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위협과 인재
한국 정부와 원자력업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강진의 가능성은 희박하며 충분한 정도로 내진 설계와 시공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고 유형이 있다. 바로 외부의 공격에 의한 사고이다.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체제가 끝나지 않은 유일한 지역으로서 군사적 대결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 특히 정권의 성격에 따라 대결정책이 강화될 경우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여 안보 상황을 위협하고 있다.
만약 원전이 외부의 공격을 받아 파괴될 경우, 원전은 그대로 원자폭탄이 된다. 차라리 원폭은 멀리 날려버릴 수나 있지만 원전은 그저 꼭 끌어안고 폭발의 피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본체 내장형’ 원자폭탄이다.
2011년 5월18일 저녁 9시34분, 울진원자력발전소 정문을 통해 우리 군 특전사 1개팀이 훈련 침투하였다. 원전 경계선에서 100미터 가량 떨어진 인근 해안에 헬기로 착륙한 이들은 정문을 돌파한 뒤 순식간에 원전 내부로 진입, 주요 시설을 장악했다. 자체 경계요원은 물론 2개월 전부터 상주 배치된 인근 군부대 요원들조차 차례로 제압됐다. 침투조가 발전소를 장악하고 주요 시설을 가상 폭파하는 데는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원자력발전과 원자폭탄이 태생부터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불안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새삼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한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사건이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사고를 은폐한 것이고, 또 하나는 부품과 관련된 부정 비리 사건이 잇달아 밝혀진 일이었다.
2012년 2월 9일 정비를 위해 가동이 정지된 고리 원전 1호기의 전원이 12분 동안 끊기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의 냉각 장치가 정지되는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고는 한 달 뒤인 3월 12일에야 원자력안전위에 보고되었다. 이마저도 경주시의 한 시의원이 술집의 옆 좌석에서 원전 직원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원전측에 추궁하고 나서자 뒤늦게 보고한 것이었다. 원자력안전위는 그제서야 원전 가동을 정지시키고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2012년 11월 5일 지식경제부는 영광원전 5․6호기에 품질검증서를 위조해 납품한 부품들이 사용된 것을 확인하고 가동을 중단시켰다. 원자력안전위의 조사 결과 290개 품목 8,601개의 부품이 울진 3․4호기와 영광 3~6호기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서류 조작 사건은 2013년에도 또 다른 품목에서 드러났다. 5월 28일 원자력안전위는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에 납품된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가 시험기관에 의해 조작된 사실을 확인하고 안정성을 평가한 결과 교체가 불가피하여 원전가동을 중단시켰다. 내부의 제보로 시작된 이 사건은 점점 확대되어 결국 검찰까지 나서 원전비리수사단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원자력안전위와 검찰은 국내 부품 품질 서류 2만2,712건을 전수 조사하여 277건의 서류가 위조되었음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된 7,733개의 부품 중 6,970건을 교체하도록 조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전 사장을 비롯해 모두 100명이 서류 조작과 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한 번 터지면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원전을 관리하는 기관과 업체들이 뇌물을 주고받으며 규격에 떨어지는 부품을 사용하는가 하면, 사고가 발생해도 쉬쉬하며 은폐하려는 원전측의 태도는 우리나라 원전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되묻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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