림없다. 강철이가 머리를 짜내며.
“매미채룬 감당 안되겄지, 유?”
“예라.짜샤.”
하긴, 막대기 위에 철사를 동그랗게 만들어 그 사이에 거미줄을 친 그 매미채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긴 하다. 꿀밤 한 대 정도야 가볍게 맞아준 다음.
“발동기루 연결시켜 농약 호스를 겨눠 쏴대먼 워떨까?”
“조준헤서 쏴야 허는디 맞출 수 있간디. 납작 엎드린 순간 수천 마리가 달려들어 쏴대먼 머리 전체가 대번에 울퉁불퉁 분화구모냥 터질 텐디. 너 같으먼 겁두 읎이 뎀비겄니? 감당이나 되남?”
“안.”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수십, 수백 마리도 무시무시한데 수천 마리나 수만 마리가 아닌 수천만 마리가 침입한다면 인간이 곤충을 이긴다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 재수 나쁘면 그 모든 말벌들이 나 하나만 집중해서 공격할 수도 있다.
상수리나무 보(堡)는 그 동네 한머리에서는 무시무시한 장수말벌이 가장 득실득실한 소굴로 소문이 난 곳이다. 삼월에는 그냥 옻나무 근방에서 한두 마리가 날개를 치는 것 같았는데 초여름이 되면서 수백 마리의 말벌 군단이 모여든 것이다. 그래서 조무래기들은 옻나무 아래 원추리도 꺾지 못하고 산딸기도 따 먹지 못한다. 그런데 관수 형님이 나타나 벌집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것이다.
한 살 많은 동급생 관모의 바로 위의 친형으로 작년에 중학교에 입학했으니 열다섯 살이다. 얼굴에 콧수염이 나고 여드름까지 듬성듬성 생겼으니 재작년부터 조무래기들과는 놀지 않는다. 머지않아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오뉴월에는 모내기 논두렁에 뛰어들어 팔을 걷고 농사일을 거들 때는 완전한 어른 상일꾼의 포즈로 변신한다. 그러다가 동네 청년 틈에 섞여 막걸리도 얻어 마시고 더러는 다리 밑에 숨어 담배까지 피우니 그게 어른이 되는 코스 점검이리라. 조무래기 아이들이 옆에서 구경하면 일부러 담배 연기를 동그랗게 불어 허공에 폴폴 날리며.
“뎅그랑 도나스여. 으뗘? 멋있고 맛있게 생겼지?”
그 소리에 맞춰 손가락으로 연기 구멍 사이를 콕콕 찌르는 시늉도 한다. 또 하나, 관수 형님이 중학생이 되면서 자꾸 상남자 성미로 바뀐 것이다. 예전에는 조무래기들과 오징어 놀이나 진도리도 함께 했는데 언제부터였나,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더 성미가 급해진 것 같다.
지난 이른 봄 하굣길 참나무 보(堡)아래에서 관수 형님한테 각각 꿀밤 한 대씩 맞은 적이 있다. 관모가 성안벌 강철이네 밭 꼭대기부터 보리를 밟고 다니기에 얼떨결에 밀어낸 게 싸움의 시초이다. 원래 3월 초순에 보리밟기라는 걸 잠깐 하는 경우가 있지만 관모처럼 팍팍 밟아 짓이기는 게 아니라 조근조근 신발을 대긴 하되 닿을 듯 말 듯 아주 살짝 밟아주는 것이다. 강철이가 깜짝 놀라.
“허지 마!”
“임마. 춘삼월 보리는 원래 밟어줘야 더 잘 크능 거여. 알간디 모르간디? 알지두 못하먼서 웨 기차 화통 터지는 소리여?”
한머리 아이들 모두 기차를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기차 화통 소리란 걸 들어보지는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이는 아까부터 애가 타서.
“우리 보리가 허리 아프다구 비명 지른당께. 밟구 싶으먼 느이 밭이나 아작아작 밟어 대가리부터 아작을 내놓으랑께.”
소리치며 슬쩍 민 것 같은데 관모의 몸이 하필 퇴비장 쪽으로 몸이 기운 것이다. 관모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바닥을 허공에 팔랑팔랑 흔드는 바람에 몸이 옆으로 쏠리면서 오히려 균형을 잃은 것이다. 퇴비장 쪽으로 더 세게 뒹굴며 소먀 한쪽이 파묻히는 사달이 되었다. 소매 끝의 퇴비 냄새를 킁킁 맡아보다가.
