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달음이란? 무당들이 생기는 이유?>
ㅡ♡
《 선사들의 조언 (7) 》
제목 : 깨달음의 세계, 서암스님
20240909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P59jp-zFPjE?si=1nmKh24KfxELJNQP
ㅡ♡
<※ 잘 들어보세요, 이 안에 해답이 있답니다.^^>
,
(본문 내용)
깨달음의 세계라고 해서 아무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가 깨쳤다고 해서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고,
밥을 먹어도 맛도 모르고 이렇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나면 천하의 누구도 엿볼 수 없고 마음을 펼치면 희로애락을 다 해도 걸림이 없고 따라서 그 근본 마음을 아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요, 해탈의 세계입니다.
.
.
ㅡ♡♡
.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ㅡ♡
(본문 해설)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면 뭔가 특별난 것이 있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용을 골라보았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처럼 깨닫게 되면 몸도 안 아프고, 병도 안 걸리고,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고, 잠을 안 자고 몇 년씩 수행을 해도 끄떡없다고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국 불교의 영향으로 선문답을 잘하면 깨달은 것으로 쳐주는 지금과 같은 문화는 아주 잘못된 것이고요.
그럼 벙어리에다가 일자 무식이면 깨닫지도 못하겠네요?
주리반다가 같은 바보 멍청이도 주리반다가 경전이 있을 정도로 대아라한이 되는데요.
저도 선문답으로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지만 선문답이란 어디까지나 본성 자리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깨달은 사람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단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아? 본래 마음은 텅 비어있는 것이었구나?"
이것을 한문으로
"아? 본래 마음은 공(空) 이였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마음이 텅 비어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 내용처럼 육식(오온)이 하는 일을 예를 들면 배가 고프다든지? 머리가 아프다든지? 식욕이 당긴다든지? 목이 마르다든지? 아무튼 육체(육식/오온)가 하는 일들은 모두 하되 마음이 육체 쪽으로 끌려가지는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대가 사기를 치거나 해코지를 하는데 가만히 있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깨우친 사람들은 몸(오온)이 아니라 마음이 주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지금 이 이야기를 [조견오온개공]을 모르기 때문에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고요.
그러나 부처님이 가르쳐 준대로 제가 앞전에 알려드린 대로 [조견오온] 알아차림이 확실히 확립(숙달) 되신 분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엔 확실히 보고 알 수가 있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한꺼번에 수천 명을 깨닫게 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왜냐하면 몸(오온생/각포함)과 마음만 확실히 구분시켜 관찰하게 하면 되니까요.
쉽게 말해 오늘 내용은 부처님도 몸(오온생/각포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은 일반 사람들과 같다는 뜻입니다.
부처님도 때리면 아프고 밥 안 먹으면 배도 고프고요.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은 몸(오온생/각포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은 일반 사람들과 같으나 그쪽으로 끌려가지 않고 마음(본성)이 주도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내용도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조견오온]을 해보지 않았을 거니까요.
본인들 생각으로는 자기들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몸(오온생/각포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에게 끌려다니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서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몸(오온생/각포함)이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혜가처럼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은 몸(오온생/각포함)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용이 바로 그런 내용이랍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제대로 아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마음을 알려면 조견오온(照見五蘊)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공(皆空)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나머지 내용들은 보충 설명입니다.^^
(보충 설명)
깨닫게 되면 여러 가지 현상들을 알게 되고 바뀌게 되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마음입니다.
마음이 완전히 공(空)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답니다.
마음이 완전히 텅 비었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답니다. (진실)
그리고 이것을 확실히 보고 아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는 것이고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고요.
이것이 되어있어야 도성제 내용들을 원만히 해낼 수 있는 것이고요.
이 말 안에는 지금 어른들처럼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도성제 내용들이 보이느냐?는 것과 같은 내용이랍니다.
하다못해 그 흔한 보시바라밀이라도 하는 모습이 보이느냐? 이겁니다.
