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34)
석왕사에 얽힌 내막 '하편'
이성계는 간밤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어떤 낡은 집에 있노라니 별안간 모든 닭들이 일시에 "꼬끼오!"하고 요란스럽게 울었습니다.
닭의 울음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내가 있던 집이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뛰쳐 나오려는데
이미 지게에는 서까래 세개를 얹어 놓았더란 말입니다."
"꿈은 그뿐이었습니까?"
"아니지요.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밖으로 나오니까,
뜰에 피었던 꽃이 별안간 떨어지고,
그와 동시에
난데없이 거울이 깨지면서
요란한 소리가 나는거예요.
아무리 생각하여도
예사 꿈은 아닌듯 한데 혹 흉몽인지요?"
무학도사는 꿈 이야기를 모두 듣고,
사뭇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숙연히 말을 했다.
"네 가지로 나뉘어 꾼 꿈은
더할 나위 없는 길몽입니다."
자신의 느낌과 전혀 다른 무학도사의 해몽에 이성계는 어리둥절 하였다.
"일시에 집이 무너지고,
꽃도 떨어지고
거울이 큰 소리를 내며 깨진 것이
어째서 길몽이라 하시오?"
무학도사는 옷깃을 바로 여미며
경건한 어조로 말을 했다.
"닭은 만인에게
새 아침이 왔음을 알려주는 영물이옵니다.
모든 닭이 일시에 울었다 함은 바야흐로 새 시대, 새 아침이 밝아 올 징조를 알려주는 성스러운 조짐입니다.
더구나 닭이 '꼬끼오"하고 울었다고 말씀 하셨는데,
꼬끼오를 한문자로 바꾸어 쓰면 '高貴位'가 되는 것입니다.
곧, 임금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더구나 등에 서까래 새 개를 짊어지고 나오셨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임금왕 (王)자가 되는 것 입니다.
따라서 귀공께서는
장차 임금님이 되실 것이 틀림 없습니다."
듣고 보니 이론이 정연한 해몽이어서 이성계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렇다면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큰 소리를 내며 깨진 것은 무슨 뜻이오?"
"그 역시 길몽의 마무리 입니다.
열매가 맺으려면 꽃이 떨어지는 것이 이치이니,
일시에 낙화 한것은
열매도 일순간 맺을 좋은 조짐입니다.
그리고 거울이 요란하게 깨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새 나라가 탄생하는데 만 천하가 어찌
크게 떠들썩하지 않겠습니까? 염려마소서."
"하찮은 꿈을 이처럼 대견하게 풀어 주셔서 고맙소이다."
"빈도의 해몽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니오니 귀인께서는 소승의 해몽을 굳게 믿으시고 앞으로는 만사에 자중자애 하시옵소서."
이성계는 무학 도사의 격려까지 듣고 나자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고맙소이다.
그러나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과연 그런 기회가 올 수 있겠습니까?"
무학도사는 합장 배례를 세 번씩이나 거푸 하고 나무라듯 말을 했다.
"모든 운수는 하늘에서 정해주는 것이지,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옵니다.
소승이 지금까지 여쭌 말씀은
모두가 천기에 속하는 기밀이옵니다.
이런 천기를 누설하면
될 일도 틀어지기 마련입니다.
오늘 저와의 있었던 일은
일체 입 밖에 내지 말아주옵소서."
무학 도사로부터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는 당부를 받은 이성계는
옷깃를 바로 잡으며 말했다.
"제가 아무리 철이 없기로
이러한 일을 어찌 감히 입 밖에 꺼내리까?
도사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가슴에 아로새겨 일거일동에 더욱 신중하겠습니다."
무학도사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王侯將相의 씨앗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귀인께서는 부디 뜻을 크게 품으셔서 기어이 대업을 성취하도록 하시옵소서."
이성계는 왕후장상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나자, 갑자기 새로운 용기가 북돋아 났다.
"고맙습니다. 저를 격려해 주시고 아껴, 깨우쳐 주신 오늘의 은공은 평생을 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이성계가 이같이 말을 하자 무학도사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날을 위해 소승이 부탁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들려주시옵소서."
"매우 외람된 부탁이오나, 뒷날 대업을 성취하시거든 중생을
구제하는 도량으로 이 토굴 자리에
불전을 하나를 지어 주시옵소서."