“시캿, 보리가 셋바닥이 있냐구? 사람모냥 비명을 질르게.”
어깨에 묻은 흙을 툴툴 털자마자 대뜸 강철이의 머리를 먼저 쥐어박았다. 동급생인 관모는 교실에서도 덩치가 크고 몸이 빨라 반에서 학기 초부터 3짱의 위력을 굳힌 상태였고 강철이는 성정이 약해 공격성이 없는 체질이다. 예전처럼 한 대 정도 슬쩍 맞아준 다음 피했으면 끝이 났을 텐데 하필 그날따라 마음이 울컥했던 게 문제이다. 강철이가 허리를 숙여 정강이 밑으로 파고들면서 싸움이 되었다. 관모가 위에서 찍어 누른 상태에서 팔꿈치로 등허리를 납작 밀었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할 맞짱 싸움이 되었다.
힘이 밀리는 아이는 상대의 밑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엎드리자마자 한 손으로 재빨리 왼쪽 다리를 잡아당기는 동시에 발로 오른쪽 다리를 꽈배기처럼 건 채 몸으로 밀어 보았다. 넘어질 듯하던 몸이 살구나무에 걸치면서 소강상태로 엎치락뒤치락 상태가 되었다. 아무래도 관모가 더 크고 몸이 빠르므로 이미 강철이가 두어 대 더 맞은 상태였다. 어차피 싸워도 이길 기미가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아픈 것도 아니었다. 강철이도 그 정도는 안다. 싸울 때 맞는 매는 별로 아픈 느낌이 없다는 것을. 그래도 그만 싸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이리 왓!”
억새 덤불 사이로 고슴도치 머리칼의 사내 하나가 마침 고개를 쑤욱 내밀면서 싸움이 끝났으니 조금은 다행인 면도 있다. 관수 형님이 나타난 것이다.천수만 거문여에서 망둥이 낚시를 다녀오는 길인 것 같다. 관수 형님이 꼬맹이 두 명을 불러 살구나무 쪽에 차렷 자세로 세워놓더니 낚싯대를 내려놓는다. 싸움 경위를 대충 묻더니 인상을 팍 쓰며.
“열중쉬엇!”
중학생 선배의 시큰둥한 명령 한마디에 조무래기 두 명 모두 갑자기 바싹 얼어붙는다.
“차렷!”
꼬맹이들이 다시‘갓 작대기를 달은 이등병’처럼 부동자세로‘차렷’과‘쉬어’를 반복하며 발바닥을 땅에 퉁퉁 구르며 부동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그렇게 사춘기 형님은 나무 등걸에 기댄 채 다시 느긋하게 담배 연기를 날리는 중이다. 조무래기 둘이 그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와들와들 떨고 있지만 기실 강철이가 더 많이 떨고 있는 게 확실하다.
“짜샤. 이웃끼리 자꾸 싸우닝께 대한민국의 남북통일이 안 되능 거여. 그려? 안 그려?”
그 말이 얼핏 맞는 것도 같아 강철이가 먼저.
“맞습니다.”
큰 목소리로 대답하자 관모도 고개를 끄떡거렸다. 이웃끼리 싸우니 남북 민족끼리도 싸운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긴 하다.
“남북통일이 안 되먼 그게 동족상정의 비극이여.”
동족상정이 아니라 동족상쟁(同族相爭)이라고 국어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지만 차마 대꾸하지는 못한다. 관수 형님이 손가락 사이에 끼워놓던 담배꽁초를 툭 던지더니 고무신 밑바닥으로 자근자근 비벼끄며.
“앞으루 동무덜찌리 사이좋게 지내라는 의미루 두 대씩 공정허게 때릴 텡께 담부턴 서루 화해를 혀. 만나먼 서루 먼저 방긋 웃으먼서 ‘재건헙시닷’ 인사버텀 허구 어깨동무루 사이좋게 댕기란 말이얏. 그 의미루 두 대씩이다. 불만 있남?”
5.16 군사정변 직후 학교에서도 경례 구호가 ‘안녕하세요’에서 ‘재건합시다’로 바뀐 직후이다. 이번에도 강철이가 먼저 재빨리.
“읎습니닷!”