천도재다 명패 봉안이다 해서 중생들 사기 치기 바쁘지요.
이런 사람들은 깨닫기는커녕 자기가 지금 무슨 업을 짓고 있는지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텅 빈 마음을 깨닫게 되면 별의별 희한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답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이 자비심과 지혜이고요.
그 외에도 불교에서 말하는 육바라밀, 팔정도, 육신통 등 여러 가지 알아차림 들이 일어난답니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막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요.
내가 하고 싶다고 막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요.
순간순간 나의 몸(오온생/각포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그때그때 인연 따라 일어난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도 희한하고 묘하다고 해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 했던 것이고요.
이러한 것들이 연꽃처럼 피어난다는 뜻의 비유랍니다.
어떤 분들은 어떻게 알아차리는 것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요.
이것은 어떻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깨닫게 되면 자동으로 알아차리게 되어있답니다.
저만해도 이러한 것들을 뭘 배워서 쓰고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제 경우는 단 한 번도 불교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이랍니다.
그런데도 이런 경전 속 내용들을 알아차리고 쓰고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뭐를 볼 때에 그냥 보고 알아차리듯 이것도 그냥 보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마치 예전에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지혜]라 하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지식]은 부모나 선생에게 배우고 익혀서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마음(본성)에는 이미 수십수백 억겁 동안 경험들을 통해 이미 우리들 마음에 녹아있는 수많은 경험(지혜)들이 있다는 것이고요.
이것을 그때그때 찾아서 쓰는 것을 지혜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생부터 목수를 하던 사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못과 망치만 손에 쥐여주면 그 누구보다도 잘할 줄 아는 것이고,
과거 생부터 무술(싸움)을 잘 하던 사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상황만 닥치면 그 누구보다도 잘 싸우는 것이고,
과거 생부터 음악이나 언어에 운동 등에 희박했던 사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 누구보다도 이러한 것들을 잘할 줄 아는 것이고요.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도 그쪽 방면으로 특별한 아이들도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부처님도 너의 과거 생을 알고 싶으면 현생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신 것이고요.
이 말은 너의 다음 생을 알고 싶으면 현생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도(道)의 세계에도 마찬가지랍니다.
여러분들 혹시 무당들이 왜 생겨나는지 아시나요?
무당들도 과거 생에는 수행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수행자들이 잘못 빠져서 알아차림을 자신의 영달(榮達)에 활용하다가 큰 무당이 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초기의 무당들 대부분은 제사장 출신들이 많이 있고요.
그리고 아주 먼 과거 생에 무당들 세력이 컸을 때에는 무당들을 뽑을 때에 반드시 수행자들을 유혹해서 뽑았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불교 내 출가자 수행자들이 스스로 무당들이 되려고 스스로 그런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안타깝고 경계해야 할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희들처럼 과거 생부터 수행자의 길을 걷던 사람들은 어느 생이든 때를 만나면 다시 이어서 수행의 길을 가게 되어있고,
수행을 막 시작하려는 분들도 각자의 시절 인연에 따라 수행을 이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무당들도 그들대로 생을 이어서 그런 길을 가게 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다가 잘못된 길로 빠져서 무당 일을 하던 사람들은 그 들도 역시 시절 인연에 따라 그 길을 이어서 가게 되는 것이고 한번 이런 길에 발을 잘못 디디게 되면 다겁생을 그곳에서 헤매게 되는 거랍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출가자들이다 보니까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워해야 하는 일인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윤회라 하는 것이고 어떤 윤회든 그 길로 들어서면 웬만해선 빠져나올 수가 없다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현재를 보면 그 사람의 과거 생도 짐작해 볼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던 거랍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던 거랍니다.
"빨리 그곳에서 나오너라!"
라고요.
그러나 이들은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곳의 향락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고 그곳에서 나가면 밥 굶어 죽을 것 같으니까요.
그야말로 코끼리에게 쫓겨 구덩이에 빠져서 위에서 흘러내리는 꿀이나 받아먹는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한번 담배에 입을 대면 끊기가 힘들듯이 말이지요.
