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사랑함에
즐겨 걷는 길, 요즈음은 노오란 달맞이꽃이 한창이다. 크다고 해봐야 도토리만한 게 우르르 모여 꽃밭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달맞이꽃은 기다란 꽃대가 훌쩍 솟은 것도 있지만 길옆으로 기어가다가는 못내 아쉬운지 뒤늦게 고개를 곶추 세운 채 꽃을 피우고 날 봐주슈 한다. 왜그리 곡예를 하냐고 나무랄 법도 하지만 제나름으로 예쁘게 피운 정성이 갸륵하다. 바람이라도 불면 커다란 줄기를 어쩌지 못하고 일렁일렁 춤을 춘다. 멎쩍다. 매일 아침 나들이를 하는 참이라 활짝 꽃잎이 벙그러진 모습만 보다가 엊그제 저녁나절에는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 처연해 보였다. 달맞이꽃이라 그런걸 어떡하랴. 조금만 더 있음 어둠이 내리고 벙실 꽃을 피울테지. 흐흐 밤에 출근하는 여인들이 일터로 나가려고 화장을 하는가 보다.
매일 걷는 길이라 눈에 보이는 게 다 친숙해뵈지만 계절 따라 피고지는 꽃은 각각이다. 이른 봄에는 개나리가 눈에 띄는데 넘 아쉽게 꽃이 지고, 아무래도 하얀 조팝나무꽃이 이곳의 절경이다. 조팝나무꽃이 어떠냐고? 좁쌀만큼 작디작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걸 보면 흡사 좁쌀을 흣뿌려놓은 것 같다고 이름을 그리 지었겠지. 아~ 안개꽃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늦봄이면 개망초가 산지사방에 꽃을 피우더니만 이따금씩 산딸기가 바알간 열매를 내밀고 봐주슈 한다. 외국에서 들여온 거라고 푸대접을 해도 생명력은 최고다. 늦여름까지 개망초가 산들산들 바람에 날리는 게 볼만하다. 쨍쨍 내려쬐는 햇볕도 개망초에는 대순가 하고 끄덕 없다. 그럼 지금은? 달맞이꽃이 세월 만난듯이 무성하다. 아직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꽃이 하나 있다. 나팔꽃처럼 생겼는데 조금 작다. 줄기를 따라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파란 색갈이 노오란 달맞이꽃 무성한 숲더미에서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큰 무리를 이루고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도 시리다. 시린 물에는 흰뺨 검둥오리가 재잘대다가 일제히 하늘로 솟아 오른다. 장관이다. 오리 떼도 그간 힘을 기르고 비축한 탓인지 날개짓에 힘이 충만하다. 이쪽에 홀로 있던 백로가 날개를 펼치는 건 우아하다고 해도 모자란다. 안개에 잠든 숲을 깨우려는가 숲을 넘어 유유히 사라지는 백로야 말로 가을의 여왕님이다. 오리가 떠난 개울에 손을 넣어본다. 손끝이 시려서 몸을 부르르 떤다.
추석을 지나며 개울도 눈에 보이는 숲도 시리다. 동녁에 해가 뜨면서 이삭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벼들의 무리가 눈에 부시다. 초록의 벼줄기에 언뜻 노르스름한 이삭이 빼곡 숨어 있다가 햇볕을 받으며 몸을 추스른다. 이슬이 사금파리처럼 반짝 빛나는 아침, 부슬부슬 벼들이 가득한 논에는 생명이 지르는 힘찬 합창이 들려오는듯하다. 어떻게 말해야 이 청량한 풍경을, 노래를 그대에게 전할 수 있을까? 뾰죽한 벼들의 머리위로 한 뼘씩 거미줄이 펼쳐 있고 거미줄엔 이슬이 총총히 박혀 있는 광경은 어떠한가. 머~얼리 꽃동네를 감싸고 있는 산 위로 훌쩍 해가 솟아 오른다. 일순, 벼가 너울거리는 들녁은 눈을 뜰 수 없게 반짝이는 보석으로 가득하다. 흡사 보석을 가꾸고 캐내는 논이런가? 하기사, 쌀이 보석이지 뭐겠어. 먹어야 산다니까. 하지만 이 말은 공허하다.