평소에는 반말도 가끔 섞어서 주고받던 관수 형님이지만 처벌받을 때만큼은 군대식 존댓말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공정하지는 않았다. 똑같이 두 대씩 때린 것까지는 맞긴 하지만 그의 친동생 관모한테는 호오호 어루만지듯 쥐어박은 것이다. 그러다가 강철이한테 돌아서더니 악마의 표정으로 엄청 아프게 빡빡 때렸으니 전혀 공정한 벌칙이 아니다. 그렇게 비겁하게 판정을 내렸지만 지금으로선 아무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보았다. 강철이가 훌쩍훌쩍 울면서 슬쩍 곁눈질했을 때 비싯비싯 웃는 관모의 입술을 분명히 보았다. 그뿐이었다. 쬐끔 억울하긴 했지만 꿀밤 정도야 시간이 지나면 금세 아물었으므로 아무 일도 없었던 셈이다.
그 관수 형님 때문에 말벌 떼에게 와장찰 쏘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보름 전인가, 바다로 가는 언덕바지에 숨겨진 그 말벌 떼 소굴 앞을 지나는 중이었는데. 마침 참나무 보(堡)옆에서 담배 연기 날리던 관수 형님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부르기에 다가갔더니.
“말부리떼가 젤루 무서워허능 게 뭔지 아니?”
“……?”
대답을 못하며 쭈삣쭈삣 해당화 빨간 꽃망울만 바라보는데.
“조류(鳥類)여. 새 떼.”
그 말이 맞을 것도 같았다. 사자나 늑대가 아무리 이빨이 날카롭고 몸이 빨라도 허공이 떠 있는 말벌을 잡아챌 수는 없다. 그러나 새들은 하늘을 날 수 있으며 벌보다 날갯짓 속도가 빠르다. 게다가 날카로운 부리에 비하면 벌침은 굵기나 강도에서 훨씬 허약하다. 그러니 공중전에서 곤충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관수 형님이 다시.
“그중에서 말벌이 젤루 무서워허능 게 바루 뻐꾸기여.”
이상하다. 새 중에서 특히 뻐꾸기는 온순하게 느껴지는 조류라서 무서운 거와는 당최 거리가 먼데, 하며 갸우뚱하자.
“뻐꾸기가 그걸 백 마리씩 먹어치워야 되는 이유가 있거덩. 자, 자세히 얘기헤줄껭.”
강철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고개부터 끄떡거리는데.
“불떼가 나타나더라두 언능 내빼지 말랑께. 두 눈 부릅뜨꾸 ‘뻐꾹뻐꾹’ 소리만 내먼 그대루 퇴치되능 게 ‘벌들의 법칙’이여. 내가 헤봐서 잘 알어.”
‘아,벌들의 법칙’
강철이가 순간적으로 탄성을 지른 건 ‘벌들의 법칙’이란 말이 아주 부드럽고 멋지게 들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고개를 끄떡거리느라 관수 형님의 양 입술 꼬리가 위쪽으로‘피식’올라가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말벌 꼬랑지가 고단백질이라 뻐꾸기 먹이룬 최고여. 뻐꾸기가 그걸 백 마리째 먹어 치우먼 붕새가 되능 거여.”
‘붕새?’, 그건 생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참새나 제비, 펭귄, 뻐꾸기 그리고 사납기로 소문난 송골매나 산지니 혹은 독수리까지는 머리에 딱 떠오르고 5학년들의 생물도감을 펼치면 금세 나오지만 붕새는 금시초문이었으므로.
“붕새가 뭐댜유?”
“그렁께 배우란 말여, 짜샤. 에또, 붕새란 6개월 동안 구만리를 날아다닌당께 엄칭이 큰 새인디, 날갤 열댓 번 튕기먼 파도가 백오십 리를 출렁출렁 친다닝께. 으떠냐?”
“날갯짓 한 방으루 파도가 예서버텀 당진까지 갈 만큼 출렁출렁 튕긴다구윳?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감?”
되묻긴 했지만 강철이도 속으로는.
‘붕새처럼 튼튼해지고 싶다.’
그런 결심이 간당간당 굳어졌으니 솔깃했던 셈이다. 게다가 관수 형의 진지해 보이는 표정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된 건.
“몸이 독수리모냥 빨라지는 동시에 종아리 근육이 코끼리 가죽모냥 딱딱헤지는 거여. 그 뻐꾸기란 애들이 말벌을 잡으러 숑방숑방 날아댕기니 왕텡이 말벌덜두 뻐꾸기 울음소리만 들리먼 바들바들 떤당께.”
