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란 / 권영하
부화하자마자 나는 해외로 입양되었다
갓 털도 나지 않은 몸으로
태어난 둥지와 나무를 기억할 수 없었다
알 속의 포근함도 조금씩 흐릿해져 갔다
그렇게 먼 타국 새 보금자리에서
낯선 형제들과 한 둥우리에서 살게 되었다
배냇짓을 보며 새엄마는 밝게 지저귀었고
되새김해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그곳에 숲과 하나가 되어갔다
울음을 가슴에 묻고 잠들 때도 있었지만
새엄마의 돌봄으로 날개짓도 배웠다
자라면서 방향 감각을 잃을 때도 있었지만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상처에 앉은 딱지를 훌훌 털어버리고
한 모금 물까지 근육으로 바꾸어
마음껏 날고 싶다
날개는 비상을 위해 있는 것이니까
- 시 전문 계간지 『시에』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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