,
출가자들 세계도 마찬가지랍니다.
착실하게 수행자의 길을 가는 출가자와 천도재나 명패 봉안과 같은 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외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과는 그 차원부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단 불법을 전하는 데 있어서 금전적인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가짜 마음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더군다나 천도재나 명패 봉안이나 친견비 등으로 그것도 몇십에서 몇천만 원씩 받는 사람들은 100% 가짜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왜냐하면 불성의 마음에는 그런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불자들이 자꾸 이런 사람들을 감싸주고 눈감아 주니까 한국 불교가 점점 이런 모양으로 타락하고 있는 것이고요.
이것은 저에게도 마찬가지랍니다.
저와 같이 하는 모든 도반 분들이나 친인척 또는 가족들도 제가 만약 불법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고 있다면 반드시 제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야단을 쳐주셔야 제가 바른길로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라고 뭐 통뼈겠습니까?
항상 저도 경계를 하지 않으면 삼천포 불지옥으로 다시 떨어질 수 박에 없는 것을요?
혹자들은
"천도재 같은 것이라도 안 하면 그러면 출가자들은 뭘 먹고 사느냐?"
하시는 분들도 곧잘 있는데요?
그럴 거면 뭐 하러 출가를 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요즘처럼 일하기 좋은 세상에요?
그래서 이런 말들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 하는 것이고요.
그렇잖아요?
먹고사는 것이 걱정이 되면 뭐 하러 출가를 합니까?
차라리 죽을 먹어도 내가 돈 벌어서 떳떳이 먹고살지요.
저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근대에 스님 어른들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오늘 내용의 서암 스님을 꼽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서암 스님은 다른 스님들과는 달리 출가자로서의 참 마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분도 그런 쪽이었다면 할 수 없는 것이고요.
그러나 출가자로서 모범적인 모습들이 많이 엿보이기 때문인데요.
살아계셨다면 당연히 저도 영가 스님처럼 최고급 월병(月饼)을 주문해서 손에 들고 찾아뵀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고요.
부처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는데요.
법을 설할 때에는?
여래의 방에서,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이 법을 설해야 한다고요.
이 말은 쉽게 말해 여래의 마음으로 이 법을 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이 법을 설할 때에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 법을 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애경] 이라는 경전에도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요.
(고요한 닙바나를 얻으려는 이들은 지킴(戒)·삼매(定)·슬기(慧)를 잘 닦아 바르고 정직하고 고요하고 부드러워 교만한 마음이 없어야 하리.
작은 것에 만족하고 분주하지 않으며 생활은 검소하게 감관感官은 고요하게 신중한 태도와 겸손함을 가지되 가까운 이들에게도 집착하지 않으리.
현명한 이들에게 꾸중 들을 작은 허물도 저지르지 않으니 이 세상 모든 중생 평화롭게 행복하길!
이하 생략..)
여기서도 보십시오?
고요한 닙바나를 얻으려는 이들은 즉 열반을 얻으려는 사람들(스님들)은 먼저 자신을 경계해야(戒) 한다고요.
그래서 삼매(定)는 물론이고 슬기(慧)롭고 지혜로움을 잘 닦아 바르고 정직하고 고요하고 부드러워 교만한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요.
그리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분주하지 않으며 생활은 늘 검소하게 하고,
감관(感官) 즉 감각기관은 고요하고 신중한 태도와 겸손함을 가지되 가까운 이들에게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고요.
아무리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 해도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지금과 같이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꾸중을 듣게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작은 허물이라도 저지르지 않아야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평화롭고 행복해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
그렇지 않겠습니까?
불교는 나를 먼저 살리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종교인데 중생들을 제도해야 할 출가자들이 이상한 짓들이나 하고 있으면 중생들에게 꾸중이나 듣고 허물 등을 제공해 주어서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은 아만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들이 무슨 큰 도인이라도 된 양 주장자를 치켜들면서 중생들을 야단치듯 대하는 태도부터가 위의 부처님 말씀과는 안 맞는 내용인 것이고요.