그 말 한마디에 머리에 번갯불이 번쩍번쩍 튀면서.
“……진슬잉감, 유?”
긴가민가 갸우뚱하면서 눈망울을 끔먹끔먹하자.
“진짜랑께. 열댓 살 연배 드신 이 관수 성님은 옛날 같으먼 장가 가서 첫날 밤두 치를만한 연세이셔. 너초롬 가여운 아홉 살 얼라헌티 뻥티기를 치겄냐?”
강철이도 이제 열 살이 된 3학년이지만 음력으로 섣달 생일이라서 양력으로 치면 아직 아홉 살이 맞을 수도 있다. 또 있다.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있는 미국식 나이로는 태어난 날짜를 따져 계산한다고 들었으니, 생후 8년 5개월째가 된다. 그러니 이것저것 특별히 따져가면서 굳이 열 살 나이를 꾸역꾸역 찾아낼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했고.
“……호오.”
“새 중의 왕인 붕새가 되어 태평양 바다를 훌러덩 날아다닌다닝께. 그런 괴력이 생긴다면 너 같으먼 먹겄니? 안 먹겄니?”
그 소리에 막연하게나마 결심을 굳힌 상태이므로.
“먹을 뀨.”
대답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집채만큼 커다란 새가 문짝보다 스무 배쯤 큰 날개를 쫘악 펴며 창공을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삼삼하게 보이는 것 같다. 나도 강한 남자로 성장하고 싶다. 타이거마스크나 요괴인간 베로, 베라, 벰 3남매처럼 힘이 강해지면 실천할 일이 훨씬 더 많아질 것 같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무리들을 물리친 다음 악당들이 강탈한 보물들을 다시 빼앗아 고아원 현관 앞에 살그머니 놓고 오고 싶은 것이다. 이튿날 아침 고아들이 현관 앞에 놓인 선물 보따리를 보며 기뻐할 모습을 떠올리며 설레는 가슴을 간신히 누르는데, 관수 형님이 담배 한 대를 더 피우더니 아까보다 더 자신만만하게.
“그렁께 부리란 늠덜이 뻐꾸기 소리만 뻐꾹뻐꾹 들리먼 죄다 내뺀다는 얘기여. 알긋나? 뻐꾸기만 나타나면‘걸음아, 날 살려라’ 꽁지를 내뺀다닝께. 후후후. 믿거나 말거나.”
“형님, 말벌은 발바닥이 읎는디, 워티게 걸음 얘기가 나오냐구유? 날개가 맞는 거 아니대유?”
“걸음아, 가 아니라 날개야, 가 맞겄징. 에구, 똑똑헐 때두 있구나.”
막판에 ‘믿거나 말거나’ 라고 슬쩍 밑밥을 깔았는데도 고스란히 믿어버렸으니 순진한 마음이다.
그런데 또 이상하다. 금세만 해도 큰 소리 뻥뻥 치던 관수 형이 막상 말벌집 앞에서 엉덩이를 슬금슬금 뒤로 뺄 때 재빨리 눈치를 챘어야 했다. 벌집 앞에서 널빤지 하나를 빼어 드는 폼새가 아까 뻥뻥 치던 큰소리와 완전히 다른 몸짓이다.
아무튼 그동안 관수 형님도 ‘벌집 털이’의 전문가였으니 피붙이 형제 모두 비슷한 체질인 게 맞긴 하다. 잡은 벌의 엉덩이를 뚝 떼어 꿀을 쪽쪽 뽑아먹은 다음 잘라낸 꽁지에 밀짚 대궁을 푹 꽂아버릴 때부터 진작에 알아본 것도 맞긴 하다. 그러면 꽁지 잘린 벌이 허공으로 아주 잠깐만 팔랑팔랑 날아가다가 금세 스르르 주저앉는다. 그래도 돌멩이처럼 허공에서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벌이 날아가는 상태 그대로 비행기 하강하듯 슈류루 내려오니 날개의 위력이 쬐끔 남아있긴 한 셈이다.
그날은 조금 달랐지만 처음 벌집을 쑤실 때는 예전과 비슷했다. 그냥 지나치기만 했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텐데 굳이 썩은 표주박처럼 우툴두툴한 벌집만 찾아 무조건 쑤셔대는 것이다. 그 순간 포도송이처럼 몽기몽기 붙어있던 곤충들이 ‘부와왕’ 소리로 날개를 떨면서 일제히 전투기 편대처럼 위엄을 펼쳤으니 오싹하게 무서운 일이다. ‘부르르’ 날개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벌벌 끼치는데. 어럽쇼.