이제 아침 나들이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가면 아침상을 차리지만 이밥이 아니라 오븐에 구운 토스트 두 쪽이다. 그럼 점심은? 거의 국수다. 잔치국수를 즐기다가 가을에 접어들면서 뜨거운 칼국수다. 저녁에서야 겨우 밥을 차려서 먹으니까 농부들의 한숨이 커지기 마련. 옆구리가 터진 비닐하우스 안에는 짙은 녹색의 줄기가 억세 보이는 가을 수박이 무르익는 중이다. 가을 수박하니까 벌써 이가 시리다. 여름 수박에 비해 가을 수박은 크기가 작다. 두 달 키워서 수확을 하니까 작을 밖에. 누가 사먹을까? 계절이 계절인 탓에 수박하니 이가 시려온다.
새벽, 아직 어둑한데도 마을 스피커에는 흥겨운 노래가 시끄럽다. 곡조는 뽕작인데 흥겹다. 마을 사람들 잠을 깨우려면 그래야할 테지. "아`아` 이장입니다. 일곱 시부터 주민 여러분은 모두 나오셔서 주변의 잡초를 제거해 주셔애겠습니다. 예초기가 없으신 분은 깍지나 낫을 들고서 풀을 깍는데 협조해 주셔야 겠습니다 아`아`" 스피커 성능이 시원찮아서인지 겨우 알아들은 게 이런 내용이었겠지. 도로변에나 눈두렁이나 무성하던 풀을 깍는 예초기 소리가 요란하다. 대개는 노인들이다. 젊은이들이 귀한 농촌이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무성하던 풀을 깍아야 사람 사는 마을답게 단정해진다. 때를 놓친 고추밭에는 말라비틀어진 붉은 고추가 대롱거리고 뿌연 안개가 걷히는 산비탈을 힘겹게 올라가는 경운기가 탈탈 거린다. 이따금 보이는 무덤은 머리를 깍은 단정한 소년의 모습이다. 시골에서 낫을 들고 풀을 베는 모습을 본지 오래다. 옛날 농부들이 풀베는 모습을 보면 신들린듯 했는데 낫질도 이젠 인간문화재로 보존해얄까?
공장안으로 들어오면 줄지어선 잣나무에서 툭 떨어져 발끝에 채이는 잣에는 알갱이가 없다. 청설모가 미리 탈탈 빼먹서 그런다지. 우리 공장에 사는- 나는 아직 인사도 못 땡겼는데- 청설모야말로 팔자가 늘어졌다. 웰빙 식품인 잣이 넘쳐나잖은가. 쇗똥가리를 만지는 공장이라 널려 있는 시커먼 철판에도 뚝뚝 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초가을, 아침 안개가 걷혀가는 중이다. 실제로 오늘같이 안개가 낀 날에는 용접을 하기전에 영접봉의 예리한 불꽃으로 예열을 하면 철판에서 스며나오는 물이 제법 된대요. 싸늘해뵈는 철판도 이러할진데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냉랭해도 그대의 사랑이 절실하다면 분명 얼음도 풀어질게요. 철판도 그안에 눈물을 보듬고 있다는데 냉랭해 뵌다지만 그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야 눈물뿐이랴? 그대의 사랑이 예리한 용접봉처럼 뜨겁게 불타올라야 그대 사랑이 이루어지겠지요.
몇자 글쩍이다가 오늘 펴보니 그사이 계절은 성큼 지나버리고 꽃은 지고피느라 어지럽다. 달맞이꽃은 자취도 없고 보기만해도 애처러운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깔리고 말았더이다. 계절의 오고감은 이리도 쉴사이없이 변화무쌍하더이다. 그것도 잠시 국화무리가, 소국이 흐드러지게 필거고 구절초가 피면 가을도 깊어지겠지. 질리도록 시커멓던 초록의 숲은 왠지 처연한 물기를 머금고 떠나야할 잎새들과 이별을 생각하는듯 하더이다. 돌아온 산책길, 어깨는 안개에 젖고 쉰듯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에디뜨 삐아프가 샹송을 불어주는데 왈칵 울음이 터질까. 가을은 외로운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 잔인한 계절이더이다.
.................................................................. 오래 전 시골 공장에 근무할 때 이야깁니다. 기숙사에서 홀로 밥을 해먹고 공장을 나서면 막막하게 푸른 농작물이 펼쳐진 전원에 두어 마리 백로가 저녁밥을 먹는 모습은 뭐라 해얄까요. 초록 바다에 새하얀 백로의 대비는 기막힙니다. 저녁 밥을 배부르게 먹은 백로가 저녁 노을이 깔리는 하늘로 날아간다. 날개 짓이 우아하다. 신선놀음 하다가 온 거지요. 제 인생 화양연화인 셈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