더군다나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이 부처님께서 가장 경멸했던 천도재나 명패 봉안이나 친견비 등에 집착을 하여 중생들 마음에 불 종자를 끊는 일들이나 하고 있으면 어떡하느냐 이겁니다?
지금도 한국 불교의 유명하다는 스님들이 법문을 하는 모습들만 보아도 대중들을 앞에 놓고 반말은 기본이고 야단치듯 법문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
가사는 화려하게 차려입었으나 언행은 저잣거리 시장통에 약장수 모양 그대로의 모습들로 대중들을 향해 극락왕생이 어떻고 하면서 약이나 파는 분들도 허다하고요.
저는 처음에 기독교 모습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처음에 절에 와서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속으로 배꼽을 잡고 웃었는데요.
왜냐하면 마치 어린아이가 큰 갓을 쓰고 큰 부채를 들고 어른들 앞에서 호통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잖아요?
무슨 사이비 종교처럼 교주가 앞에서 뭐라 뭐라 하면 나이 먹은 신도들이 굽신굽신 거리면서 막 빌고 있는 모습들이 정상적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겠어요?
불교가 그런 종교였던가요?
이 글을 보시는 불자분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불교가 부처님이나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오 나마사따니~?" 하면서 천지신명께 빌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하는 그런 종교냐 이겁니다?
큰 스님이라는 사람이 큰 지팡이를 들고 무슨 교주처럼 큰 소리로 그것도 반말로 지껄이니까 앞에 있는 대중들은 굽신굽신 거리면서 뭐라 뭐라 중얼 중얼거리기에 저는 처음에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기가 찰 노릇이었다는 것인데요?
불교는 전혀 그런 종교가 아니랍니다.
이것이 제가 처음 절에서 본 관경이었다는 것인데요.
그때는 몰랐지만 저도 부처님 가르침을 깊이 공부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런 모습들은 대단히 잘못된 모습들이고 습관들이고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아마 이런 자료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겁니다.
오늘 내용도 바로 그런 내용이랍니다.
불교는 오로지 마음공부에 있는 것이지 누가 누구를 추앙하거나 신으로 받드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보아온 스님들 중에서는 서암 스님이 이런 면에서는 아주 돋보였다는 것이고요.
서암 스님의 법문을 들어보며 일단 말씀 하나하나가 부처님이 하라는 대로 부드럽지 않던가요?
그리고 자신을 낮추면서 아주 솔직하고 단백한 모습들도 그렇고요?
대중들에게 반말은 고사하고 대중들 마음에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그런 마음이 좋아 보였다는 것인데요.
그리고 다른 분들과는 달리 전혀 자신을 내세우거나 거만하거나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답변을 하거나 법문을 하시는 모습에 이분의 인간 됨됨이와 마음 상태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물론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서암 스님 못지않게 훌륭하신 분들도 여럿 계시지요.
제가 말하는 것은 유명한 큰 스님들 위주로 말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초기에 이법을 깨닫고 인천에 어떤 한 유명한 선지식인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도 이분이 유명하다고 하기에 녹음기로 법문을 한 남아 있는 자료들을 몽땅 찾아서 이 분의 육성 법문들을 거의 다 듣고서 대실망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이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들 앞에서 법상에서 반말은 기본이고 자기가 무슨 대선사라도 되는 듯 대중들을 완전히 깔보면서 하는 법문을 듣고서 "이런 사람이 무슨 대 선사냐?" 하면서 배꼽을 잡고 웃은 적이 있었는데요.
불법이란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특히 깨달은 사람이라면 더욱더 아니고요.
이분의 법문을 들으면서 더 기가 막혔던 것은 당시에 선지식인으로 알려진 어떤 유명한 큰스님과 선문답을 자주 했었나 봐요?
