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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화법으로 재임 중에는 보수언론으로부터 부당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았던 정치인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후임 정권으로부터 온갖 부당한 대접을 받으면서 그들이 보복수사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그 모든 책임을 떠안고 홀연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13년이나 지났다. 최근 정제되지 못한 말들을 쏟아내며, 오로지 상대편을 비난하기 바쁜 현재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더욱 고인의 행적을 되돌아보게 된다.
‘대통령의 명연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기획된 이 책은 정치인 노무현이 남긴 연설문을 수록하고 있다. ‘다시 만나는 노무현의 육성, 그리고 사자후’라는 서문의 제목이 보여주듯, 그의 화법은 늘 진솔하고 가식이 없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원칙과 상식’을 내세우던 그의 정신이 이 책의 글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 책은 ‘대표적인 연설들을 노무현재단이 엮어’ 만든 기획으로, ‘모두 5부에 걸쳐 스물여섯 편의 연설’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비록 그의 육성은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연설을 직접 듣고 있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잇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다’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2편의 연설문이 수록되었는데, 모두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정치인으로서의 포부를 담고 있는 내용들이다. 여러 번에 걸친 낙선 끝에 처음 대정부질문을 하는 초선 의원 시절, 모든 국민들이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안 하고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세상’을 꿈꾸던 정치인 노무현의 진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여기에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을 내고 그 출판기념회에서 했던 연설은, 그가 꿈꾸었던 대통령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두 5편이 수록된 2부에서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임기 초반에 행했던 연설들로 채워져 있다.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외교를 펼치겠다는 자부심이 충분히 느껴졌으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민주주의와 국민통합’이라는 제목의 3부에서는 7편의 연설문을 통해, 임기 전반에 추구했던 통합과 공존의 정치에 대한 희망과 민주주의에 대한 노무현의 철학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5편의 연설이 수록된 4부에서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제목 아래, 당시 악화되던 한일관계에 대한 우려와 역사에 대한 국가권력의 책임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는 내용들의 연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의 선택이 동북아의 정세를 좌우할 수 있다는 자심감은 물론,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에 대해 원칙과 당당함을 내세우던 면모가 잘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 5부의 ‘새로운 길’에서는 모두 7편의 연설문을 통해, 임기 중 자신이 펼쳤던 다양한 정책들과 의제들을 설명하거나 정리하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취임 전부터 근거 없는 비난들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언론과의 관계는 물론 정부혁신과 시장경제에 대한 거침없는 의견, 그리고 지지자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자유무혁협정(FTA)과 이라크 파병 등에 대해 불가피했음을 호소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기간 중의 정책들에 관해서는 여전히 진지한 평가의 대상이 뵐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의 말에 행동으로 책임지는 정치인으로서 본받을 만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남발하고, 오로지 상대에 대한 비난과 요설이 판치는 징치판의 현실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정치인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어느덧 13주기를 맞은 시점에서 다시 읽어보는 그의 연설문들은, 그 내용에 따라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의 진정성 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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