이성계는 이 말을 듣고,
무학도사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그날이 오기만 하면 어찌 불전 뿐 이겠습니까? 이곳에 절을 지어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도사님을 대궐로 모셔다가 大政을 자문하는
國師로 받들어 모실 것이옵니다."
무학도사는 다시금 합장 배례하며,
"너무도 과분한 말씀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오면 이곳에 지을 절 이름은 뭐라 하시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이성계는 그 말을 듣자 어이가 없었다. "절 이름은 그때 가서 결정해도 될 일이 아니옵니까? "
그러자 무학도사는 고집스럽게 다시 말을 했다.
"옛 글에
一日之計 在於晨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우고)이요,
一年之計 在於春(일년의 계획은 봄에 세운다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목표를 세우고 매진하지 않으면 목적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절은 나중에 세우시더라도
이름만은 지금 지어주시옵소서."
"도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나의 신념을 굳히기 위해서라도
절 이름을 미리 지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절 이름을 당장 짓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옵니까?"
무학도사가
즉석에서 나무라듯 말했다.
"무슨 일이나 쉽게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신명을 다해 애쓰지 않으면
제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는 법 이옵니다."
이 말도 이성계의 장래를
훈계하는 말임에 틀림없었다.
"도사님의 훈계는 명심하겠습니다.
하오나, 절 이름을 제가 짓기보다는
도사께서 직접 지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무학도사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한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러더니 붓을 들어 종이에 釋王寺
(왕이라고 풀어낸 곳)라는 세 글짜를 써 보였다.
"석왕사 ..?
좋습니다! 뒷날 이 자리에
반드시 절을 짓도록 하고,
그 이름은 도사님이 꿈과 글을 풀었다하여 반드시 석왕사로 하겠습니다."
이렇게하여 석왕사라는 절 이름은
태조의 등극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석왕사의 유래를 이야기한
반월행자는 이어서 말을 하였다.
"이성계는 변방을 지키는 한낱 장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나
무학 도사를 이곳에서 만남으로써
하늘의 계시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산을 내려 갈때는
"나는 왕이 될 것이다"라는 결심을 확고히 했으니
조선왕조의 개국에 무학 도사가 미친 영향은 실로 위대하다고 하겠습니다."
"허허...영향을 줄 수는 있었겠지요.
허나 국가대사의 도모는 불심의 힘만으로는 가능치 않은 일이지요."
김삿갓은 같은 불제자라고
반월행자가 무학도사만 편드는 것 같아 이쯤으로 말을 했다.
"그런데 삿갓 선생,
이성계가 이곳 설봉산을 내려 갈 때
눈 앞에 전개되는 천산만봉을 굽어보며
읊은 시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오 호 ..!
이성계가 시를 읊었다니 ...?
그 시가 어떤 시였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구려."
"제가 외어 드리겠습니다."
반월 행자는 이성계의 시를 읊어 보였다.
朝鮮朝 開國高皇帝 李成桂 作-
朝鮮太祖高皇帝詩碑
(조선태조고황제시비)
登白雲峰(등백운봉)
백운봉에 올라서
引手攀蘿 上碧峰 인수반나 상벽봉
댕댕이덩굴 움켜잡고 푸른 봉에 오르니
一庵高臥 白雲中 일암고와 백운중
조그만 암자 하나 구름 속에 있구나!
若將眼界 爲吾土 약장안계 위오토
눈에 보이는 산천이 모두 내 땅이라면
楚越江南 豈不容 초월강남 기불용
초월 강남인들 어찌 수용하지 못하랴!
김삿갓은 그 시를 듣고
이성계의 웅장한 기상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하더니, 이성계야 말로 선천적으로
대왕의 기질을 타고 난 인물이었음이 드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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攀蘿 반나
攀 더위잡을 반
{手(손 수) + 樊(울타리 번)}
蘿 쑥 나(라)
{艹(초두머리 초) + 羅(벌일 라(나))}
1.더위잡다(높은 곳에 오르려고 무엇을 끌어 잡다)
2. 무엇을 붙잡고 오르다
3.매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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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백운봉 (登白雲峰)
한시 작가 · 작품 사전
저자 조선 태조
출생 - 사망1335년 ~ 1408년
호 : 松軒(송헌)
시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