그런데 서로가 이기려고 다툰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분처럼 아직 마음자리를 모르는 분들은 선문답을 하다 보면 서로 다투는 일들이 많이 있거든요?
문제는 이 내용을 그것도 대중들 앞에 법상에서 그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바로 "너는 아니다" 했답니다.
왜냐하면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본성 자리를 알게 되었다는 뜻인데 본성을 알게 되면 여러 가지 것들이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마음이 완전히 바뀌게 되고요.
물론 [성문사과]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깨닫게 되면 마음이 엄청 안정이 되고 고요해진답니다.
그리고 본성을 깨닫게 되면 누구나 과거를 참회하게 되어있답니다.
왜냐하면 본성을 알게 되니까요?
그동안 자기가 저질렀던 과거 생부터 현생의 일까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서 울고 또 울면서 부처님 앞에서 참회를 하게 되는데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 대중들 앞에서 찍찍 반말이나 하고 아랫사람 대하듯 그런다고요?
지나가는 개가 다 웃을 일이랍니다.
본성 자리라는 것이 그런 자리가 아니랍니다.
전혀 이 자리를 모르다 보니까 대중들을 앞에 놓고 그런 반말지거리로 자기가 무슨 확철대오라도 한양 떠들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도 마치 술 취한 목소리로 "이랬어?" "저랬어?" 하면서 말이지요.
누구라고는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실 거라 보는데요?
유튜브에 이분이 생전에 녹음해 놓은 법문들이 여럿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보시고요?
불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랍니다.
그 자리를 이분이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대중들을 앞에 놓고 반말지거리로 그것도 "이랬어!" "저랬어!" 하면서 법문을 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본성의 자리에는 그런 교만하고 건방진 마음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하셨던 말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여러 경전에서도 "불법을 설할 때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내용들도 여럿 있고요.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불법을 깨닫게 되면 마음이 엄청 부드럽고 자비로워진답니다.
방금 말한 인천에 한 이 사람처럼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한국 불교는 중국불교에 영향을 잘못 받아서 선문답 같은 것으로 상대를 강하게 몰아붙이거나 꺾어야 진정한 깨달은 사람으로 인정을 하는데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아무리 법문을 잘하고 선문답을 잘한다고 해서 마음이 아직 개차반이면 그 사람은 그냥 멍멍이에 불과한 것이라 하는 것이고요.
저는 처음에 방금 말한 이 사람이 [고승 열전]에도 나오고 수행도 엄청 빡세게 하셨고 전국을 돌아다니면 가짜 도인들을 내 쫓았다 하기에 정말이지 엄청 크게 봤었거든요?
그런데 법문 내용을 들어보니까 화두를 간하라는 얘기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는 거예요?
일반 사람들은 모르시겠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은 법문 등을 들어보면 금방 알아차리거든요?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간화선도 사성제 수행 방법을 그대로 모방한 수행법이랍니다.
이 말은 간화선도 사성제와 맞춰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고요.
그러려면 최고 스승이라는 사람들은 부처님처럼 [의단]은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고 [화두 타파]는 어떻게 처리하고?
그리고 화두 타파를 한 후 결과에 해당하는 [도성제]는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고 하는 등의 내용들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이러한 내용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무식하게 화두만 열심히 간(看) 하면 밑창이 빠지고 확철대오를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잖아요?
자기가 실제로 화두 타파를 했다면 자신이 했던 전체 내용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 어느 법문에도 이런 내용들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처님 제자들처럼 아랫사람들이 따라 해서 깨닫든 말든 할 것 아니겠어요?
더 기가 막혔던 것은 확철대오를 했다는 그 사람의 결과물 들이었는데요?
뭐든지 그렇잖아요?
불법도 결과물들이 있지 않겠어요?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을 남기셨고, 달마대사도 여러 제자들을 남기셨고, 경허선사도 여러 제자들을 남기셨고요.
그런데 인천에 한 어른의 결과물은 무당 제자들만 여럿 남기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기회 있을 때 인천에 있는 그 유명한 선원에 한번 가보세요?