“작전상 후퇴!”
말벌들이 우르르 날개를 펴자 이번에는 생뚱한 포즈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아까만 해도 퇴치 작전에 대하여 신나게 설명을 늘어놓던 관수 형님이 엥, 재빨리 등을 돌려 도망칠 동작을 취하다니 못 보던 동작이다. ‘작전상 후퇴’ 라고 해서 무슨 비장의 탈환 수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 웬걸, 그의 동생 관모까지 나이롱 잠바로 머리를 뒤집어쓴다. 그때까지 두 형제가 후타탁 도망칠 건 생각도 못하고 일단 어리둥절한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가 모두 노루발처럼 빠르게 개울 건너 퐁당퐁당 도망쳤는데 아차, 강철이 혼자,
‘뻐꾹, 뻐꾹,’
뻐꾸기 울음소리만 비장하게 흉내 내며 울멍울멍 버티는 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 말벌 하나가 슈류릉 날개를 치는가 싶더니 가차 없이 얼굴을 찌르는 동시에 비행접시처럼 몸을 뒤집으며 날아가 버린다. 아프다. 그러나 강철이는 그 아픈 공격을 간신히 견디면서.
‘처음 한 방은 참고……아플수록 뻐꾸기 소리를 더 크게 내야 되능 거여.’
생각하며 ‘뻐-’ 소리로 입을 벌리려다가 ‘으악’ 소리와 함께 얼굴을 감싸고 쓰러졌다. 벌침 한 방이 다시 종아리를 ‘딱’ 쏘아내는 순간 또 다른 말벌 몇 마리가 이마와 정수리를 콱 찍는다. 강철이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관수 형님은 울타리 저만치로 몸을 피한 채 말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널빤지를 슝슝 휘둘렀지만 그건 순전히 자기만의 방어 작전이다.
“뻐꾹,뻐어꾹.”
강철이가 다시 일어서면서 찐빵처럼 부푼 얼굴로 아까 배운 주문을 마지막까지 외우며 두 손을 연신 마주 잡는다. 그러다가 눈물을 닦으려 비비는 찰나 풀빵처럼 퉁퉁 부풀어버린 뺨의 감촉이 섬찟하다. 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뭐랴?아이고,하느님.”
갑천댁이 소리 지르며 쫓아오지 않았으면 어쩌면 겨우 아홉 살 나이에 벌집 폭탄을 먹고 황천길로 떠났을지 모른다. 널빤지를 탁탁 휘두르며.
“멀쩡한 애 하나 잡을 뻔헸네.”
아들의 목덜미를 비비며 부르르 떠는 것이다. 강철이는 관수 형한테 속은 것 같다는 얘기는 끝까지 하지 않았다. 쇳밭둑에서 밭을 매던 눈사람 아줌마도 ‘아이고야’ 하면서 호들갑으로 달려온다. 그 사이에 어디선가 달걀 두 개를 구해오더니 강철이의 부푼 얼굴에 대고 번갈아 뒹굴뒹굴 문지르며 호오호 불어주는 중이다. 아줌마의 구슬 하나 들어갈 만한 조그만 입에서 나오는 입술 바람이 왠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쬐끔 아픈 건 참는 거야. 사내는 죽을 만큼 아플 때만 우는 거야.’
강철이 스스로 안간힘으로 다독이니 찐빵처럼 퉁퉁 부은 이마가 조금씩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그런 작심으로 이빨을 옹물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눈사람 아줌마가 앵두처럼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벌떼 공격보담 더 무서운 건 총소리랑 화약 냄새여. 비행기 기총소사 피했더니 웬걸, 굴다리 속으루 총을 쏘는 인간덜이 악마처럼 무서운 겨.”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린 그 의미는 모른다. 그러다가 건네준 물앵두 몇 개 받으며 눈물을 닦는데.
“아강.욕봤다.”
아줌마의 몸에서 설핏 화약 냄새 잔흔이 풍기는 느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미는 얼굴에 문지르던 달걀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주고 떠난다. 문득 강철이의 볼에 동그랗게 스친 아줌마의 입김이 따뜻하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부은 얼굴 가라앉힌 소년은 공짜로 벌은 달걀 하나를 챙겨 이튿날 점방에서 습자지 사는 데 보태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