가보면 칼차고 작두만 안 탔을 뿐이지 그것이 어디 무당의 모습이지 선사의 모습이겠습니까?
제 경우는 초기에 이법을 깨닫고 인천에 하도 유명하는 대선사가 있다고 해서 뭐라도 하나 더 배워볼까 싶어서 가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헐..?" 한국에서 가장 큰 불교 무당의 모습을 보고 대실망을 하고 한국 불교의 현주소를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겠어요?
저는 예전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가짜 도인들을 다 내 쫓았다는 대 도인이 있었다고 해서 구경이라도 하려고 찾아갔었는데 결과는 가짜들을 다 내쫓고 자기가 더 큰 도둑놈이 되어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저로서는 대실망을 할 수 박에요?
그래서 그 후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나라도 나서서
"이런 것부터 알려야 한다"
라는 마음으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데요.
당연히 저도 욕을 많이 먹지요.
저를 죽이겠다고 하는 스님도 여럿 있었고요?
천도재는 안된다느니, 명패 봉안도 불법이 아니라느니 하면서 자기들 밥줄 끊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죽이겠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불교를 비방하는듯한 이런 내용들을 좋아할 불자가 얼마나 되겠어요?
물론 몇몇 큰스님들은 이런 얘기를 거침없이 해줘서 고맙다는 분들도 여럿 계시지만 그건 그거고요.
그분들 입장에서는 이런 소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거든요.
스님들 인심이 좀 빡세야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속일 수는 있어도 부처님을 속일 수는 없잖아요?
아무튼 오늘 내용도 불교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라 해서 아무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깨쳤다고 해서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고 피 한 방울 안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맛도 모르고 이렇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때리면 아프고 밥 안 먹으면 배고프고 잠 안자면 졸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정리하고 나면 즉 깨닫고 나면 천하의 그 누구도 엿볼 수 없고 마음을 펼치면 희로애락을 다 해도 걸림이 없고 따라서 그 근본의 마음을 아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요, 해탈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막 깡패처럼 마음을 써도 된다는 것이 아니랍니다.
위에서 말한 스스로 확철대오를 했다는 어느 분처럼 절간 아무 곳에나 오줌을 갈기면서 "불성이 없는 자리를 대보라" 하는 것이 걸림이 없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럴 것 같으면 자기 방에 똥오줌 누면서 "불성이 없는 자리를 대보라" 하지요?
불교에서 말하는 걸림이 없는 마음이란 이런 것이 아니랍니다.
깨닫게 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들이 엄청 겸손해지고 예의가 바르게 된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본성(불성/성령)의 마음이니까요.
물론 때에 따라서는 천하를 덮고도 남을 그런 엄청난 마음을 보일 때도 있지만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오줌을 누면서 천하를 논한다는 것은 그것은 공중도덕이 덜된 아주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할 짓이지 그런 것을 어떻게 불법과 비교를 할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해 세상이 정해 놓은 법도 제대로 못 지키는 사람이 어떻게 드높은 불법을 따르고 지킬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런 사람을 지금까지 선지식인이라고 고승 열전에도 올리면서 떠받들고 있었으니 그런 큰 불교 무당들이 선원이라는 이름 안에 숨어서 생겨난 것이고요.
부처님 가르침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첫째도 마음,
둘째도 마음,
셋째도 마음,
[마음], [마음], [마음]인 것이 불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그런 마음을 깨닫고 증득을 한 대 선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지금 한국불교는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고요.
부처님이 이르시기를 항상 법을 설할 때에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처음도 좋고 끝도 좋게 설하라 하셨답니다.
어디 감히 부처님의 제자라 하는 자가 대중들을 앞에 놓고 그것도 반말지거리를 하면서 "이랬어?" "저랬어?" 할 수 있답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런 잘못된 가르침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런 말씀을 올리는 것이고요.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수행자분들은 꼭 부처님을 잘 따라 하셔서 꼭 성불을 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